[월요논단]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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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박철환 법무법인 지원P&P 대표변호사

  • 승인 2026-06-28 16:43
  • 신문게재 2026-06-29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박철환형
박철환 변호사
옛날 어느 나라에 임금이 있었다. 임금은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각별했다. 가뭄이 몇 해째 이어지자, 조회에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으니 곡식을 풀어라." 그러나 신하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전하, 이미 여러 해 곡식을 풀어 나라의 곶간이 비어가고 있사옵니다." 임금은 잠시 말이 없었다.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자리를 떴고, 이를 지켜보던 정승 역시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남은 대신들은 현실적인 해법을 찾고자 머리를 맞댔다.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더 걷어야 한다." 곧 전국 각지에 명이 내려갔다. 토지의 규모, 토질, 인구, 소작인의 수까지 따져 가능한 한 많은 세곡을 거두라는 지시였다. 지방 관아에서는 이를 실적으로 삼아 상부에 인정받고자 했고, 향리들은 눈에 불을 켜고 곡식을 징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의 사정은 달랐다. 오랜 가뭄에 이미 농사는 무너졌고, 백성들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도 벅찼다. "더 드릴 것이 없습니다. 저희도 굶고 있습니다."라는 절박한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사라졌다. 집을 뒤지고, 가축을 끌고 가고, 덜 익은 이삭까지 거두어 가도 목표량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자 수령은 더욱 강경해졌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며 세곡을 더 받아오는 자에게 포상을 약속했다. 그때부터 징수는 행정이 아니라 수탈로 변해갔다.

이 와중에 작은 땅을 일구며 살던 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리고 세금을 내기 위해 결국 외부의 도움을 찾는다. '서민을 위한 금융'이라 불리는 곳에서 전답을 담보로 곡식을 빌렸다. 공동체 정신과 상부상조를 내세우는 기관이었지만,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자는 빠르게 불어났고, 조금만 연체가 생겨도 압박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담보로 맡긴 땅은 경매에 넘어갔다.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땅은 헐값에 팔려 인근의 부유한 지주의 소유가 되었다. 지주는 자신의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르자 자경농은 사라지고, 많은 이들이 소작인이나 품팔이로 전락했다. 국가는 점점 세수를 잃어갔고, 곶간은 더욱 비어갔다. 겉으로는 백성을 위한 정책이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국가의 기반 자체가 약해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저 오래된 옛날이야기일까. 아니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는 구조일까.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이나 시대가 아니라, 흐름이다. 국가가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세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두터운 중산층이다. 스스로 벌어 세금을 내고, 소비를 통해 경제를 지탱하는 계층이 무너지면, 그 부담은 결국 더 약한 곳으로 전가된다. 그 과정에서 다시 또 다른 붕괴가 이어진다.

몇몇 거대한 기업이나 특정 산업에만 의존하는 구조 역시 위험하다. 외부 환경이 흔들리면 국가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이는 마치 체력이 약한 사람이 작은 감기에도 크게 흔들리는 것과 같다.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다양한 주체가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비로소 위기에 대한 저항력이 생긴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단순히 나누어 주는 것이 답일까, 아니면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답일까. 단기적인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고, 그 사다리를 오르려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의 체력이 유지된다.

또한 이미 만들어진 중산층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이들도 위기상황을 버틸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나 지원 혹은 기회의 제공이 필요하다. 이들은 이야기한다. 우리는 국가적 정책과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 한번만 실수하면 회복불능의 살얼음판 위에 있다고.

결국 이 이야기는 특별한 결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되묻고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방향이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끝에 서게 될 모습이, 이미 한 번 겪었던 길은 아닌지 말이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박철환 법무법인 지원P&P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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