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이머시브 공연이 제공하는 강력한 꿈! ‘슬립 노 모어’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이머시브 공연이 제공하는 강력한 꿈! ‘슬립 노 모어’

원은석 목원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 승인 2026-01-20 10:28
  • 신문게재 2026-01-21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원은석 교수
원은석 목원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40대 중년에게 충무로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대한극장'이었다. 우리나라 영화 산업을 상징하던 충무로에서 대한극장은 '영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무상(無常)의 흐름을 비켜가지는 못하고 이제 '대한극장'은 더 이상 충무로를 대표하는 극장의 기능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매키탄 호텔(The Mckithan Hotel)'을 검색하면 그 장소가 나타난다.

이름이 바뀐 이 지상 7층 건물은 이제 더 이상 수백 개의 시선을 하나의 스크린에 모으는 단편적인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다. 층마다 서로 다른 공간을 켜켜이 쌓아 올려 어디든 갈 수 있고, 모든 것에 시선을 둘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체험의 미로'를 제공한다. 이머시브(Immersive), 즉 관객이 완전히 몰입하는 방식의 공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에 대한 이야기다.

공연은 시작부터 관객을 방심하게 두지 않는다. 입장을 위해 흰색 가면을 쓰고, 스마트폰이 밀봉된 가방을 든 관객들은 안내원, 즉 배우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안내원은 관객 중 한 명의 손을 잡아 밖으로 이끌더니 곧바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떠난다. 함께 온 지인과도, 익숙한 세계와도 단절된 채 낯선 공간에 홀로 던져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급작스럽고 다소 불친절한 방식으로 몰입은 시작된다.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숲이었다. 어둑한 조명 아래, 실제 숲처럼 정교하게 구현된 공간을 가면을 쓴 관객들이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그저 공간을 탐색하며 걷게 된다. 숲의 끝자락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고, 그 주변을 둘러보던 중 한 여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배우다. 여자는 열쇠로 문을 열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다. 관객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장면을 지켜본다. 곧 여자가 급히 오두막을 나서 어딘가로 향하면, 관객 역시 가면의 무리에 섞여 그 뒤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여자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여러 공간을 넘나들고, 다른 인물들과 만나 사건에 개입한다.

우리는 그동안 영화나 연극을 감상할 때, 작품을 전지적으로 내려다보는, 이른바 '신의 시점'에 익숙해져 있었다. 등장인물의 감정과 행동,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원인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다르다. 우리는 내 시야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눈앞의 상황만을 붙잡고 하루를 살아간다. 누가 주인공인지,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지금 이 순간에는 알 수 없다.

이머시브 공연에서 관객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시점에 놓인다. 관객은 주어진 상황의 일부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맥락만을 더듬으며 움직인다. 이 경험은 불편하고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다.

매키탄 호텔에서는 약 20여 명의 배우가 각자 맡은 역할과 동선을 따라,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서 서사를 루프 구조로 반복해 선보인다. 관객은 7층 건물 전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 장면과 장면은 명확하게 연결되지 않은 채 제시되고, 관객은 머릿속에 물음표를 안은 채 서사의 조각을 맞추어 나간다. 시간이 지나 동일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즈음이면 공연은 마무리에 가까워지고, 관객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보지 못한 장면에 대한 또 다른 물음표가 남는다. 공연이 끝난 뒤 가면을 벗고 지인과 경험을 나누는 순간, 아쉬움과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진다.

이 작품은 현재 중국 상하이와 한국 충무로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충무로 공연은 약 14년간 뉴욕에서 이어진 오리지널 공연을 기반으로 한 공식 라이선스 프로덕션이다.

장자의 '호접지몽'은 내가 나비가 되어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되어 꿈을 꾸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슬립 노 모어'는 관객이 발을 들이는 순간, 또 다른 현실에 들어섰다고 인식하도록 세심하게 설계된 공간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떠도는 동안 관객은 하나의 꿈속을 헤매게 된다. 강렬한 꿈을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N차 관람을 위해 다시 매키탄 호텔로 발걸음을 옮긴다. 원은석 목원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
  2. 트램 공사로 평균통행속도 16.4% 감소... 대책 강구키로
  3. 세종시 아이들의 놀이터, '꿈마루 사업'… 예산 정상화 주목
  4. [2026 경제세미나] "대전 AI 성장전략, 우수한 연구역량을 산업 경쟁력으로”
  5. 대전샛 정상가동 '눈앞'…활용 조례 제정 시급
  1. 충남대 총동창회, 대학 통합 재추진 촉구… 김정겸 총장에 건의서 전달
  2. 학교급식 음식물쓰레기 처리비 천차만별…충청권도 격차
  3. 중국으로 반도체 핵심기술 빼돌린 일당 덜미
  4. 대전 중등 교원 500명 한자리에…수업 혁신 방향 모색
  5. 대청종합병원 보건복지부 종합병원 의료기관 인증 '획득'

헤드라인 뉴스


양보안에도 기존 후보 고수…답 없는 대덕구의회에 區 `셧다운 위기`

양보안에도 기존 후보 고수…답 없는 대덕구의회에 區 '셧다운 위기'

대전 대덕구의회가 넉 달째 이어진 파행으로 민생을 내팽겨 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전반기 의장직을 둘러싼 감투싸움만 되풀이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조건부 의장직 양보 의사를 밝혔지만, 국민의힘은 기존 의장 후보 추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야 간 협상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의회 파행이 장기화하면서 대덕구의 행정 업무에도 차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는 20일까지 원 구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도 본예산 심의마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대덕구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 4명(전석광..

대전 빵집 120곳 한자리에…`2026 대전 빵 축제` 17일 개막
대전 빵집 120곳 한자리에…'2026 대전 빵 축제' 17일 개막

대전의 다채로운 빵과 문화, 즐길 거리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2026 대전 빵 축제'가 오는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간 엑스포과학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축제에는 지난해보다 늘어난 지역 빵집 120곳이 참여해 각자의 개성을 담은 대표 메뉴를 선보인다. 개막식은 17일 오후 6시 시민과 함께하는 15m 규모의 대형 롤케이크 커팅 퍼포먼스와 축하공연으로 막을 올린다. 축제의 중심인 '빵 정거장'은 5개 구역(A~E)으로 나눠 운영되며, 방문객들은 참여 빵집의 대표 메뉴를 매장 판매가격보다 5% 이상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대전노동청과 천안·서산지청, 중대재해 33건 조사 외면?
대전노동청과 천안·서산지청, 중대재해 33건 조사 외면?

대전지방고용노동청과 천안·서산지방청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중대재해 33건에 대해 재해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재해 발생 상황 파악 등 후속 조치를 해야 하는 유족보상과 장의비 접수 사건도 100건이나 빠뜨렸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충남 당진시)이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청별 현황을 분석해 15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 요양 급여 승인 사건 중 대전청 15건, 천안지청 13건, 서산지청 5건 등 모두 33건의 재해 발생 상황 파악과 재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산재 요양 급여 승인 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한화이글스 류지현 감독 취임 한화이글스 류지현 감독 취임

  • ‘나Be 한마당에서 꿈 찾았어요’ ‘나Be 한마당에서 꿈 찾았어요’

  •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

  •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