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 산책]③환단고기 논쟁은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의 역사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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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사 산책]③환단고기 논쟁은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의 역사 전쟁이다

윤창열 대전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6-02-02 11:25
  • 제2뉴스팀제2뉴스팀
2025년 12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지향 이사장에게 던진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요", "동북아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은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환단고기의 진위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강단사학계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까지 가세하면서 논쟁은 급속히 확산 되었다. 그 과정에서 환단고기는 위서로,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역사학은 유사 역사학이자 사이비 역사학으로 규정되었고, 나아가 '망국 사학'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 가운데,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비판적으로 걸러내는 태도야말로 학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가 이미 위서로 판명되었으므로 책장을 펼쳐서조차 안 되며, 가짜 역사서이기에 어떠한 사료적 가치도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과연 학문적으로 정당한 일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환단고기라는 텍스트 내부에 한국 강단사학의 기존 틀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거대한 문제의식과 잠재적 폭발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환단고기에 대한 강단사학계의 과도한 반응은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이 조선총독부의 침략사관과 식민사관이라는 취약한 토대 위에서 형성되어 왔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인하는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점된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우리 고유의 역사를 통해 민족의 자존과 애국심을 고양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들이 공유한 역사관은 환국·배달국·단군조선·북부여로 이어지는 고대사의 국통맥을 중시하는 인식이었으며, 이러한 역사 인식의 집약체로 평가되는 것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환단고기를 감수하는 과정에서 나라의 쇠약함을 통탄하며 비분강개 끝에 자결한 해학 이기, 1911년 환단고기를 편찬하고 단학회를 이끈 운초 계연수, 그리고 환단고기 출판 자금을 지원한 홍범도·오동진 장군 등은 모두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의 삶과 실천은 환단고기가 단순한 문헌을 넘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의식과 투쟁 정신 속에서 형성·전승된 산물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1919년 3·1운동 이후, 같은 해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제23주년 3·1절을 맞아 발표한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우리 민족은 처음 환국이 창립된 이래 단군·부여·삼한·삼국·고려·조선·대한민국을 거쳐 5천 년의 국가 주권은 한민족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한국 강토에 근거해 서로 물려주면서 큰 난리를 겪어도 우뚝하게 독립하였고 민족의 광채를 보전하며 백 번 전쟁에 분발하여 시종일관하였고 전 국가의 인격을 보전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은 환인의 환국, 환웅의 배달국, 단군의 조선으로 이어지는 확고한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강단사학계가 말하는 한국사의 '뿌리'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조선총독부는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조직한 뒤, 1925년 칙령에 따라 이를 조선사편수회로 개편하고 본격적인 조선사 편찬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들이 편찬한 역사서는 '조선반도사'라는 틀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신민을 양성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조하며, 한민족의 고유한 역사의식을 말살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1938년 조선사편수회가 간행한 총 37권의 『조선사』는 환국·배달국·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상고사의 뿌리를 부정하고 국조를 부인하는 한편, 반도사관을 전면에 내세워 한민족의 역사와 민족성을 부정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이를 고착화하는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이병도, 신석호 등 친일 성향의 사학자들이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해 이러한 식민사관의 구축과 날조에 적극 가담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투쟁으로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을 맞이했지만, 불행하게도 해방 이후의 역사 인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이 공유했던 역사관이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남긴 매국적 식민사관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해방 이후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민사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만약 환단고기의 역사관이 정면으로 논의되고 학문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기존 강단사학계가 누려온 역사 해석의 권위는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역사 주권의 문제로 이어지며,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 교과서를 머리말부터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강단사학자들 스스로가 식민 매국사학의 연장선에 서 있었음이 공론의 장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기에, 그들에게 이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강단사학계가 마치 마녀사냥 하듯 환단고기를 극우 역사학, 사이비 역사학, 유사 역사학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부정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진위 논쟁은 단순한 문헌 논쟁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이 공유했던 민족 주체의 역사관과 조선총독부가 남긴 식민 역사관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역사 인식의 대격돌이다. 이는 곧 우리 역사를 우리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주체적 역사관, 곧 아적 역사관(我的 歷史觀)과 중국과 일본의 시각에 기대어 형성된 사대주의·식민주의 사관, 즉 비아적 역사관(非我的 歷史觀) 사이의 근본적인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이 싸움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역사 전쟁이다. 우리가 어떤 역사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자존과 역사 주권의 향방이 결정된다. 환단고기 논쟁이 결코 학계 내부의 소모적 논쟁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는 남의 시선으로 허락받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눈으로 자각하고 되찾을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창열 대전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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