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 산책]⑬한암당 이유립 순명 40주년, 스승과의 만남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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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사 산책]⑬한암당 이유립 순명 40주년, 스승과의 만남을 추억하다

오정윤 단학회 제7대 회원

  • 승인 2026-04-13 11:00
  • 수정 2026-04-13 13:33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시간은 거침없이 흐른다. 군대에 입대한지 3개월이 되었을 때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1986년 4월 18일, 한암당 이유립 스승님이 순명(殉命) 조천(朝天) 하셨다는 전보를 받았다. 그런데 이등병은 외출이 불가하였다. 중대장님은 보내 주고 싶었는데 대대의 방침이 그랬다. 그렇게 스승님을 떠나 보냈다. 나중에 많은 사형, 사제, 사저, 사매들로부터 장례를 잘 치루었다고 전해 들었다. 2026년 4월 18일은 벌써 40주기가 되는 날이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잘못 알려진 한암당 스승님의 인간적이고 학구적이며, 곧은 성품과 자세를 낯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인연은 바다에서 만나는 강물이다

1982년에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입학하였다. 그해 4월에 불암산으로 신입생 환영회를 떠났다. 그때 증산도 모태 신앙을 하는 학우(學友)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다. 곧 새로운 세상, 개벽(開闢)이 온다, 후천 가을의 종교가 있는데 꼭 소개해 주고 싶다고 하였다. 왜 나지? 입학한지 1개월 조금 지난 시점이었는데, 나중에 그 벗이 제게 들려준 말이 있다. 서울에 와서 혼자 그곳에 갔는데 덜컥 무서웠다고. 그래서 함께 갈 동무를 물색하다가 제가 눈에 띄었다고. 그리고 그날 저녁에 바로 동행하였다. 그것이 길고 긴, 그리고 아주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삼양동 어느 조그마한 빌딩의 옥상, 제 기억으로는 지금의 증산도가 서울에서 처음 시작된 곳이다. 그땐 무언가에 홀렸는지 4배 심고라는 걸 하고, 시천주 조화정, 그리고 훔치훔치 등의 주문을 낭송하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였다. 놀랍고 당혹스럽고 한편으로는 궁금하였지만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날 여러 증산도 서책과 자료를 받고, 친구가 건넨 역사서가 바로 환단고기(桓檀古記) 복사본이었다. 조병윤 사형이 오형기 선생에게 정서를 부탁하여 낸 환단고기였다.

환단고기가 아니었다면 발길은 더 이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들어본 역사책, 처음 읽은 역사책, 환단고기는 핵폭탄이었다. 지금도 나의 서가에 소중하게 꽂혀있는 한단고기, 벗이 준 복사본 환단고기, 이 책을 볼 때마다 '인연은 바다에서 만나는 강물이다'라는 오랜 격언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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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당 이유립의 대전 시절 옛집(대전 은행동 107-49)
상계동 언덕위 초라한 집

환단고기를 세상에 전한 한암당 이유립을 만나는 인연은 복잡하고 험난하였다. 1982년부터 국립도서관, 정독도서관, 외대도서관을 뒤졌다. 그런데 환단고기와 관련된 책은 찾지를 못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때 한국외대 교양국사 담당으로 오신 박창희 교수님이 '자유'라는 잡지에 환단고기가 실려있다며, 제게 원문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복사본을 재복사하여 드리고, 도서관에 가니 '자유'가 있었다. 박창희 선생님은 그후 국민학교명칭개정협의회 상임대표를 하실 때, 제게 집행위원으로 참여를 부탁하여 초등학교로 바꾸는데 조그마한 힘을 보탠 인연으로 이어졌다.

자유지에는 1976년 1월호부터 국사찾기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한암당 스승님의 글이 있었다, 얼마후 종로 인사동으로 자유를 발행하는 자유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발행인 박창암 장군이 커발한 다물회라는 청년들의 공부모임을 알려 주었다. 한암당 스승님의 제자들이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은 한암당 스승님의 두 번째 제자모임이었다. 거의 막내급으로 단학회 회원이 되었다. 우리는 훗날 첫 번째 제자모임, 두 번째 제자모임, 세 번째 제자모임을 제7대 단학회원으로 통일하였다.



공부, 공부, 원전은 무조건 외워라!

외우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어릴 때 한학을 하였고, 그 때문에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들어갔으니 고문관지(古文觀之)의 출사표, 추성부, 진정표, 난정집서, 귀거래사 정도는 줄줄 외우고 있었다. 커발한 다물회의 선배, 동학들은 1주일에 1회씩 일요일 낮에 공부하고, 오후에 상계동 스승님을 찾아가 뵙고, 모르는 것은 여쭙고, 격렬하게 토론하고 밥먹고 하는게 일상이었다.

한암당 스승님은 적어도 국학(國學), 단학(檀學)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삼국유사 고조선조, 광개토태왕비문, 훈민정음 해례본서문 정도는 외워야 했다. 나중에 이것이 단학회에서는 이화삼경(理化三經)이란걸 알았다. 여러 역사서에서 한국사 관련한 단편적인 문장은 지금도 줄줄 외우고 있다. 그만큼 공부의 기초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셨다.

단학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철학서, 사상서, 이념서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태백진경(태백진훈)을 홍익사서(弘益四書)라 부르고 나중에 태백속경을 추가하여 홍익오서라고 정의하였다. 단학회 후학들은 적어도 이화삼경, 홍익오서 등은 줄줄 외웠다.

많은 이들은 환단고기를 공부한 이들을 환빠라고 경멸하는데, 적어도 그때는 중국의 고고학보, 문물(文物), 사기와 한서 등 중국 25사, 중국사전사화와 고사변 등 중국의 단행본 역사서 등을 복사해 공부하고 토론하였다. 중국 관련 서책과 잡지 등은 대우학술재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적어도 한암당의 제자들은 환상적 환빠가 아니라 문헌근거와 고고유물 등을 중시한 실증적 환파(桓派)였다,

한암당 스승님은 철저하게 문헌근거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질의응답 하는걸 좋아하셨다. 어떤 주장을 하면 철저하게 근거가 되는 문헌자료를 찾아 베끼고 외우도록 하였다. 반드시 해당 역사의 논문과 단행본을 읽으라고 하였다. 역사학자를 꿈꾸지 않은 후학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를 읽었고, 조선왕조실록 번역본이 나오기전에 국립도서관에서 원문으로 읽었다. 해석이 안되면 여러번 읽고 또 읽어서 해독하였다. 이것이 단학회의 공부방법이었다.

역사학과만이 역사를 공부한다는 오만은 독점이란 이름의 편협성에 불과하다, 경제학은 경제학사가 있고, 문학은 문학사가 있고, 건축은 건축학사, 음악은 음악사, 미술은 미술사, 철학은 철학사가 있다. 환파(桓派)는 모든 학문의 기반에 역사가 있고, 그 역사가 어떤가에 따라 각 분야의 통사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역사학을 위한 역사가 아니라 인문학 모든 분야를 위한 역사공부를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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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당 이유립의 묘소(운경공원묘원 제2지구 992번)
사회변혁을 꿈꾼 이들, 운동권에 스며들다!

1980년대 초반의 단학회 제자들 가운데 여럿은 사회변혁을 꿈꾸었다. 많은 선배들이 언더(지하써클)에 속하였다. 특히 고구려 정통론을 주창하는 북한 역사학계의 동향과 주장, 내용에 관심이 많았다. 여기서 보듯이 오늘날 환빠라고 불리우는 인물군과 단학회 회원들은 출발점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는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80년대 단학회 모임 자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한국현대사의 질곡에서 민족, 통일, 자주, 민주화를 지향한 많은 단학회 회원들과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추종하는 일부의 환빠들은 애초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었다. 현행 사학계에서 일부 편향적 사고를 지닌 환빠 공격의 선두에 있는 이들은 환단고기와 연관있는 사람들에 대해 옥석을 가리지 않고 퉁쳐서 환빠라고 비아냥 거리는데, 군부독재 시절에 사회적 비판조차 못하고 독재권력에 아부하고 굴종한 어용 역사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신 현재의 강단사학 후배들은 스승에 대해 혹독한 비판의 칼날을 겨누지 못한다. 이게 얼마나 이율배반적 태도인가?

단학회 선후배들은 각자의 노선에 따라 한배달, 맥이민족회, 한국민족청년회 등 민족세력의 역사운동에도 스며들었다. 대표적 민중진보 계통의 서울민중연합, 진보정치연합과 정치적 민주세력인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민주당에서 활동하였고, 동아시아 민중단체들의 연합체인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지배를 반대하는 아시아공동선언(AWC)'에서 국제적 연대활동에도 참여하고, 일부는 민간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 범민족연합,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에서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아직도 현장에서 사회의 민주화, 진보운동 진영에서 여전히 발을 딛고 현장의 일꾼으로 숨쉬고 있다. 이렇게 여러 조건, 단체,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을 환빠라는 이름으로 멸시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실현하려는 한암당 스승님의 제자들을 우롱하는 독단적 만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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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당 이유립 순명을 알리는 커발한지 63호
대영절과 개천절, 강화도 마리산 단학동

단학회는 한암당 스승님이 생존해 계실때는 단단학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고, 청년모임은 커발한 다물회라고 불렀다. 스승님은 남북한 통일이 이루어지면 백두산에 본부를 옮기고 단학회로 복귀한다고 언명하였다. 안타깝게도 백두산에 본부를 두는 원대한 포부는 생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만 단학회라는 명칭은 원래도록 환원하였다. 단단학회는 이제 단학회이다. 단학회(단단학회)는 매년 전통력으로 3월 16일을 대영절, 10월 3일은 개천절로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남북통일과 민족중흥을 기원하였다. 단학회 본부는 마리산 중턱 단학동에 자리잡고 있었다.

늙으신 몸(노구)을 이끌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마리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을 회상하면 한암당 스승님의 역사광복, 민족중흥과 남북통일의 의지와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대전 은행동 시절의 낡은 집, 상계동 시절의 팍팍한 삶. 김포에서의 곤궁한 삶. 마지막 거처였던 화곡동에서의 생활에서도 대배달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밝히는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다.

글쓰기에 필요한 자료, 고증에 문제가 생기면 제자들에게 해당 문헌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제자들은 한문으로 된 어렵고 귀한 책들을 복사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인사동 통문관 등에서 고서들을 사서 드렸다. 그럼 스승님은 공책에 원문을 옮기고, 책은 소중하게 서가에 꽂아 두었다. 한암당 이유립은 그런 성품의 학자였고, 스승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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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학회에서 세상에 전한 환단고기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청년 환파(桓派)를 기대하면서

환단고기는 위서일 수 있다. 거기에는 후대의 인식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서는 그래서 위서이다. 그래도 사실이 있기에 진서이다. 당대의 역사를 전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위서와 진서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후학들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해야 한다. 한암당 스승님은 환단고기의 내용을 의심하라고 했다. 내용의 사실 여부를 끊임없이 실증하라고 하였다. 아울러 단학회 선배들도 저한테 수없이 한 말이 우리도 환단고기를 의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책속의 역사를 실증하는, 증명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지금도 한 잔의 막걸리, 맥주를 마시게 되면 침 튀기며 외치던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단학회의 후학들은 학인(學人)의 길보다 지사(志士)의 뜻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역사에서 정답은 없다. 각자가 그때의 시간과 공간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시대정신을 실현하는 마음이 모두 웅대하거나 원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세상을 바꾸듯이, 작은 촛불이 모여 혁명의 깃발을 훤하게 밝히듯이. 단학회의 후학들은 지금도 개혁을 밀어주는 민주시민,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의 일원으로 집에서는 가장(家長), 어느 누구의 부모이면서 어느 분의 자식으로 살면서,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주민으로 일상을 보내는 그저 소소한 행복추구 소시민일 뿐이다. 이제 환파의 미래를 기대하면서, 한암당 이유립 스승님의 순명 40주기를 소환한다. 그리고 기일인 4월 18일에는 영면하신 한암당 묘소에 가서 슬프지만 당당하게 소주 한잔 올린다.

오정윤 단학회 제7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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