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베긴 독트린의 오만, 핵전쟁의 문턱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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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긴 독트린의 오만, 핵전쟁의 문턱에 서다

정한용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

  • 승인 2026-04-21 16:20
  • 신문게재 2026-04-22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정한용
정한용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
1981년 메나헴 베긴 총리에 의해 정식화된 '베긴 독트린'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핵전략의 핵심축으로 기능해왔다. 그 요지는 단순하다. 적대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전에 군사력으로 이를 제거한다는 '선제적 핵확산 차단' 전략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 2007년 시리아 알키바르 원자로를 선제 타격하며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2026년 이 독트린은 더 이상 '억제 전략'이 아니라 '핵전쟁 유발 요인'으로 변질되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이란 부셰르 원전에 대한 공격 사례에서 보듯, 가동 중인 핵시설에 대한 군사행동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방사능 재난이라는 인류적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조차 "정밀 타격이 핵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이란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보여준 행보가 '오만'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핵 금기의 붕괴이다. 원전과 같은 핵시설은 전시에도 공격하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의 사실상 금기로 작동해 왔다. 특히 IAEA는 핵시설의 물리적 건전성 유지 원칙을 강조하며 공격 금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동 중인 부셰르 원전을 반복 타격한 것은 이러한 금기를 허물고, 향후 분쟁에서 핵시설이 정당한 공격 목표로 간주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

이스라엘의 선제타격과 이에 대한 이란의 보복이 맞물리며 이번 충돌은 '핵시설 대 핵시설'이라는 보복의 악순환, 즉 사실상의 핵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정밀타격'을 주장하지만, IAEA는 "군사적 정밀함이 핵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는 방사능 확산과 환경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전쟁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중대한 위험요인이다.

둘째, 위협의 자의적 규정이다. 핵확산 여부는 국제적 검증과 합의를 통해 판단되어야 함에도, 특정 국가가 자체 정보와 판단에 따라 위협을 규정하고 선제타격을 감행하는 것은 국제질서를 약화시키는 행위다. 이는 규범 기반 질서를 무너뜨리고 '힘의 논리'가 국제정치를 지배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더 나아가 각국이 자의적 위협 인식을 근거로 군사행동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선례'를 확산시켜, 국제사회 전반의 불확실성과 충돌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셋째, 예방전쟁의 일상화이다. 베긴 독트린은 본질적으로 잠재적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예방전쟁 논리를 내포한다. 이는 상대의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선제공격과 달리, 미래의 가능성에 근거한 군사행동이라는 점에서 국제법적 정당성이 더욱 취약하다. 이러한 예방적 성격의 선제공격이 반복될수록 국제사회는 상호 불신과 군비경쟁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상대국은 선제공격의 대상이 되기 전에 억제력을 확보하려는 유인을 강하게 느끼게 되며, 이는 결국 핵개발 가속화라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넷째, 핵질서의 이중기준이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식되면서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핵 모호성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주변국의 핵개발은 군사력으로 저지하려는 태도는 핵비확산 체제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훼손한다. 이는 "핵을 가져야 안전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확산시키며 핵 도미노를 촉진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이중기준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핵비확산 체제 자체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구조적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는 정책 차원을 넘어 국제정치의 구조적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국제 언론의 분석은 이러한 흐름을 보다 분명히 보여준다. 가디언은 지난해 6월 23일 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가 공조하여 '폭탄으로 중동을 재편'하려는 전략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행동이 아니라 정치적 설득과 심리적 영향력이 결합된 결과였다.

이와 같은 분석은 단순한 외교적 해석을 넘어, 정책결정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영향력 메커니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우발적 선택이 아니라, 개인적 관계와 전략적 계산, 그리고 정치적 설득- 나아가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심리적 영향력- 이 중층적으로 작동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인식과 심리, 정보가 결합된 '복합 권력'은 정책결정을 좌우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갈등 양상은 보다 구조적인 충돌로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는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경고한 문명 단층선의 현실화와 맞닿아 있다. 특히 그는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이 서구의 오만, 이슬람의 편협,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러한 문명 단층선의 충돌 구조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유사한 전략적 조건을 가진 지역에서 반복될 수 있는 보편적 패턴이다.

이 문제는 한반도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북한과 중국은 핵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다. 헌팅턴이 지적했듯 미국은 핵보유국과의 직접 충돌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신중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의 선제타격은 상호 핵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그 결과는 파국적일 수 있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선택해서는 안 되며, 북한 역시 어떠한 명분으로도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핵은 억제의 수단일 뿐, 사용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한다. 결국 한반도 안보는 '선제사용'이 아니라 '상호 억제' 원칙 위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베긴 독트린은 한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핵의 시대에 오만한 선제공격은 억제가 아니라 파국을 부를 수 있다. 지금 국제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절제된 억제와 책임 있는 전략적 선택이다.

/정한용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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