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다문화] 여름이면 생각나는 풋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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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다문화] 여름이면 생각나는 풋호두

  • 승인 2026-09-06 11:31
  • 신문게재 2026-02-21 19면
  • 충남다문화뉴스 기자충남다문화뉴스 기자

필자는 매년 여름 중국 시안의 고향집을 방문해 아삭하고 은은한 단맛이 나는 풋호두를 먹으며 어머니의 사랑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깁니다. 과거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정성껏 호두를 까주셨듯 이제는 필자가 자신의 아이에게 풋호두를 직접 까주며 세대를 이어가는 계절의 맛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국 지인들에게도 생소한 풋호두의 맛은 무더운 여름을 초록빛 싱그러움과 달콤한 향수로 채워주는 특별한 매개체가 됩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풋호두(당리)2
매년 7월이나 8월, 중국 시안의 고향집에 돌아가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앞 과일가게로 달려가 여름마다 기다리던 맛을 찾는 것이다. 조금 의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과일가게에서 찾는 것은 바로 풋호두다.

고향 시골에서는 한여름이면 풋호두가 익기를 기다렸다. 호두나무에는 동글동글한 초록색 열매가 가득 달려 있었다. 풀냄새가 살짝 나는 푸른 껍질을 벗기면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갈색 호두 껍데기가 나온다. 이때는 껍데기도 아직 촉촉해서 살짝 힘을 주면 쉽게 열린다. 호두알을 감싸고 있는 얇은 껍질까지 벗기면 하얀 속살이 나온다. 먹으면 아삭하고 은은하게 달다. 전혀 기름지지 않다.

밤이면 여기저기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친한 친구들과 풋호두를 한가득 가져다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껍질을 벗기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탁자 위에는 푸른 껍질과 깨진 호두 껍데기가 수북이 쌓였고, 우리 손도 모두 새까매졌다. 풋호두 즙은 좀처럼 씻기지 않는다. 옷에 묻기라도 하면 엄마한테 꼭 한소리를 들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풋호두(당리)1
어릴 적 낮잠에서 깨어나면 탁자 위에는 늘 껍질을 벗겨 놓은 새하얀 풋호두가 한 무더기 놓여 있었다. 신선한 호두알은 오래 두면 산화되어 금세 색이 어두워진다. 그래서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우리가 낮잠에서 깨어날 시간에 맞춰 조금 전 하나하나 벗겨 놓은 것이었다.

이제 시안에 돌아가면 나도 아이에게 풋호두를 까 준다. 한국에서 가을이 되면 아이와 함께 밤나무 아래에서 밤송이를 줍는다. 한여름의 호두와 가을의 밤. 그 초록빛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계절을 기억하는 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풋호두를 잘 밀봉해 가져와 지인들에게 나눠 준 적이 있다. 한국 친구들도,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 온 친구들도 모두 풋호두는 처음 먹어 본다고 했다. 아삭하고 은은하게 달아서 신기하다고 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길고 덥다. 어린 시절의 한여름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까지 덥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도 많이 더웠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떠오르는 건 나무 가득한 초록빛과 입안에 남아 있던 은은한 단맛이다.
당리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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