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랑', 비랑은 비탈의 이 지방 사투리라고 한다. 도시발전 추세에 따라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었던 동피랑 지역은 서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다는 역사적, 인문지리적 배경 외에도 통영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뛰어난 입지를 바탕으로 밋밋하고 획일적인 재개발의 소용돌이에 앞서 지역 특화사업을 강구하게 되었다.
2007년부터 불과 3년 만에 동피랑은 몰라보게 변신하였다.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럽던 동네 정경이 문화, 미술의 옷을 입고 새롭게 변신했다. 그간 2번에 걸친 공모전을 열어 개성에 충만한 다양한 벽화가 덧입혀지면서 문화와 삶이 접목되는 공공미술 명품화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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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파른듯한 동피랑 언덕을 오르면 탁 트인 통영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짐짓 여유있게 느긋한 발걸음으로 각양각색의 벽화를 둘러보면서 슬로 시티, 슬로 라이프의 실물감을 확인하게 해준다.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라고 부른다. 이 말이 떠올라 나폴리에 갔을 때 이곳저곳 유심히 관찰했지만 통영보다 그다지 빼어난 요소를 찾기 어려웠다. 유럽 문화의 발상지 이탈리아에 있는 미항이라는 선입견이 없다면 나폴리는 그저그런 항구도시에 불과할 것이다. 통영은 나폴리가 갖지 못한 미덕과 강점이 여럿 있다.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고 해저터널 같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에서 역사를 읽는다. 최근 조성된 여러 문화시설과 기반 특히 이 고장 출신 예술인들의 혼과 열정이 통영 곳곳에서 묻어난다. 유치환,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같이 20세기 한국문화예술사를 대문자로 장식한 분들은 물론이려니와 평생 통영에서 작업하며 예술의 중앙집중에 무언으로 맞서다 최근 별세한 전혁림 화백 같은 인물들이 기라성처럼 빛나는 통영문화의 소프트 웨어는 지방 소도시라는 태생적 한계를 훌쩍 뛰어 넘는다.
절경과 명승지, 미식, 걸출한 인물배출 같은 문화관광의 기본 요소 외에도 통영은 이제 동피랑이라는 인상적인 문화공간으로 화룡점정을 찍는지도 모른다. 사실 산비탈 마을 가옥 벽면에 그려진 다소 투박해 보이는 벽화만으로 동피랑의 생명력은 충분치 않다. 음악회, 마을축제, 사생대회, 백일장, 사진전, 벽화공모전 그리고 리모델링 주택 임대 같은 다양한 사업과 이벤트로 연중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기획력이 여기에 뒷받침되고 있다.
이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재개발'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또 어느 때 동피랑에 들이닥칠지 모른다. 2년마다 공모전을 통하여 벽화를 새롭게 교체하고 철거보다는 시민협의를 통한 마을 만들기라는 상식과 순리가 방금 싹을 틔운 동피랑의 문화민주주의를 주목해보자.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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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