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림같은 태안해변 한번 걸어볼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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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그림같은 태안해변 한번 걸어볼까유?

  • 승인 2016-06-02 14:55
  • 신문게재 2016-06-03 9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주말여행]태안해변 걷기여행


“거긴 안 간다니께유. 저 아줌씨 몇 번이나 얘기혔는디 못 알어들으시네. 버스에 붙은 노선에두 써 있는디.” “아이구, 기사님이 이해허셔야쥬. 우리겉은 사람덜은 배우기를 혔나. 저 아줌니두 글자를 모르니께 그런 거 아뉴. 안그류?” “차가 출발혔는디 따라오믄서 문을 뚜드리면 워치게 헌대유? 사고라두 나면 아줌씨가 책임지실규?” “얼래? 내가 왜 책임진댜? 난 거든 거 밲이 읎는디? 기사님 심판읎네, 참말루.” “기사양반 운전허는디 자꾸 말 시키지 말어. 정신읎어서 운전 지대루 허겄남?” 덜컹거리는 시내버스 안에서 사방팔방으로 몸을 흔들며 졸다 눈을 떴다. 운전기사와 어르신들간의 작은 분란 때문이다. 손에 들려 있던 물병은 잠결에 놓쳐 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태안에 왔다. 태안 여행은 이번이 네 번째다. 몇 년전 처음 태안에 왔을 때의 놀라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름유출사고 지역에 가보려고 왔던 것인데 뜻밖의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무지몽매했구나. 알고보니 태안해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었다. 늦가을 태안은 하늘도 바다도 짙푸른 코발트색으로 물들었고 위풍당당한 해송은 귀족의 풍모를 자랑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순간의 실수로 씻기 힘든 기름으로 범벅됐었다니…. 여행하다 보면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 있다. 울릉도, 통영, 제주도, 부산, 강릉, 속초, 지리산 언저리, 옥천 금강변 등. 그리고 이곳 태안이 그렇다. 버스타고 두시간이면 닿는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지가 있었다니, 너무 늦게 안 나 자신을 자책할 정도였다.

장미 향이 희미해지는 5월의 마지막 주말, 태안 해변길을 걸었다. 첫째날은 학암포에서 구례포까지 산책하듯이 걸었다. 옅은 안개와 낮게 깔린 구름 아래서 혼자 걸으면서 존 파울즈의『프랑스 중위의 여자』 사라 우드러프가 생각난 건 뭘까. 강한 바람이 부는 코브 방파제 위를 걷는 고독한 인물 사라! 다음날은 몽산포에서 드르니항까지의 솔모랫길을 걸었다. 이른 아침 이슬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대지는 향기롭고 촉촉했다. 밭을 가는 농부와 마늘 고동을 뽑는 아낙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뻐꾹새의 울음소리와 하얀 찔레꽃도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철썩 철썩'.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들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 나에게 여기 몽산포 해변길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게다가 아무도 없다. 가만히 귀 기울여 바다의 속삭임을 듣는다. 부드러운 흰 모래를 딛는 발이 조금 빨라진다. 내 발바닥은 늘 자극에 굶주려 있다. 5월의 햇살과, 뺨과 목덜미를 스치는 달콤한 바람아래 나 자신을 남김없이 드러내 온몸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왜 여행을 떠나면 모든 사물이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워 보일까. 해풍을 맞으며 핀 진분홍의 해당화가 신기하기만 하고 바람에 너울거리는 키 큰 풀들을 쓰다듬으며 기쁨에 달뜨기도 한다. 피카소는 자기 인생의 나머지 절반은 어른이 되는 데 보냈고 나머지 절반은 아이가 되는 법을 배우는 데 보냈다고 한다.

잠시 쉴겸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벤치에 앉았다.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바다는 그래서 가장 야성적이고 자유로워 보인다. 삶도 해안의 모래만큼이나, 파도를 일구는 바다만큼이나 다양하고 격정적이다. 저 바다를 건너면 어떤 세계가 있을까. 늙고 힘들어 탈출하지 못하겠다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파도가 무섭게 일렁이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정복자 펠레'에게 꿈은 가능할까. 바닷물이 비고 다시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불굴의 모험심으로 이 짧은 여행을 마쳐야 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한낮이 되면서 구름은 말끔히 걷혔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 계속 걸었다. 바지락 캐러 가는 어부의 아내와 나무그늘에 앉아 그가 어린 처녀였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를 들으며 사탕을 나눠먹기도 했다.

걷는데 좀 성가신 따가운 햇볕이 곰섬에선 고마운 존재란 걸 알았다. 염전바닥에선 소금의 결정체가 자라는 중이었다. 바람과 햇볕과 기온 그리고 사람의 노동력이 보태져 우리에겐 없어선 안되는 '하얀 금', 소금이 탄생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26살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도회지에서의 직장생활이 힘들고 재미없었다. 아버지의 소금 만드는 일이 너무 고되서 아들은 도시의 삶을 선택했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젠 한 눈 팔지 않고 아버지의 소금밭에서 어깨가 뻐근하도록 가래질을 하지만 청년은 아직 멀었다는 걸 안다. 어쩌면 아버지의 소금창고를 당당하게 건사하기까지의 그길은 지난할 지도 모른다. 삶의 여정이 그러하듯이.

가는 길
버스로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첫차가 6시 40분에 있다. 고속버스 타면 2시간 걸린다. 단 예산, 홍성을 거치는 코스는 훨씬 많이 걸린다.

먹거리
태안은 해안가라 맛있는 음식이 풍부하다. 여름엔 부드럽고 담백한 밀국낙지와 붕장어 통구이가 유명하다. 봄에는 꽃게, 가을엔 대하. 전어, 겨울엔 뭐니뭐니해도 물텀뱅이탕과 굴이 최고다. 개인적으로 씹으면 고소한 전어구이를 좋아한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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