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남녀가 평등했던 조선의 가족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 내일] 남녀가 평등했던 조선의 가족

박윤옥 전 국회의원

  • 승인 2018-02-18 10:58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박윤옥
박윤옥 전 국회의원
설 명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며느리의 권리를 찾아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명절 연휴 동안 이어지는 대가 없는 노동, 이것은 여성 인권의 문제이며 며느리도 친정엄마와 함께 밥 먹을 권리가 있다, 내 엄마를 두고 남편 엄마 일을 도와야 하는 며느리의 역할, 남자들이 먹는 동안 음식 시중들다가 식은 밥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며느리의 비애를 끊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 는 내용이었다.



명절 문화를 한순간에 바꿀 수도 없는 건데, 오죽하면 저런 글을 올렸을까 싶은 생각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명절마다 반복되는 며느리들의 스트레스 명절 증후군. 그 원인은 명절을 치러내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명절 일이 온통 "며느리의 몫"이며 고부간의 문제, 즉, 집안 내 여성들끼리의 갈등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음식준비부터 손님맞이까지 시댁에서 명절을 치러내는 일은 여전히 며느리의 몫이다.

며칠 전부터 와서 음식을 준비하고 명절 후에도 뒷정리 때문에 친정으로 향하지 못하는 맏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뒷정리 때문에 며느리를 친정에 보내지 못하는 시어머니나 뒤늦게 선물하나 사들고 온 손아랫동서, 명절 아침 일찍 친정으로 온 시누이가 아닌, 명절 가사를 며느리의 의무로 규정해온 모든 가족들이라는 것을 남자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것일까.

모르는 이들, 혹은 모른 척 하는 이들은 남녀가 평등한 명절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이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며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은 전통을 부정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남성의 가족에 집중된 이러한 명절 문화가 정말 우리 고유의 전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남성중심의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가 시작된 것은 고작 200~300년 전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성사를 쉽게 풀어쓴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이순구 著)'을 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지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의 가족은 남성중심이 아니었다. 결혼은 두 가문의 만남이었으며 남편과 아내는 각 가문의 대표였고, 그렇기에 서로 동등한 조력자였다.

18세기까지 이어진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관습에 나타나듯 당시 결혼식을 마친 후 부부는 아내의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남편은 본가와 처가를 오갔다.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닌 장가드는 것이다. 신사임당 역시 결혼 후 20년 가까이 강릉 친정에 머물지 않았던가.

남귀여가혼에서도 나타나듯, 당시 여성 집안의 영향력이 컸으며 아들과 딸의 권리와 의무는 비슷했다.

17세기 조선에서 딸이 친정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혼인해서 남자가 여자 집에 살고 있다 보니 딸과 사위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러다보니 친정부모의 제사를 지내는 조선시대 여자들의 제사에 대한 느낌은 명절을 준비하는 지금 여성들의 마음과는 달랐을 것이다.

제사뿐 아니라 재산상속에서도 아들과 딸의 권리는 동등했다.

세종대왕은 "혹 부모가 죽은 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한 가족이면서 노비와 재산을 모두 가지려는 욕심에서 혼인한 여자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는 것을 꺼리는 자가 있으면 엄히 죄를 주도록 하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지금보다 조선시대가 여성의 인권에서 훨씬 앞서있다 할 만하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이혼율이 증가한다고 한다. 전통에 억눌린 여성의 권리가 명절증후군이라는 후유증을 부르고 그것이 이혼율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청원을 올린 (아마도 젊은)며느리의 주장도 명절을 없애자는 게 아닌 남녀가 평등한 명절, 진짜 전통적인 우리 명절 문화를 찾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캐롤린 엠케는 그의 책 "혐오사회"에서 '어떤 관습이나 제도도 인권을 훼손할 수도 없고 훼손해서도 안 된다'라고 했다. 전통 혹은 관습이라는 명목으로 여성의 인권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얽매고 있었던 명절 문화에 대해 가족과 사회 모두가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박윤옥 전 국회의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온기 페스티벌" 양산시, 동부 이어 서부 양산서 13일 축제 개최
  2. 천안 불당중 폭탄 설치 신고에 '화들짝'
  3.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4. '벌써 50% 돌파'…대전 둔산지구 통합 재건축 추진준비위, 동의율 확보 작업 분주
  5. 천안시, 2026년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참여자 모집
  1. 대전 학교 냉난방 가동 체계 제각각 "중앙통제·가동 시간 제한으로 학습권·근무환경 영향"
  2. [중도초대석]김연숙 심평원 대전충청본부장 “진료비 심사, 의료질 평가...지속가능한 의료 보장”
  3. ‘조진웅 소년범’ 디스패치 기자 고발당해..."소년법, 낙인 없애자는 사회적 합의"
  4. [충남 소상공인 재기지원] 노후 전선·붕괴 직전 천장… 충남경제진흥원 지원 덕에 위기 넘겨
  5.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헤드라인 뉴스


‘호국영령, 충남 품으로’… 부여국립호국원 건립사업 탄력

‘호국영령, 충남 품으로’… 부여국립호국원 건립사업 탄력

조국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을 기리고 모시는 ‘부여국립호국원’ 조성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전국 광역도 중 유일하게 국립호국원이 없었던 설움을 씻어내고 충남에서도 호국영령을 제대로 예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은 9일 총사업비 495억원 규모의 부여국립호국원 조성사업을 위한 2026년 타당성 연구용역비 2억원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올해 1월 말 기준 충남 보훈대상자는 3만3479명으로, 참전유공자·제대군인 등을 포함한 향후 국립묘지 안장 수요는 1만8745명으로..

흔들리는 국내 증시에도…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179조 원 돌파
흔들리는 국내 증시에도…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179조 원 돌파

인공지능(AI) 버블 우려와 미국 12월 금리 변동 불확실성으로 국내 증시가 흔들리고 있지만, 충청권 상장사들의 주가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일반서비스와 제약 업종의 활약이 돋보이면서 한 달 새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전월 대비 4조 5333억 원 증가했다. 한국거래소 대전혁신성장센터가 9일 발표한 '대전·충청지역 상장사 증시 동향'에 따르면 11월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179조 446억 원으로 전월(174조 5113억 원) 보다 2.6% 늘었다. 같은 기간 충북 지역의 시총은 2.4%의 하락률을 보였다. 대전..

태안화력발전소 폭발 사고 발생… 2명 중상입고 병원 이송
태안화력발전소 폭발 사고 발생… 2명 중상입고 병원 이송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9일 오후 2시 43분께 "태안화력발전소 후문에서 가스폭발로 연기가 많이 나고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인력 78명과 소방차 등 장비 30대가 현장으로 출동했다. 해당 폭발로 인해 중상을 입은 2명은 병원으로 이송 중이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현장에 도착한 지 1시간여 만인 오후 3시 49분께 초진을 완료했고 현재 자세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내포=오현민 기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