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향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책 향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승인 2019-08-08 17:21
  • 신문게재 2019-08-09 9면
  • 김유진 기자김유진 기자
김기수 증명사진
김기수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사
위건부두로가는길
조지 오웰 저, 이한중 역, 한겨레출판사, 2010
2019년 여름 대한민국의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를 꼽으라면 "냄새"가 순위에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축하하듯 봉준호는 영화 '기생충'으로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만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속 불편한 냄새를 떠올린 사람들이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미쌍관 구조의 닫힌 영화 속 이야기는 우화고, 블랙코미디니까 웃으라고 말하지만 희망이 꺾인 삶의 모습은 보는 이를 답답하고 불쾌하게 만든다. 르포 속 실상은 처참하지만 주장은 속 시원하다.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1, 2부로 나누어 1부는 탄광 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생활의 실상을, 2부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언급하며 그 적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파시즘의 광풍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영화 '기생충' 속 냄새처럼 작가도 냄새를 통해 사회구조 속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환경과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지식인에게 위선적 교양과 과거 부르주아적 습관, 학습된 기억, 혐오스런 인상을 버리라고 한다. 냄새를 통한 고발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삶과 노동에 대한 그의 시선도 주목하면서 읽으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리스펙트!"를 외치며 박 사장이 집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에 맞춰 센스있게 밝혀주던 근세는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며 센서 등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며 죽음의 한 가운데서 조난위기신호를 보내지만 간단한 안주인 연교는 자동센서가 왜 가끔 고장 난 것처럼 깜빡이는지 의아할 뿐이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출근길에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차량이 제 시간에 움직이지 않으면 기관사가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다며 그들을 비난하거나, 그냥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무심하지 않았던가? 석탄을 나르는 벨트에 몸이 두동강 난 채로 방치되었던 청년의 죽음이 불과 반년 밖에 지나지 않은 2016년 말의 일임에도 마치 1936년에 광부들이 탄 승강기가 추락해 노동자 여럿이 죽었다더라 하는 책속의 일처럼 일상처럼 '간단'하게 여기고 살진 않았던가?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단순하고 깔끔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해왔던 이 세상은 사실 수많은 노동자의 피땀과 눈물, 그리고 한숨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처럼 그걸 잊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우리 함께 '위건 부두'로 가자. 노동 현장을 바로 보고, 땀 냄새를 곁에서 맡으며 함께 가자. 진보인척, 사회주의자인척 하지만 사실은 냄새를 혐오의 도구로, 선을 긋는 그 적들을 찾아내자. 그 적의 모습을 아침 세수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옆에 끼고 동네카페에서, 동네책방에서 독서모임을 만들어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직장동료, 선후배, 친구, 지인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수다'를 떨어보자.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투쟁 조끼를 입고 연대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먼저 해야 할 과제가 바로 그 '수다'와 '정기적인 만남'과 '독서모임'인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이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대한민국에 이민 와서 살다가 기생충을 봤다면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우리 이제 모여 앉아 서로에게 나는 냄새는 맡아보고, 그 냄새를 견뎌볼까요? 냄새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우선 그게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악취를 없애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토론해봅시다. 모두가 향기 나는 세상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 무엇부터 이야기해볼까요? 편하게 이야기 해봅시다. 그렇게 어울리다가 같이 냄새날까, 노동자계급으로 굴러 떨어질까 불안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잃을 것은 근혜체 내지 보그체 아니면 '명징'이나 '직조' 정도의 어려운 단어들밖에 없을 테니까요."
김기수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나성동 '도시상징광장'서 매주 릴레이 축제
  2. 이종수 미술관 건립 '빨간불' 정부 사전평가 또 고배
  3.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 2024 참가기업 모집
  4. [사이언스 칼럼] 4개의 사과 이야기
  5. 법무보호복지공단 대전, 키오스크 등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
  1. 대전둔산경찰서-서구청, 둔산동 클린화 캠페인 진행
  2. 거점국립대 교수 시국선언 "의대 정원 합리적 조정을"
  3. 학생 안전관리에 학부모 민원까지… 교사 현장체험학습 '이중고'
  4. "가뜩이나 어려운데…" 식당서 먹고 튀는 '무전취식' 횡행
  5. [포토] 이상래 대전시의회 의장 "주민자치, 지방시대 실현의 필수 조건"

헤드라인 뉴스


[취임 2주년] 국힘 “진솔”· 민주 “실망”· 조국당 “3년은 너무 길다”

[취임 2주년] 국힘 “진솔”· 민주 “실망”· 조국당 “3년은 너무 길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은 “진솔했다”고 평가한 반면 야당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혹평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에 대해선 찬성하며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정희용 수석대변인은 9일 논평을 내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모든 현안에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민생의 어려움에 대한 송구한 마음을 직접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질책과 꾸짖음을 겸허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시즌1 파이널 경기 10일 성공적 개막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시즌1 파이널 경기 10일 성공적 개막

'2024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프로 시리즈(PMPS)' 시즌1 파이널 경기가 10일 대전 이스포츠 경기장(대전드림아레나)에서 성공적으로 개막했다. 이번 경기는 앞서 3월에 개최된 시즌0에 이어 본격적인 프로시리즈가 시작되는 경기로, Beyond Strotos Gaming, Dplus 기아, 덕산 ESPORTS, Eagle Owls, emTex StormX, 젠지 Esports, IFYOUMINE GAME PT, 미래앤세종, 농심 RedForce, ROX, ANGRY, FOCUS, INFINITY, Join uS, VEGA ESPOR..

따뜻한 한끼에 커지는 나눔…도시락 봉사 훈훈
따뜻한 한끼에 커지는 나눔…도시락 봉사 훈훈

어려운 이웃에게 정기적으로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는 50대 음식점 사장이 있어 훈훈함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전 중구 오류동에서 도시락과 토스트 전문점 '나두나두'(NADU NADU)를 운영하는 김은주(51)씨다. 김씨는 얼마 전 중도일보 유튜브 '곽성열의 판 깔아드립니다' 생방송 중 댓글 이벤트에 당첨된 당첨자 이름으로 손수 만든 도시락을 중구에 사는 불우이웃에게 전달했다. 무료로 주는 도시락이라고 해서 대충대충 만들지 않았다. 김씨가 전달한 도시락은 흰쌀 밥에 국, 일곱 가지 반찬이 곁들어져 있어 든든한 '한 끼'로서 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金값된 김값’…장바구니 물가 부담 ‘金값된 김값’…장바구니 물가 부담

  • ‘온천에 빠지다’…유성온천 문화축제 10일 개막 ‘온천에 빠지다’…유성온천 문화축제 10일 개막

  • 윤석열 대통령 입에 쏠린 관심 윤석열 대통령 입에 쏠린 관심

  • ‘5월의 여왕’ 장미 만개 ‘5월의 여왕’ 장미 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