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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는 남자>, 자코메티, 1947 |
현대미술, 특히 조각 전시회에 가면 빼빼 말라 뼈대만 가져다 놓은 듯한 작품들이 있다. 어딘가 공허해 보이고 결핍되어 보이는 그 이미지를 처음 조각으로 구현한 이가 바로 자코메티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개>를 봤을 때는 그닥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지만, 볼수록 눈이 가고 마음이 갔다. 조각의 가는 뼈대 하나하나에 배어있는 짙은 허무를 느꼈기 때문이다.
스위스 후기 인상파 화가 조반니 자코메티의 아들이었던 그는 아홉 살에 드로잉을 시작했다. 열네 살에 첫 조각 작품을 만들고 열여덟 살에 제네바에서 공부를 했던 자코메티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 그곳에서 고대 건축물을 스케치하고 공부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대가들을 흠모했던 그는 파리로 유학을 간 첫 4년간은 조각과 데생을 동시에 공부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조형하는 어려움에 절망해 1925년경부터는 상상력에 의한 관념적 공간을 조형했다.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추상적·환상적인 오브제들은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어 자코메티는 1929∼1934년까지 활발히 활동한 초현실주의 그룹의 한 중요 구성원으로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가는 뼈대 하나하나에 비어있는 짙은 허무
공허와 결핍의 이미지를 조각으로 구현해
1935년 이후에는 실물을 본뜬 조각에 몰두했으며, 오랜 시간을 거쳐 1948년경 가느다란 형상, 즉 작품 자체는 철사처럼 가느다랗게 깎이면서 그 주위에 강렬한 동적 공간을 내포한 날카로운 조각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은 평단의 주목을 받아 자코메티가 조각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자코메티의 조각은 모두가 눈에 보이는 현실, 즉 공허 속에 나타나는 허상 그대로를 보이려는 시도로 평가되었으며 서유럽 조형미술의 전통에서 가장 현대적·전위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인물 조각으로는 1947년에 제작한 <걷는 남자>가 대표작이다. 작은 머리와 거대한 발을 가진 인물상들은 모호하고 신비스러우며 냉정한 인상을 준다. 인물을 가늘고 길게 표현하여 고독한 느낌을 주는 그의 조각상은 실존주의 문학과 비교되기도 한다. 고뇌에 찬 이미지들은 실존주의자들의 비관주의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코메티의 조각은 양감을 최소화하고 길게 늘인 육체와 뼈대만 남긴 형상으로 극한의 상태에 서 있는 대상의 고독한 내면을 보여준다. 이는 사람이 아닌 것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1951년 <개>가 만들어졌다. 멀리서 보면 찢어진 종이 더미를 가느다란 철사 뼈대에 얼기설기 두른 듯한, 볼품없기 짝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자코메티의 눈이 보는 것은 단 하나, ‘개’가 아닌 것은 떼어버리고 개의 본질만을 남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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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자코메티, 1951 |
그는 무엇을 조각하든 그 전체가 순전한 ‘개’요 그 전체가 온전히 ‘대상’이었다. 버려서 궁극에 이른 예술가의 작품은 오늘도 생생히 살아있다. 전통적 기법대로 살을 점점 붙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깎아낼 수 있을 만큼 남김없이 덜어낸 조각으로 자코메티는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강렬하게 드러내면서 고도로 정련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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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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