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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깃발>, 존스, 1955 |
국경일에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다 보면 줄지어 선 가로등에 태극기가 꽂혀 있는 독특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국기를 신성시하는 풍조가 우세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영국의 유니언잭처럼 의상이나 패션 소품 등에 태극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는 아예 성조기를 소재로 예술세계를 구축한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재스퍼 존스다.
학창 시절 피카소, 뒤샹, 세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열렬히 좋아했던 재스퍼 존스는 이들의 작품에 대해 깊이 연구했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시와 심리학에도 심취할 정도로 깊은 지성을 지녔다. 그는 25세가 되던 해 어느 날 국기를 그리는 꿈을 꾸고난 후 <국기>와 <과녁판>을 그리기 시작했다. 국기, 과녁판, 지도, 숫자판, 색 비교판 등은 우리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지만 존스는 그것들을 새로운 형태로 창조하면서 ‘그림이 사물의 모방이 아니라 사물 자체’라는 미학을 제시했다.
1950년대 미국의 주류 미술은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이 구축한 추상회화였다. 존스는 이 추상미술에 대항했다. “누구나 다 아는 이미지를 통해, 주제해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며 성조기를 주제로 단순하고 명확한 그림을 그렸다. 처음 성조기가 캔버스에 등장했을 때 화단은 경악했다. 누구나 다 아는 상징을 반복적으로 그렸던 재스퍼 존스. 그는 무념무상으로 단지 표면의 아름다움만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깃발>과 같은 성조기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캔버스에 붙인 천과 신문 위에 유화 물감과 뜨거운 왁스를 섞어 쓰는 납화법을 이용했다. 고대 로마 미술에서 장기 보존을 위해 사용했던 이 기법은 물감을 왁스처럼 사용해 캔버스를 복잡하고 사치스럽게 보이도록 유도해 평면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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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얼굴의 과녁>, 존스,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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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개인적인 주장을 부인하고 상징적 의미에서도 벗어난 존스는 관람자에게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한다. <깃발>과 <3개의 성조기>, <네 얼굴의 과녁> 등을 통해 그는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물건인가, 아니면 물건의 복제인가?’ ‘이것은 미술작품인가? 이것은 중요한가?’ 냉전 중에 제작되었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성조기 작품들은 존스가 당대 참여했던 예술적 논쟁의 선물이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비히켄슈타인의 논리학이었다. 네오 다다이스트로도 불리지만 존스는 1950년대부터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함께 미국 미술이 추상표현주의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었고,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존스의 그림들을 본 아트 딜러 레오 카스텔리는 “대단한 천재의 증거를 보았으며, 다른 어떤 것들과도 무관한 완전한 신선함이었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는 국제적으로 유명 작가 반열에 올라서며 당시 생존하는 예술가의 작품 중 가장 최고가를 이루며 빠른 성공과 경제적 부를 이루었다. 존스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일지라도 작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현대미술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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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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