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연의 산성이야기] 번창했던 옛 포구에는 탕주막거리 표지만 남아

[조영연의 산성이야기] 번창했던 옛 포구에는 탕주막거리 표지만 남아

제51회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고대면 당진포리). 탕주막거리

  • 승인 2018-06-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720당진포성-석문입구
당진포성-석문 입구/사진=조영연
당진의 연육된 석문반도와 남쪽 태안반도는 대난지도 앞에서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병립해 있다. 난지도와 이들 반도 사이 해협은 과거 전라, 충청 양도로부터 개경이나 한양으로 진출하던 뱃길, 조운로였다. 난지도 앞에서 대호지만 수로는 내륙을 향해 동남으로 깊숙이 들어오다가 돌출한 적서리(大串-현재 대호지면)에서 다시 동쪽 석문쪽과 남쪽 운산 방면으로 초락도 앞에서 분기된다. 현재는 초락도와 당진포 노적봉 사이를 제방으로 막아 호수를 이뤘다. 과거에는 일대가 모두 바다여서 탕주막섬과 진성 남문 바로 앞 해창마을까지 바닷물이 넘실거려 배가 드나들고 주변에 염전들도 있었다고 성안말 주민들은 추억한다. 마치 목젖과 같은 위치에 조성된 당진포항과 성은 가로림만 조운로로부터 상당히 안쪽 은폐된 곳에 자리한 반면 간척과 연육이 되기 전에는 당진포항에서 난지도는 충분히 관측될 수 있는 거리였다. 따라서 밖으로부터 은폐된 당진포항은 수군기지를 두고 있다가 유사시 출동하여 작전하기에 적합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당진포항에 봉수를 설치하고 만호가 다스리는 기지를 설치하고 난지도에 군사를 파견하여 수로 제어와 준동하는 왜구의 대처는 물론 조운선의 구난에도 기여했다. 이처럼 대소난지도 앞 수로는 군사적인 면에서뿐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중요시됐다. 중종9(1594)에 축성하고 충청수군 만호를 둔, 둘레 약 420m로 축성한 산성은 석문 방면과 정미, 운산 방면 두 물길 사이의 삼각점이자 안 해창 북쪽 노적봉과 연접하는 야산(일명 말봉산-표고 약 20m) 정상부에 축조된 토석혼축 테뫼식 해안성이다. 성의 남문 정면 건너편의 지명은 과거 물류창고가 섰던 해창(海倉)마을이다.

720당진포성북외벽
당진포성 북 외벽/사진=조영연
동벽에서 회절되어 100여 미터 가량 서쪽이 남벽인데 성벽은 거의 다 파손됐다. 남벽 중간부에 해창쪽을 향해 남문지 자리가 있고 남벽은 현재 상부가 길 조성으로 인해 망가졌지만 주민들의 말을 참고해 보면 높이가 삼사 미터 정도 됐던 것같다. 남문 서쪽 맑은 물이 나는 샘은 최근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됐다 한다. 남문 안쪽 성안마을에는 수 채의 건물들이 있었음 직한 공간이 정상부까지 이어진다. 정상부는 이들 지역보다 높고 둥글게 돋워졌다. 정상 돋운 부분은 장대지 등 시설들이 있었던 듯 현재도 기와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남문지 앞 둑(제방) 건너 해창마을에 조곡창고들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본성은 서쪽 노적봉과 초락도 망재산(109m)에 가려 외부로부터의 은폐는 물론 파도와 바람 등을 막을 수 있으며 깊숙이 탕주막과 해창까지 들어온 포구에 倉은 물론 수군들의 배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정박할 수 있어 수군기지로서는 아주 양호한 조건들을 갖췄다. 다만 성에서는 시야가 가린 탓에 서편 노적봉에 보루를 설치해 보완했다. 현재 노적봉 정상 폭 10미터 가량 원형의 공터가 그것으로 여겨지는 바 여기서는 석문과 정미로 들어가는 양편 수로와 가로림만 건너 난지도 근처까지 조망된다. 난지도에는 이곳 진으로부터 수군들이 파견됐었다.

720당진포성대호지만2
당진포성-대호지만/사진=조영연
토벽은 농지나 방조제 조성시 도로 개설로 인해 일부 석재마저 유출돼 성벽이나 시설 등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석문 들어가는 제방 근처 초락도 앞에 땐섬(외딴 섬?)이란 섬이 있었는데 토목공사에 모두 동원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고 기록을 근거로 대체적으로 이 성의 축조시기를 조선시대로 추정하나 전설이나 지리적 여건 등으로 미뤄 입지조건상으로 보아 고려 혹은 더 나아가 삼국시대에도 어떤 형태로든 방어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짙다. 가로림만 교통로와 그와 관련된 경창을 보호하고 왜적들의 출몰에 대비하는 것이 이 성의 핵심 임무였었다. 난지도 바로 위 풍도는 청일전쟁 시 격렬한 해상전투지였다. 당진포구는 백제 때 당나라와 왕래하던 길목, 나루터로서 오가던 행인들의 유숙을 위한 진관과 가옥들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서쪽 산봉에는 조선시대 봉화터가 있고 성은 만호를 둔 선군기지로 사용됐다. 인근에 6.25 후 한때 미군부대가 주둔했었으며 현재는 한국군이 사용하고 있어 고대로부터 국방상, 전략상 중요한 지점이 되고 있다.



720당진포성전면탕주막거리
사진=조영연
당진포구 끝자락에서 볏가리를 쌓아 놓은 듯 뾰족한 노적봉을 만난다. 왜적들이 처들어왔다가 그것을 보고 군량미가 많아 주둔 군사들이 많을 것으로 여겨 도망갔다느니, 횟가루를 풀어 쌀뜨물처럼 흘려보냄으로써 놀란 적들이 침범치 못했다느니 등의 전설을 안고 있는 곳이다. 오늘날에는 번창했던 옛 포구 안은 탕주막거리 표지만 남긴 채 한낱 저수지와 논으로 변했다.

금방이라도 양쪽 포구를 거느리고 서해로 내달릴 뱃머리처럼 당돌하게 우뚝 선 노적봉에 오르면, 푸른 바다, 소나무와 백사장이 어울려 멀리 난지도까지 이어진 풍광에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곳곳에 놓인 현대식 교량들도 거들어 한 풍경을 이룬다. 그 옛날 거친 파도와 싸우다 돌아온 지친 뱃사람들, 난지도에서 근무하다 돌아온 병사들, 중국으로 오가던 사신들이 한 잔 탁주에 시름을 잊고 가던 탕주막섬 외딴 주막이 동벽 건너편에 있었다. 해창도 사라지고 물길은 논으로 변한 채 동벽 앞 도롯가에 두어 자 가량 작고 뽀얀 표지석이 버스 정류장 옆에 그 자취만 남아 옛날을 전한다.

노적봉 코앞에 제딴에는 우람함을 자랑하듯 뽐내는 초락도(草落島)의 원 이름은 푸레기란다. 풀이 무성한 섬, 풀어귀란 뜻이다. 초락도나 지금은 연육된 섬들 끝에 아직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고고히 바다를 지키는 난지도(蘭芝島), 그 너머는 망망대해다. 난초와 지초향이 그윽할 듯한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곳은 고대로부터 거친 풍랑으로 남북을 오가던 무역선, 한양으로 향하던 조운선들에게는 그야말로 저주와 공포의 존재였다. 용왕의 텃세가 극심했던 곳이다. 오죽하면 이곳을 피해 가기 위해 새로 운하를 개척하려고까지 했을까. 용왕이 잠들 때를 기다리며 잠시 피박(避泊)하던 곳, 그래서 난지도는 기약을 할 수 없는 難知島, 알 수 없는 섬, 고난의 섬이었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조영연-산성필자25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시 낙동강 가을꽃 향연… 3개 생태공원 이색적 풍경
  2. 전국캠핑족들, 대전의 매력에 빠져든다
  3. 10월 9일 '한글' 완전정복의 날...'세종시'로 오라
  4. '한글날 경축식', 행정수도 세종시서 개최 안되나
  5. 24일 대전시 국감... 내년 지선 '전초전' 촉각
  1. 579돌 한글날, 대전시청 광장에 울려 퍼진 한글 사랑
  2. 한산한 귀경길
  3. 최충규 대덕구청장,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목소리 청취 나서
  4. 긴 연휴 끝…‘다시, 일상으로’
  5. 579돌 한글날…대전서 울려퍼진 ‘사랑해요, 한글’

헤드라인 뉴스


한글날 정부 주재 경축식, 내년에는 세종서 개최되길

한글날 정부 주재 경축식, 내년에는 세종서 개최되길

정부의 한글날 경축식마저 수도 서울의 전유물이어야 하나. 올해 제579돌 경축식 역시 서울 몫이 됐다. 이재명 새 정부의 정무적 판단이 아쉬운 10월 9일 한글날이 되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정부세종청사에 있고 김민석 총리 주재의 경축식이었던 만큼, 아쉬움은 더욱 컸다. 새 정부의 첫 경축식이 지방분권의 상징인 세종시에서 열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남다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세종시 대표 축제인 '2025 한글 축제'가 오전 8시 한글런과 함께 막을 올렸다. 김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한글날 경축식을 세종시에서 열었..

[`무주공산` 제2중앙경찰학교, 어디로] 정치적 이해득실 따지다 제2중경 놓칠라
['무주공산' 제2중앙경찰학교, 어디로] 정치적 이해득실 따지다 제2중경 놓칠라

1. 1년 넘게 이어진 유치전, 현주소 2. 치열한 3파전… 최적지는 어디? 3. '왜 충남인가' 수요자의 의견은 4. 단일화 여론… 미동 없는 정치권 제2중앙경찰학교 1차 후보지 3곳 가운데 충남 아산이 입지 여건에서 뚜렷한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충남 내부의 단일화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이 이 문제에 사실상 침묵하면서 단일화 논의가 표류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에 지역 정치권의 시선이 내년 지방선거에 쏠려있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앞서 1일 김태흠 충남지사는..

국토부 서울·대전·부산·경기 원룸촌 조사… 허위·과장 의심광고 321건
국토부 서울·대전·부산·경기 원룸촌 조사… 허위·과장 의심광고 321건

청년층 거주 비율이 높은 대학가 원룸촌 부동산 매물 중 허위·과장 의심 광고가 321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교통부는 10일 전국 대학가 원룸촌 10곳을 대상으로 인터넷 허위매물 광고를 점검한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7월 21일부터 8월 22일까지 약 5주간 진행했으며, 대상 지역은 서울 5곳, 대전 1곳, 부산 2곳, 경기 1곳 등 10곳이었다. 대전의 경우엔 유성구 온천2동이 대상이었다. 네이버 부동산, 직방, 당근마켓 등 온라인 플랫폼과 유튜브, 블로그, 카페 등에 올려진 중개 대상물 표시·광고 등 1100..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치워야 할 생활쓰레기 ‘산더미’ 치워야 할 생활쓰레기 ‘산더미’

  • 579돌 한글날…대전서 울려퍼진 ‘사랑해요, 한글’ 579돌 한글날…대전서 울려퍼진 ‘사랑해요, 한글’

  • 긴 연휴 끝…‘다시, 일상으로’ 긴 연휴 끝…‘다시, 일상으로’

  • 한산한 귀경길 한산한 귀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