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어죽과 생선국수의 촌수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어죽과 생선국수의 촌수

  • 승인 2019-05-15 10:35
  • 신문게재 2019-05-16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생선
계절의 여왕 5월 첫 주말 옥천에 갔다. 대전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옥천읍에서 내려 다시 청산 가는 마을 버스를 탔다. 청산은 생선국수로 유명한 곳이다. 4월에 생선국수 축제도 열린다. 마침 옥천 장날이라 버스는 노인들로 꽉 찼다. 오전 10시 40분 차였는데 벌써 볼일을 보고 집에 가는 거란다. 시골 노인들은 천성이 부지런해 일찍 밥먹고 장에 나온다.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초록으로 물든 산과 들을 감상했다. 노인들의 시끌벅적한 얘기소리로 버스 안은 도떼기 시장을 방불케 했다. 건강한 표정의 노인들이 펄떡이는 활어 같았다. 들판의 농부들은 모내기를 앞두고 논에 물을 대고 밭갈이하느라 바빴다. 딱딱한 심장이 말랑말랑해지고 몸의 긴장이 풀렸다. '아! 행복해'란 말이 절로 나왔다.

옥천을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간 생선국수집은 청산면사무소 앞에 있었다. 식당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소박했다. 얼핏보면 구멍가게처럼 보였다.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손님들이 꽤 들어찼다. 방으로 들어가 털썩 주저앉아 생선국수를 시켰다. 국물을 맛봤다. 국물이 사골을 곤 것처럼 진했다. 생선의 형태는 보이지 않지만 쫀득한 살이 씹혔다. 눈알도 몇 개나 먹었다. 생선을 많이 넣었다는 증거다. 보양식 한 그릇 먹는 기분이었다. 지난해 가족들과 예당호변에서 먹은 유명하다는 어죽은 게임이 안됐다. 사실 생선국수와 어죽은 국수를 넣느냐, 쌀을 넣느냐의 차이다. 근본은 다르지 않다. 사촌쯤 될까?

내가 어죽을 처음 먹어본 건 대학 4학년 교생실습을 할 때였다. 그때도 5월이었다. 교생실습은 시골 고향 면소재지에 있는 자그마한 중학교에서 했다. 교생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모든 게 서툴고 하루하루가 고됐다. 점심은 여교사들과 함께 먹었다. 학교 근처 가정집에서 여교사들을 상대로 점심 장사만 하는 곳이었다. 첫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게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데 여교사들은 밥을 두 공기씩나 먹는 게 아닌가.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알았다. 교사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배가 굉장히 고프다. 며칠 후부터 나도 공기밥 추가는 당연지사.

하루는 수업을 끝내고 교사들이 천렵을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다. 승용차 몇 대를 나눠 타고 칠갑산으로 달렸다. 맑은 물이 흐르는 냇물에서 남자 교사들이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고기 잡는 솜씨를 보니 천렵을 종종 오는 모양이었다. 젊은 체육 교사가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들통을 얹고 물고기와 쌀, 온갖 양념과 호박, 대파, 깻잎 등을 넣고 끓였다. 어죽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어죽이란 것이 영락없이 개죽처럼 보였다. 옴마, 우리집 쪼니가 먹는 밥이잖아? 이걸 먹는다고? 먹성 좋은 여교사들은 맛있다며 허벌나게 먹었다. 나도 망설이다 한 수저 입에 넣었다. 와! 이렇게 맛있을 수가. 대 반전이었다. 얼큰하고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났다. 나도 허벌나게 먹었다.

청산 생선국수집 주인 서금화 할머니에게 국수를 넣게 된 이유를 물어봤다. "국수가 먹기 좋고 훌훌 잘 넘어가니께." 이곳은 생선국수의 원조다. 1962년부터 시작했으니까 60년이 다 돼간다. 지금은 아들, 딸이 대를 이어 운영한다. 그날도 서 할머니는 부엌 한 켠에서 배추 겉절이를 버무리고 있었다. 일을 놓지 않아서 그런가. 90이 넘은 서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정정해 보였다. 옥천은 금강과 대청호를 끼고 있어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몇 년 전, 금강변을 따라 걸을 때 금강 휴게소에서 본 도리뱅뱅 파는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도리뱅뱅도 옥천이 원조인가? 식당을 나와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마을을 돌아봤다. 문득, 뜬금없이 옛 시가 떠올랐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경문 감독, 한화와 작별… “최강한화 함성 영원히 못 잊어”
  2.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3. 한화 허인서, 생애 첫 풀타임에 20홈런… 신인왕 정조준
  4. 대전 하나 전북을 18년만에 잡아내다! 득점 순간 대전 S석 표정(영상)
  5. 지금은 '축제 시즌'… 국내 축제, 세계 무대로 날아오른다
  1. 가을 정취 물든 '국립수목원 3종 세트'… 어디로 가볼까
  2. 천안문화재단, 10월 한뼘 갤러리 공간지원사업 전시 개최
  3. 천안시, 가을철 진드기 매개 감염병 주의…예방수칙 준수 당부
  4. 아산시의회, '탄소중립특별위원회' 활동 돌입
  5. 아산시, 항공사진-드론영상으로 최신 공간정보 구축

헤드라인 뉴스


대전 미분양 아파트 늘었는데…내년 주택시장 괜찮을까

대전 미분양 아파트 늘었는데…내년 주택시장 괜찮을까

대전지역 미분양 아파트가 한 달 사이 655세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성구에서 미분양 물량이 큰 폭으로 늘어난 반면 동구와 중구, 서구에서는 감소했다. 내년에도 약 1만 세대의 아파트 공급이 예정돼 있어 미분양 해소와 신규 공급 물량의 소화 여부가 지역 주택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1일 대전시에 따르면 2026년 8월 말 기준 대전지역 민간 미분양 주택은 2521세대로 집계됐다. 전월 1866세대보다 655세대 늘어난 것으로, 증가율은 35.1%다. 지역별로는 유성구의 미분양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유성구 미분..

박수현 충남지사 "발전공기업 유치, `도 아니면 모` 과열 경계…각 시·군 강점으로 경쟁해야"
박수현 충남지사 "발전공기업 유치, '도 아니면 모' 과열 경계…각 시·군 강점으로 경쟁해야"

박수현 충남지사가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는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유치 경쟁과 관련해 "도 아니면 모 식의 접근이나 과열 경쟁은 위험하다"며 시·군 간 과도한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앙정부의 충남 내부 단일화 요구에 대해서도 "약속 없는 통일 요구는 중앙 중심의 논리"라며 선을 그었다. '충남통(통)행' 일정으로 8일 당진시를 방문한 박 지사는 언론인 간담회에서 "통합본사가 유치되면 살고 안 되면 망한다는 식의 사활을 건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지사는 "통합본사가 충남 외 다른 지역으로 가더라도..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달빛 걷기`… 야간 관광벨트 매력 충분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달빛 걷기'… 야간 관광벨트 매력 충분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이 가을밤 시민들의 낭만과 추억을 담아내는 특별한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국가 1급 보안시설과 행정기관의 업무공간이란 경계를 넘어 행정수도 세종시의 새로운 야간 관광벨트이자 문화관광 명소로 도약할 가능성도 확인했다. 중도일보가 지난 10일 한국걷기운동본부 세종지부와 세종시,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와 협력해 진행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달빛 걷기' 투어에는 시민과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방문객 등 모두 30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보 안 관계상 참가자는 300~400명으로 제한했고, 그럼에도 2만 70..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 수확 앞둔 황금 들녘 수확 앞둔 황금 들녘

  •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 ‘은행 열매를 피해라’ ‘은행 열매를 피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