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19-09-30 09:55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폭력적이다. '부분'을 보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는 오류고, 그런 오류는 십중팔구 폭력을 초래한다. 물론 부분을 보면 전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추측을 확실시하면 독선과 오만에 빠진다.

선생으로서 내가 항상 경계하는 것이 있다. 내 강의에 기울이는 관심과 집중이라는 '부분'으로 학생의 '전체' 인격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한데 종종 잊을 때도 많다. 비록 내가 가르치는 수업에서 딴전피고 시험도 엉망일지라도, 졸업 후 어디선가 훌륭하게 제 몫을 다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내 강의에서 보여준 무관심은 그들의 작은 조각일 뿐, 그들 인격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지인의 추천으로 마셜 B. 로젠버그의 책, 『비폭력 대화』라는 책을 읽었다. 일상적인 말들이 왜 폭력적일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이를테면, 아이가 실수로 꽃병을 깼다고 치자. 그럴 때 만일 부모가 "너는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니"라고 말했다면, 이는 꽃병을 깨는 일회적/부분적 사실을 가지고 아이를 '조심성 없는 아이'로 일반화시켜버린 것이다. 이 말은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준다. 실수 하나로 졸지에 "조심성 없는 아이"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일회적 실수로 인격 전체를 초토화당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분쟁은 언어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언쟁이 "당신은 이기적이야," "당신은 무능해," 등등 부분적 일화를 전체 인격으로 확장하는 폭력적 일반화는 결국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결코 사소하지 않는 분쟁으로 끝나고 만다.

최근, 한 지식인에게 한 작가가 쏟아낸 트위터 비난을 읽고 나는 정말이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평소 그 작가를 좋아했다. "의자놀이" "무소의 뿔처럼" 등등 그녀의 용감한 지성에 늘 찬사를 보내왔다. 그런데 이게 어인일인가. 그가 오랫동안 싸워온 민주주의란 설사 의견이 달라도 존중할 수 있는 품위와 예의가 아니던가.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박사도 못 딴 것을 보니 머리가 나쁘다는 둥, 돈과 권력만 주면 자한당에도 가겠다는 둥, 동양대학을 먼 시골대학이라 부르면서 지방대학을 은근히 폄하하기도 했다. 진영논리도 싫고, 제 허물은 아랑곳없이 후벼대는 후안무치도 싫으니, 이도 저도 지지할 수 없는 지식인의 딜레마를 비난하는 그는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을 인격 '전체'으로 확장하여 초토화하려는 폭력성의 전형이었다.



신념의 관철을 위해서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 것이 그의 이념이었나? 중심/주변, 남자/여자, 이성/감성, 인간/자연, 서울/지방, 지배층/피지배층, 엘리트/대중, 제국/식민지, 각각의 대립 쌍에 각인된 오래된 위계를 해체하는 것, 그래서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복지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진보이념이 아니었던가?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의 입에서 시골대학과 학력을 운운하고, 돈과 권력 추구라는 도무지 당치 않은 비방은 그의 평소 명민한 지성이 어디로 실종된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새삼 '지성'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입장만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확신은 교조주의와 광신주의의 본질이다. 롤로 메이는 이렇게 말한다. "확신에 찬 사람은 반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적 의심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갑절로 저항해야 한다," "갑절의 저항"이 바로 인신공격으로 표현된 건 아닐까. 지성은 부분과 전체를 구분하고, 자신의 신념에 전념하면서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지성이 그립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구미, 주민안전 무시한 보행자 보도정비공사 논란
  2. 안양시, 평촌신도시 정비 ‘청신호’ 가속
  3. 영천, '신성일기념관 개관 기념' 고향사랑기부 이벤트
  4. "아산페이 안 쓰면 손해"-연말까지 18% 할인 연장, 법인 10% 연장 할인
  5. 아산소방서, 전통사찰 화재 예방훈련
  1. 천안시, 청소년유해환경 개선 합동점검·단속 및 캠페인
  2. 삼성디스플레이, 취약가정에 1억5천만원 후원
  3. 아산시 음봉어울림도서관, '시선 너머의 이야기' 전시
  4. 천안법원, 음주 측정 거부한 50대에 '징역형'
  5. 천안법원, 지인 간 법적소송에서 위증한 혐의 50대 남성 무죄

헤드라인 뉴스


국정자원 화재 나비효과 막아라

국정자원 화재 나비효과 막아라

사상 초유의 국가 전산망 마비를 불러온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정부는 신속한 시스템 복구에 나서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이번 사태가 대전 등 충청권에 가져온 과제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지역 공공 자산인 국정자원 이전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공공기관이 특정 지역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달갑지 않다.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국가균형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선 지역의 공공기관을 지키고 새로운 인프라를 유치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중도일보는 '국정자원 화재 나비효과 막아라' 시리즈를 통해..

한미 통상·안보 팩트시트 발표… 상호관세 15% 인하, 핵잠 승인 담겨
한미 통상·안보 팩트시트 발표… 상호관세 15% 인하, 핵잠 승인 담겨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 관세율을 포함한 한미 간의 무역 협상이 최종 마무리됐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한 양국의 안보 협상도 문서 형태로 공식화됐다. 대통령실과 백악관은 14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양국의 관세·안보 협상에 대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동시에 공개했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직후 나올 예정이던 팩트시트 발표가 지연되면서 세부 내용에서 이견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날 공개된 팩트시트에는 지난 정상회담 당시 발표된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전시의회, "대전교도소 이전 지지부진…市 대책시급"
대전시의회, "대전교도소 이전 지지부진…市 대책시급"

대전교도소 이전사업이 8년째 진척을 보지 못하면서 대전시의 명확한 추진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제기됐다. 교도소 과밀화와 시설 노후 문제는 이미 한계를 넘었지만, 이전 사업이 장기간 답보 상태에 놓이며 후적지 개발 계획 역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열린 대전시의회 제291회 정례회 도시주택국 행정사무감사에서 방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유성구2)은 "대전교도소는 수용률이 142.9%에 달해 전국 평균(122.1%)을 크게 웃돌고, 노후 시설로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 권고까지 받..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 ‘수능 끝, 해방이다’ ‘수능 끝, 해방이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