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명연기자와 무대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명연기자와 무대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10-1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학창시절 연극 몇 작품에 출연한 일이 있다. 첫 번째 출연부터 특별한 역할로 박수무당 역이었다. 말 그대로 특별 출연이다. 굿 장단을 칠 수 있고, 비나리를 흉내 낼 수 있어 별도 연습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캐스팅된 것이다. 굿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대사 몇 마디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필자 역할은 그래도 큰 것이었다. 어떤 친구는 나팔 부는 흉내로, 입에 손 모아 소리 한번 지르고 들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기본을 익히고 연극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소중한 기회였다.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사실에, 배역이 미미한 배우도 항상 함께하였다.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이다. 다른 삶을 몸으로 구현하고, 음미해본다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

연극 종류는 다양하다. 희곡작품도 그렇고, 배우, 관객, 무대 등 모두 결이 다르다. 각 요소의 유형과 비중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뮤지컬, 탈춤을 포함한 무용극 등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조명, 영상, 음악, 미술, 무용 등 여타 예술 분야와 어우러져 공연되기에 집단 예술 또는 종합예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희곡 자체가 문학 분야로 분류되지만, 운문이나 시 낭송 중심 연극을 시극이라 따로 부르기도 한다. 근자에 시극 여러 편에 참여하여 예술 감독을 담당하였다. 자청한 일이기도 하다. 뒤치다꺼리하면서 시극을 좀 더 특별한 종합예술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크게 작용했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특화된 무대예술로 성장시켜 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 초보적 단계라 생각한다. 희곡 자체도 운문으로 써야 하겠고, 그에 맞는 음악이나 무용도 창작되었으면 한다. 영상, 음향, 조명 등도 마찬가지다.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격이지만, 희망 사항을 구현할 무대나 장비가 지역에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이 한편의 역극과 같다거나,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신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극장이요, 사람은 제각각 맡은바 배역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16세기 유럽에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라는 연극 형태가 등장한다. 이전에는 취미로 연극을 하였지만, 프로 연극인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델라르트는 극본이 없다. 즉흥 연기를 한다. 의상이나 가면 같은 분장에 비중을 두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려 준다. 탈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항상 가면이나 의상이 정해져 있는 것과 같다.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가 할리퀸과 피에로, 스카라무슈와 메제티노였다고 한다. 대본이 없었던 것은 통일된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몸짓이나 슬랩스틱에 더 비중을 두었다. 흐름만 있고 정해진 대본이 없는 것이다. 인생은 델라르테와 같지 않을까? 인생은 각본 없는 연극이다.

줄거리가 있는 연극도, 대본이나 연출자의 연출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배역에 충실해야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 흐름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 자기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 소화를 해내야 뛰어난 명배우가 된다.

인생은 연극보다 선택의 여지가 더 크다. 개성 있는 연극에 앞서 배역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연극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연출자가 배역을 주는 것보다 흥미롭지 않은가?

처음 하는 연극에서 연기를 가지고 서로 다툰 일이 있다. 주인공 역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연극을 여러 편 한 사람이었고, 다른 친구들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가소롭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자기 딴에는 연극을 살려보겠다고 과도한 연기를 펼쳤다. 혼자 설쳤다. 무대에 한 사람밖에 없었다. 연습 틈새에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연출자는 타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였는데 한참을 듣고 있다 말했다. 서로의 배역에 충실한 것이 첫째이나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했다. 지나고 보니 최고의 연기는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자신의 역할만 극대화하거나 과대 포장해도 연극을 망친다. 좋은 연극이 될 수 없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극에 거짓이란 있을 수 없다. 엉뚱한 짓을 해도 연극은 엉망이 된다. 혼자 있는 것이 무대 뒤라면, 그러한 것들은 무대 뒤에서나 할 일이다. 즐기자고 하는 일이다. 함께하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도 안 된다.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연극이 더 빛나고 감동적이다. 자신의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요, 자신의 역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상대 역이 없으면 자신 또한 없다. 나아가 주위 사람, 다른 연기자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최상의 연기요, 역할 아닐까?

무대 위의 연극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관객이기도 하다. 연속해서 시극을 무대에 올리다 보니, 한번은 극이 끝나고 출연한 배우가 말했다. 공연장 바닥을 보니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배우나 관객 모두, 미적 쾌감과 감동을 나누어 배가시키기 위해 모인 것 아닌가? 고작 쓰레기나 남기려고 이 야단법석인가?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1.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2.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3.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4.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