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악당의 탄생

  • 문화
  • 영화/비디오

[김선생의 시네레터] 악당의 탄생

- 영화 <조커>

  • 승인 2019-11-14 17:59
  • 신문게재 2019-11-15 11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movie_image (2)
선악의 대결은 영웅 이야기의 중요한 모티프입니다. 선의 표상인 영웅은 응당 주인공이 되어 관객들에게 강렬한 주제의식을 심어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 속 주인공이 드러내는 선이 현실이기보다 판타지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갖은 역경을 이기고 힘겨운 대결 끝에 지켜냈거나 이뤄낸 선의 가치는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선하기보다는 악하고, 정의롭기보다는 불의하고 부조리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조커>는 <배트맨>(1990)의 전사(前史)입니다. 성경 속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에서 따온 도시 고담은 부패와 부조리로 가득합니다. 배트맨이 선을 실현하는 판타지 영웅인 데 반해 희대의 악당 조커는 현실 속 인물입니다. 배트맨이라는 가상의 영웅을 통해 이상적 가치실현의 쾌감을 맛본 관객은 조커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 악과 인간들의 저열하고 잔인한 본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는 조커의 악행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는 태생적 악당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길러진 존재입니다.

조커의 악행은 극악무도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극악성을 강조하기보다 그에 의해 공격당한 사람들의 문제를 폭로합니다. 오히려 조커는 곤궁한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선한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상황에 걸맞지 않기에 병적인 것으로 판정됩니다. 웃으려고, 웃음으로 이겨보려고 한 그의 노력은 처절하게 짓밟히고, 마침내는 반어적 표현이 되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영화 <조커>는 여러 면에서 <기생충>(2019)을 생각하게 합니다. 대표적으로 계단 장면이 그러합니다. 영화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계단 장면은 조커가 힘겹게 올라야 하는 삶의 시간들을 나타냅니다.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 한없이 계단을 내려오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가난한 이들의 슬픔은 어느 한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치명적 반영웅인 조커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그려냅니다. 그의 웃음, 그의 춤, 그리고 그의 총질은 너무도 타당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조커의 어머니가 아서라는 이름 대신 부르는 '해피'라는 별명처럼 그는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코미디언이 되기를 원한 그를 사회는 극한의 악당으로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슬픔이 극에 달하면 악이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그려냅니다.

김선생의 시네레터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도마 퀸’ 여서정, 금빛 질주 이어간다.
  2. 부산 영도 아이들이 고른 53곳, 한 장의 지도로
  3. 세종 행정수도특별법, 9월 논의 불발… 국감 이후 격랑 속으로
  4. 대전시 트램 공사에 버스전용차로 축소 대책마련 시급
  5. 국군의날 기념행사를 '국민과 함께' 원년되나
  1. 서산해미읍성, 600년 시간의 문 활짝, "서산의 맛과 사람들 한자리에"
  2. 제8대 세종경찰청장에 김보준 안보수사심의관 임명... 경찰청 경무관 인사 단행
  3. 전기연 원장에 강상희교수·원자력연 원장에 정우식 교수 선임
  4. 대전 옛 대덕경찰서에 ‘육군 AX 거점’ 10월 문 연다
  5. 예산장터 삼국축제 10주년…'린' 소주 20만 병에 축제 홍보

헤드라인 뉴스


[르포] "이게 선사시대 움집?"…둔산선사유적지 곳곳 `허술한 보존`

[르포] "이게 선사시대 움집?"…둔산선사유적지 곳곳 '허술한 보존'

29일 대전 서구 월평동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둔산선사유적지.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시민들은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여느 도심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유적지를 들여다보니 곳곳에서 어색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청동기시대 집터를 재현한 움집 세 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선사시대 움집 재현은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움집 외벽은 짚이나 갈대로 덮여 있었지만, 지붕에는 인조 볏짚 형태의 합성소재가 덧씌워져 있었고 군데군데 파란..

초고령화로 농협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세 이상… `기반 흔들`
초고령화로 농협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세 이상… '기반 흔들'

초고령화에 따라 농업협동조합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신규 가입 조합원 역시 40대 미만은 7%대에 불과해 농협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충남 홍성·예산)이 농협중앙회의 조합원 현황을 분석해 30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8월 기준 농협 조합원은 모두 202만 8464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208만 7359명에서 2022년 207만 6055명, 2023년 206만 3765명, 2024년 204만 6229명, 2025년 202만 7481명으..

공주시 제72회 백제문화제 10월 3일 개막... 웅진백제 역사·예술의 진수를 만난다
공주시 제72회 백제문화제 10월 3일 개막... 웅진백제 역사·예술의 진수를 만난다

제72회 백제문화제가 오는 10월 3일 개막하는 가운데 웅진백제의 역사와 예술을 결합한 대표 프로그램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30일 공주시에 따르면 올해 백제문화제는 웅진백제의 핵심 유물인 '청동거울'과 무령왕비 서거 1,50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공연과 퍼레이드 등을 선보인다. 대표 공연인 '웅진판타지아'는 10월 4~5일과 7~10일 오후 9시 금강신관공원 주무대에서 모두 6차례 열린다. '청동거울에 비친, 찬란한 백제'를 주제로 대형 LED와 특수효과를 활용한 무대에 전문 무용수 등 40여 명이 출연한다. 공연은 잠들어 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나이는 숫자일 뿐’ ‘나이는 숫자일 뿐’

  • ‘개점휴업 언제까지’…구민들 의회 정상화 촉구 ‘개점휴업 언제까지’…구민들 의회 정상화 촉구

  • 10월부터 안전모 미착용 집중단속…벌점 10점도 부과 10월부터 안전모 미착용 집중단속…벌점 10점도 부과

  • ‘다시, 집으로’ ‘다시,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