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사라진 풍류, 회갑연(回甲宴)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사라진 풍류, 회갑연(回甲宴)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11-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회갑연은 예순한 살 생일 축하 잔치를 말한다.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시절, 환갑까지 이루어 낸 수명 보전과 쌓아온 업적을 축하하고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잔치이다. 가가호호(家家戶戶) 차이가 크지만 제법 성대하게 잔치를 벌였다. 다양한 과일과 음식을 높이 괴어 상 차리고 수연시첩(壽宴詩帖)을 만드는 등 제법 격식 있는 풍류를 보여주기도 했다.

필자 조부는 생신이 정월 초하루였다. 생일에는 당신 돈을 쓰지 않는 것이라며, 설 명절임에도 손주에게 세뱃돈을 주지 않으셨다. 손주가 엄청 많았지만 주는 것도 받아본 기억도 없다. 중학교 3학년 때 회갑연이 있었다. 마당에 커다란 차일을 치고 안채 쪽에 병풍을 여러 개 세웠다. 병풍 앞쪽에 교자상, 그 위에 음식을 높이 괴어 놓았다. 모형이 아니라 실제 음식이었다. 상과 병풍 사이에 할아버지 형제가 앉고 자녀들이 절을 올리며 술을 올리는 것으로 잔치가 시작되었다. 3일간 지속 되었다. 마을 잔치요, 일가친척 잔치였다. 장구 하나로 가무를 즐기거나 풍물로 흥을 돋우었다. 일면식이라도 있는 사람은 모두 불러 함께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는 회갑연 다니는 것으로 분주했다. 지인의 부모 모두 찾아뵈어야 하니 그 횟수가 무척 많았다. 집에서 하던 것들이 전문 연회장으로 옮겨지더니, 중요 대사 중 하나이던 회갑연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언제부터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기 어렵다. 대략 1997년 금융위기 전후가 아닌가 생각된다. 주위에서 하나둘 회갑연을 하지 않았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크게 축하할 일이 되지 못한 탓이리라. 지금은 대부분 가족끼리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잔치를 가름한다. 이웃끼리 서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시간 하나가 사라진 아쉬움이 크다.

풍류(風流)는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을 말한다. 조금은 고상한 유희를 일컫기도 한다.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현묘지도(玄妙之道)라 했다. 인간 본성인 예로 돌아가자는 유교, 아집을 버리고 본성인 불심으로 돌아가자는 불교, 자연의 대 법도를 따라가자는 도교, 이 삼교 사상을 내포한 것으로 풍류도라 하기도 한다.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널리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풍류도를 갈고 닦은 사람을 화랑이라 했다. 화랑은 도의로써 마음을 연마, 가무로써 서로 즐기며 명산대천을 찾아 노닐었다. 남을 교화하기 위한 품성을 지니고, 풍류를 터득하여 대자연과 더불어 교감을 돈독히 하기 위함이다. 고려 시대에는 각종 행사를 통하여 풍류가 나타나며, 조선 시대는 주로 음악과 관련하여 풍류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함에도 풍류를 일상의 주요 덕목으로 삼았음이 생활 곳곳에서 나타난다.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그림이나 글로 전해진다. 글을 하는 선비도 그림 그리는 것을 품격있고 운치 있는 일로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문인화라는 미술 양식이다. 풍류를 아는 사람은 시(詩)·서(書)·금(琴)·주(酒)를 즐기며 생활의 주요 영역으로 삼았다. 글을 짓고, 쓰고, 노래로 부르며 거문고를 연주한다. 거기에 술을 곁들인다.

품격보다 흥취로 기울기도 하지만, 우리 의식 속에 멋스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런 흔적이 마을 당굿, 어촌의 풍어제 등 각종 제천의식이나 민속놀이로 전해지고 있다. 절기마다 즐기는 놀이를 돌이켜 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먹고 살기 버거워도 뜨락을 가꾸고 문방사우 늘어놓은 서재에 악기 하나쯤 함께 한다면 그것이 곧 풍류 아니겠는가? 게다가 좋은 벗이 있어 담근 술 한잔 나누며 담소를 나눈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랴.

일일이 거명할 수 없지만, 많은 역사학자나 철인들이 환태평양시대 도래를 예견했다. 그 중심국가가 한국이 될 것이란 주장도 곁들였다. 중국의 장구한 중화 정책에도 불구, 한국이 한국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만의 빛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저 따라 한 것이 아니다. 주변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용해해낸 결과이다. 일본 에게는 중심국가 기회가 있었으나 문화가 아니라 총칼을 앞세워 돌이킬 수 없는 원죄를 지었다. 스스로 문화 중심이 될 자격을 상실했다. 미국은 절정기 이백여 년을 지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문화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를 이끌어갈 핵심 요소 중 하나가 풍류 아닌가 한다.

어떤 사람은 '김치'가 우리 전통음식이 아니라 퓨전이라 주장한다. 고추가 남아메리카에서 일본을 거쳐 임진왜란 후에 들어왔다든가, 조선 말에 중국으로부터 배추 개량종이 들어왔기 때문이란다. 거기에 우리의 지혜로운 발효 기술이 더해진 것이란다. 역사가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주장한다. 거꾸로 말하고 있다. 우리 지혜가 가득 담긴 발효 기술에 배추와 고춧가루가 용해되어 김치를 탄생시킨 것이다. 문화란 바람 같은 것이다. 이유 없이 오가며 서로 상생시키고 새롭게 창출되는 것이다.

전통에는 고유한 것과 우리의 것이 있다. 차하순(車河淳, 1929 ~ , 사학 박사)교수 말이다. 고유한 것은 비교적 오랜 세월 우리의 삶과 함께해 오면서 성숙 된 것이고, 우리의 것이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잘 소화되어 우리화 된 것을 말한다.

우리의 문화창달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상기하자. 지금도 그러하지만, 더욱 매사에 멋을 생각하자. 한껏 멋을 부려보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천 연수구, 지역 대표 얼굴 ‘홍보대사 6인’ 위촉
  2.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3. 일단 입학만 시키자?…충청권 대학 외국인 유학생 중도탈락률 급증
  4. '날뛰는' 허위 폭발물 협박신고… 아산·광주·인천 등 학교 겨냥
  5. [홍석환의 3분 경영] 누구를 선택하는가?
  1. [꿈을JOB다! 내일을 JOB다!] 공기업, 패션 디자인…다양한 진로를 고교부터 준비
  2. '내신 5등급제 첫 적용' 충청권 고1 1학기 학교성적 상승
  3. 지역과 상생하는 '빵의 도시 천안'…대한민국 대표 빵 축제로 도약
  4. 천안시, 긴급차량 천안·아산 경계 넘어도 '끊김 없는 우선신호' 지원
  5. 국제와이즈멘 한국서부지구 대전지방 연수회, 현충원에서 열리다

헤드라인 뉴스


李 대통령 “2030년까지 국방·항공우주 R&D 대대적 예산 투입”

李 대통령 “2030년까지 국방·항공우주 R&D 대대적 예산 투입”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2030년까지 국방 R&D, 항공우주 R&D에 예상을 뛰어넘는 대대적인 예산을 투입해 미래 국방을 위한 핵심기술과 무기체계를 확보하고 독자적인 우주개발을 위한 역량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국내 최대규모 방위산업 전시회인 'ADEX 2025' 개회식 축사를 통해 “방위산업 4대 강국은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이미 민간의 기술력과 발전 속도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방개혁에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하..

"편의점도 줄어든다"... 인건비 부담에 하락으로 전환
"편의점도 줄어든다"... 인건비 부담에 하락으로 전환

편리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편의점 수가 대전에서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됐다. 어려운 경기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늘던 편의점 수가 줄어든 것은, 과포화 시장 구조와 24시간 운영되는 시스템상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며 폐점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20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8월 현재 대전의 편의점 수는 1463곳으로, 1년 전(1470곳)보다 7곳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1년 새 7곳이 감소한 건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매년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줄곧 늘던 편의점이 감소로 돌아서며 하락 국면을 맞는..

`세종시 문화관광재단 대표` 선임 논란… 국감서 3라운드
'세종시 문화관광재단 대표' 선임 논란… 국감서 3라운드

직원 3명의 징계 처분으로 이어진 세종시 '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선임 논란이 2025 국정감사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2월 임명 초기 시의회와 1라운드 논쟁을 겪은 뒤, 올해 2월 감사원의 징계 처분 상황으로 2라운드를 맞이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서울 구로 을) 국회의원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세종시청 대회의실에서 시작된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공교롭게도 첫 질의의 화살이 박영국 대표이사 선임과 최민호 시장의 책임론으로 불거졌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2월 12일 이에 대한 감사 결과 보고서를 공..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