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미안합니다. 요즘 누가 신문 본다고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미안합니다. 요즘 누가 신문 본다고

  • 승인 2019-11-19 21:13
  • 신문게재 2019-11-20 23면
  • 신가람 기자신가람 기자
우송대 송지연 교수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미안합니다, 요즘 누가 신문 본다고. 지난 4년 간 여기 써온 글이 죄다 업보로군요.

신문은 일찍이 강력한 계몽의 미디어였습니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 '국어'로 쓰인 신문 연재소설은 '민족'이나 '국민국가'와 같은 근대적 개념의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기사는 뉴스보다 덜 생생하고 소설은 영화보다 덜 재밌습니다.

누가 누굴 계몽합니까. 진짜 오피니언 리더는 오피니언 란에 글을 쓰는 제가 아닙니다. '베댓러'입니다. 베스트 댓글은 '좋아요'나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을 일컫는 말입니다. 베스트 댓글이 여론을 주도하면서 콘텐츠 이상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해 베댓 저널리즘이라는 말까지 생겼던데요. 댓글이란 본질적으로 반응이고 해석이며 판단입니다. 리뷰이자 비평인 셈입니다.



유튜브에는 온갖 상품의 언박싱 채널들이 있습니다. 책이나 영화 리뷰 채널들도 있습니다. 화제의 뮤직비디오나 아이돌 무대에 대한 리액션 영상은 팬심으로 작동한다 쳐도, 사회적 이슈가 된 뉴스의 리액션 영상마저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노라면 새로운 차원에서 비평의 시대가 밝았다는 무시 못 할 현실이 감지됩니다. 이것들은 기존의 평론과는 형식적으로 다르지만,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해석과 비평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 욕구를 방증합니다.

도 닦듯 글 씁니다. 문이재도(文以載道)를 주장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여기 글 내는 심정이 그렇단 얘깁니다. 변방의 책상에서 다른 세상을 만났다는 오르한 파묵의 노벨문학상 수상연설문 같은 걸로 정신 승리하는 것도 한두 번입니다.

수능 1등급이었는데 대학이라도 서울로 갈 걸 그랬어요. 루저의 흔한 뒷북이죠. 수험생 여러분 참고하세요. 저도 조중동 같은 데에 글 실어보고 싶지만 중도일보로도 만족하기는 개뿔입니다.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해체하느니 온갖 진보 잡소리 하다가도 막상 자기 커리어 소개할 때엔 '중앙지'를 굳이 거론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양반들을 부러워하면서 미워합니다. 지들끼리 알음알음 해처먹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니까 순진한 불평은 그만둘래요.

속물인데 도 닦아요. 도 닦는 속물이에요. 언제까지 도 닦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팔려고 내놓은 글들이 아니면서 잘 팔리길 바라는 건 바보 같고 닦던 도인지 똥인지 독인지 관성으로 갑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며 자신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던 윤동주 오빠처럼은 절대로 못 살겠다면서 막상 저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박사학위 따위 뭐 하러 받았을까요. 대학생은 줄어들고 있던 TO도 다 없어질 겁니다. 연구와 공부가 순수하게 좋았던 거 아니냐고요. 너만 연구와 공부가 순수하게 좋고 남들은 교수 되려고 눈이 빨갛다고 말하고 싶은가 본데 그럴 거면 인간의 이기심과 속물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느니 그딴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꼭 인간의 소인배 근성을 인정하자고 하던 애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정색하면서 본인만 고결해요. 그런 위악은 위선보다 더 역겨워요.

사랑도 식는 겁니다. 식으니까 사랑이고요. 그런 허무도 모르면서 욕망의 긍정이라니요. 식지 않으면 죽으면 됩니다. 타이타닉의 잭처럼 얼어붙어서 딴 남자랑 결혼해 손주까지 본 할머니의 기억 안에 살아있으면 됩니다. 죽어버리세요. 죽음을 통해 영원해질 것입니다.

논문 못 쓴 지 몇 년 됐어요. 어디 가서 학자라고 자칭하기 민망한 수준이죠. 변명 같지만 정말로 논문으로 쓰려던 주제들이 칼럼으로 나온 적도 있습니다. 무슨 상관인가 싶어요.

좁은 제 시야 안에서 전부였던 것들은 저물어갑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죄가 깊습니다. 긴 글은 아무도 안 읽는다고요? 솔직히 제 글도 지겹지만 그 말이 더 지겨워요. 자기가 못하는 걸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저물어가는 저보다도 확실히 한심합니다.

오늘은 낭비를 허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글 썼다고 너무 타박 마십시오.

제가 그동안 얼마나 논리정연하고 진중심각하고 시대착오적인 글들을 써왔는지 아십니까. 모르신다고요? 거 보십시오. 상관없잖아요./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안산시 '신인감독 김연경' 상록수체육관서 최종전
  2. 양산국화축제, 6만 5천여 점 국화 작품 전시 성황리에 폐막
  3. 세종시 '국가상징구역' 국제공모작 13개 윤곽...국민의 원픽은
  4. 김태흠 “6.25 참전유공자 희생·헌신 잊지 않을 것”
  5. [2025 예산 안전골든벨] 아니 갑자기 이렇게? 10번 문제에 우수수 탈락
  1. [2025 예산 안전골든벨] 즐겁게 퀴즈풀며 안전상식 배웠다… 2025 예산군 어린이 안전골든벨 '성료'
  2. 충남도, 내년 국비 확보 총력… 김태흠 지사 국회 방문
  3. [2025 예산 안전골든벨] 최형규 예산군 산업건설국장 "안전상식 배우고 실천해주길"
  4. [2025 예산 안전골든벨]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아이들 행복의 기초는 안전"
  5. 우송정보대 간호학과, 재학생 위한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 개최

헤드라인 뉴스


대전 특화 방산기술 유럽시장서 `호평`…수출상담 성과

대전 특화 방산기술 유럽시장서 '호평'…수출상담 성과

대전 방산기업들이 동유럽 시장에서 1521만 달러 규모의 수출 상담 성과를 올렸다. 한화로는 223억 4195만 원에 달한다. 21일 대전테크노파크에 따르면 지난 13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방위산업 기술 비즈니스 교류'에서 대전 지역 7개 방산·드론 기업이 이같은 결과를 냈다. 이번 상담회는 대전TP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공동으로 방산 사절단을 파견해 진행한 1대 1 비즈니스 상담회로,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개최됐다. 폴란드는 최근 동북 지역 국경 안보 강화에 나서며 국방예산을 확대하고 군 현대화를 추진하고..

3·8민주의거사업회, 기념관 운영 맡아 민주 교육과정 연다
3·8민주의거사업회, 기념관 운영 맡아 민주 교육과정 연다

대전3·8민주의거기념사업회가 내년부터 3·8민주기념관을 직접 운영하며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교육프로그램 신설을 준비한다. 20일 대전시와 (사)대전3·8민주의거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4일 개관한 중구 선화동 3·8민주의거기념관을 그동안 대전시가 직접 운영하던 것에서 기념사업회에 운영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내년 1월 전환된다. 3·8민주의거기념관은 1960년 3월 8일 대전에서 시작된 고등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로, 당시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와 불의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나섰던 학생들의 용기와 희생을 상징하는..

한겨울에 피어난 봄...국립세종수목원 `제라늄 전시회` 개막
한겨울에 피어난 봄...국립세종수목원 '제라늄 전시회' 개막

연일 계속되는 초겨울 추위 속에서도 국립세종수목원 지중해온실에서는 봄을 미리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사장 심상택)은 11월 22일부터 2026년 3월 1일까지 국립세종수목원 지중해온실에서 제라늄 품종 전시회 '우린, 지금부터 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제라늄전문협회와 협업해 진행되며, 약 350종의 제라늄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제라늄은 남아프리카가 원산지로, 화려한 꽃과 쉬운 관리로 한국 베란다 정원에 적합한 식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겨울철에도 꽃을 피워 봄을 미리 준비하는 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