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시인은 돈을 벌기 위해 시(詩)를 쓰지 않는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시인은 돈을 벌기 위해 시(詩)를 쓰지 않는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승인 2020-03-23 16:40
  • 신문게재 2020-03-24 23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어쩌면 나타샤가 되지 못한 자야(子夜)의 회한이었는지 모릅니다. 스물여섯 아리따운 기생 진향으로 만나 평생 백석(1912~1996)을 그리워한 대원각 주인 김영한의 러브스토리는 한국문단에 사랑의 수사학이 되었지요. 시공을 초월하여 생명까지도 치환될 수 있는 사랑 그까짓 재산이 무슨 대수겠습니까만 자야를 만나 백석의 시는 드디어 문장으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1000억보다 귀한 백석의 시 한 줄은 온전히 자야의 사랑이었지요. 그 위대한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오늘날 우리 시인들에게는 끝없는 자긍심과 명예로움으로 되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에서 가난한 직업 1순위는 시인이라는 한국 고용정보원의 연구결과를 보면서 시인이라는 사실이 머쓱해졌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를 쓰는 사람과 시인이 직업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동의하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습니다. 하긴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도(2015년) 월수입이 18만원으로 예술인 중에서도 가장 꼴찌로 나타나 자본의 논리가 예술을 지배하는 데이터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져 시인은 진짜 직업이 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시인은 모두 가난하다는 묵시적 동의를 인정해야 만 하는지 망설여졌습니다. 우리나라는 한국문단의 주류인 한국문협과 작가회의에 등록된 문인이 대략 2만여 명입니다. 그러나 이 통계의 기준 적용이 잘못된 것은 대전문협만 하더라도 450명 회원 중 한국문협에 가입한 숫자는 약 30%정도입니다. 다시 전국의 문인수를 역산해보면 족히 6~7만 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직업군에 속하지 않는 명제로는 시의 생산은 정량적이 아니며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서적 감동의 유기체로서 시인 자신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수요자이며 공급자 참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큰 돈을 벌 수도 있겠구나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경매가 1억 3500만 원, 백석의 '사슴'이 7000만 원이었으나 화가인 김환기의 '우주'는 무려 132억 원이었지요. 혹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만 한다면 인세만 해도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겠지만 사실 한국문화예술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1961~)은 2016년 집주인으로부터 이사를 가라는 독촉과 함께 문화예술인 근로장려금 신청 대상이 되었다며 아만티 호텔의 방 하나를 일 년 간만 사용하게 해 달라고 제안했다가 유명 시인의 갑질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가난은 시인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영광 시인(1965~)은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라며 세상의 경계를 담담하게 성찰하였고 대부분 문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기만의 문학세계에 둔테를 걸어놓고 글을 씁니다. 시는 초고의 영감과 퇴고의 막노동입니다. 일탈이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언어의 표주박으로 영혼의 샘물을 깃는 일입니다. 그 영혼이 감동과 사랑으로 다가올 때 시는 아름답게 빛나며 오랫동안 진한 향기를 남기게 되지요. 시를 쓰는 일은 마치 꿀벌들이 꽃을 찾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꿀벌은 1g의 꿀을 얻기 위해 하루에 8천 송이의 꽃을 찾아 30㎞를 비행하지만 단 한 번도 꽃의 향기를 상하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시인들도 꿀벌처럼 삼라만상을 둘러보는 견자(見者)가 된다면 천지의 야생화들은 모두 시가 되겠지요.

밀란쿤테라(Milan kundera, 1929~)는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이라며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세상의 모든 문을 셧다운 시켰지만 무심한 꽃들은 자꾸만 피어납니다. T.S 엘리어트의 시집으로 4월을 맞을까 합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구토·설사 초등학교 전교생 역학조사… 학생 7명 입원 치료 중
  2. 사회복지 현장 맞춤 인재 양성 위해 기업과 의기투합
  3. LG대전어린이집, 바자회 수익금 전달하며 따뜻한 나눔 실천
  4. 대학 '앵커' 사업 대전시·수행 대학 첫 성적표 받는다
  5. [춘하추동]사회적인식과 다문화 수용성(acceptance)
  1. [선거현장, 한 컷!] 선거인명부 작성
  2. AI 활용부터 학생 참여형 수업까지…대전 초등교실 변화
  3. [문화 톡] 김경희 작가의 개인전 '함께 빚어낸 결실, 두려움 없는 시작'
  4. 닫힌 학교를 열린 공간으로…복합시설 확대 본격화
  5. 부처님 오신 날 앞 ‘형형색색 연등’

헤드라인 뉴스


[지선 D-20] 지방선거 본게임 카운트다운…선거운동은 21일부터

[지선 D-20] 지방선거 본게임 카운트다운…선거운동은 21일부터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21일부터 시작되면서 대전·충청 지역 선거 분위기도 본격 달아오를 전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후보자 등록은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며, 등록을 마친 후보들은 21일부터 선거 전날인 6월 2일까지 공식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예비후보자 신분으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후보자들은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유권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우선 후보별 선거벽보가 지정 장소에 부착되고, 각 세대에는 후보자..

"세종 지적장애인 학대 부실 수사"… 경찰 1년만에 재수사 착수
"세종 지적장애인 학대 부실 수사"… 경찰 1년만에 재수사 착수

세종시 지적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발생한 학대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재수사에 들어갔다. 지난해 세종북부경찰서의 무혐의 처분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커지자, 비로소 수사과정의 문제점을 시인한 셈이다. 세종경찰청은 피해자 진술 조력인 참여 등 원칙적 절차 이행을 통해 철저한 원점 재수사를 예고했다. 13일 본보 취재 결과 세종경찰청 강력마약수사대는 지난 5월 6일부터 지적장애인거주시설 '해뜨는집' 학대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학대 사건의 전말은 세종시 지적장애인거주시설 '해뜨는집'에 입소한 40대 지적장애의 몸에 멍이 발견되면서 알..

지방선거 앞두고 들끓는 행정통합 여론…대전시의회 민원 100배 폭증
지방선거 앞두고 들끓는 행정통합 여론…대전시의회 민원 100배 폭증

6·3 지방선거를 20여 일 앞두고 대전 시민들의 관심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시의회에 접수된 시민 민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개인의 생활에 직결된 사안이 아닌 지역 정체성과 지방정부 재편 이슈에 여론이 크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주목된다. 12일 대전시의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접수된 민원은 총 1665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4건과 비교하면 1년 새 100배 넘게 폭증한 수치다. 특히 전체 민원 가운데 1621..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후보등록 준비 ‘분주’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후보등록 준비 ‘분주’

  • 특성화고 일자리 매칭데이 특성화고 일자리 매칭데이

  • 부처님 오신 날 앞 ‘형형색색 연등’ 부처님 오신 날 앞 ‘형형색색 연등’

  •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선거인명부 작성 시작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선거인명부 작성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