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행복의 길, 호생관 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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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행복의 길, 호생관 최북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6-0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권력과 부, 명예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내기는 참으로 어렵다.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세속의 끊임없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만만치 않다. 가치 있는 일을 하지 말란 말이 아니다. 셋 중 하나를 가진 자가 다른 것을 탐하면 타락이라 한다. 요즈음 연일 인구에 회자 되는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명예를 얻은 자가 권력이나 부를 탐하여 벌어진 촌극이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웃음 가득한 삶이요, 진선미를 아는 일이다. 상호 존중하며 사랑할 가족과 이웃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함께한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랴?

조선 시대 스스로 명인이라 자부하던 최북(崔北, 1712 ~ 1786?)이란 화가가 있었다. 취명거사(醉暝居士) 장승업(張承業)이나 취옹(?翁) 김명국(金明國)에 버금가는 애주가였다. 돈이 되는 것은 모두 가져다주고 술을 마셨다. 성격이 괴팍하기는 따를 자가 없었다. 기이한 행동 때문에 광생(狂生)으로 지목되기도 하고, 주광화사(酒狂畵師)로 불리기도 했다.

최북의 일생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3.30. ~ 1890.7.29. 네덜란드 화가)가 보기라도 한 것일까? 작가관, 자해, 자살 등 서로 닮은 점이 많다. 고흐는 기독교 선교 사업할 때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일생 빈곤 속에 살아갔다. 절망 속에 예술을 통해 인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생전에 1400여 작품 중 1점이 팔릴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미적 언어를 찾아내 훗날 만천하에 명성을 떨친다. 고갱과 함께 생활하던 중 격정을 못 이겨 왼쪽 귀 일부를 자른다. 권총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최북 스스로 지은 호가 호생관(毫生館)이다. '붓으로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신분 차별이 극심하던 당시에 직업 화가, 나아가 전업 작가임을 천명한 것이다. 도화서 화원은 그림 그리며 생활을 보장받는다. 창작활동에 방해될 것을 우려해, 알면서도 그를 거부한다. 자유로운 영혼이다. 남들이 노심초사 탐하던 왕실 광대가 되기 싫었던 모양이다. 평양, 동래 등 전국을 떠돌며 그림을 팔아 연명했다.

최북은 한쪽 눈이 없는 애꾸다. 실명하게 된 사유가 놀랍기 그지없다. 지체 높은 벼슬아치가 그림을 그려 달라 요구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겁박했다. 최북은 노여워하며 "남이 나를 저버리는 게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구나"라고 말하고는 스스로 눈을 찔렀다. 이한철(希園 李漢喆, 1808 ~ ?, 조선 화가)이 그린 최북의 초상화에 의하면 오른쪽 눈이다. 화가로서 가장 치명적인 눈을 자해하며 저항한 것이다.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흥이 나지 않으면 붓을 잡지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리지 않았다. 쉽사리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한 평가도 철저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다. 무조건 값을 많이 쳐준다고 달가워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에 과하게 돈을 주면, 돈을 집어 던지고 문밖으로 내쫓았다. 손가락질하며 "저런 놈들은 그림값도 모른단 말이야"하고 비웃었다 한다. 일부를 받고 나머지는 돌려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흡족해하는 그림에 돈을 적게 내면, 그림을 찢어 버렸다. 화내고 욕하기도 했다.

하루는 왕족인 서평공자(西平公子) 이요(李橈, 선조의 고손)와 내기 바둑을 두었다. 거금 일백 냥을 걸었다. 바둑을 지게 된 서평공자가 한 수 물리자고 하자 바둑알을 쓸어 버리고 "바둑이란 본래 놀자고 두는 건데, 만약 물러 주기만 한다면 죽을 때까지 한 판도 끝내지 못하겠구려"라며 물러앉았다 한다. 다시는 그와 바둑을 두지 않았다. 처세가 아니라 동등한 친구로 대한 것이다.

스스로 명인이라 자부했다. 금강산 구룡연에 갔을 때 일이다. 금강산의 빼어난 절경과 술에 취해 웃다가 통곡하기를 반복하더니 "천하 명인 최북이 천하 명산에서 죽는다"하고는 몸을 날려 못에 뛰어들었다. 감히 화폭에 옮길 수조차 없는 천하명승, 그것을 본 것으로 여한이 없다, 생각한 것일까? 그대로 간직한 채 이승을 하직하고 싶었을까? 다행히 구해 준 사람이 있어 미수에 그쳤지만 말이다.

그림
최북(崔北),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종이에 수묵담채, 66.3×42.9㎝,간송미술관
화가는 초상화로 자신을 만나지만, 모든 작품에 작가 내면의 치열한 고뇌가 담긴다. 그림은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이다. 깊은 산중에 눈보라 치는 겨울밤 귀가하는 나그네 모습을 그린 지두화(指頭畵)이다.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이다. 눈 덮인 산과 계곡에 강풍이 휘몰아친다. 유장경(劉長卿, 725? ~ 791?, 중국 당나라 시인)의 시에서 화제를 가져왔다 하나, 어떤 시구(詩句) 못지않게 스산한 느낌이 절로 강렬하다. 오싹할 정도이다. 놀란 개가 사립문 밖으로 쫓아 나와 마구 짖어 댄다. 작가의 거침없이 자유분방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치 않다. 눈보라가 제아무리 거세고 개가 사납게 짖어도 가야 할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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