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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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최민호/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 승인 2020-08-1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사본 -GettyImages-a12018327
국경일에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지만, 8월15일 광복절에 거는 태극기는 특히 깊은 감회가 서린다.

태극기를 지니고 있다는 자체가 죄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이다.

해방이 되던 날, 피에 절은 찢어진 태극기를 꺼내 들어 흔들며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첫 소절부터 감동적이다. 우리 조국의 땅을 '만져보자'고 했다. 바닷물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고 했다. 목숨을 바쳐 조국의 광복을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들.

태극기를 흔들며 이 나라를 길이길이 지킬 것을 다짐했다. 태극기를 누가 처음 만들었나는 정확하게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두 가지 설이 있을 뿐이다.

1883년 일본에 제3차 수신사 파견시 박영효가 처음 만들었다는 설과, 그보다 1년 전인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이응준이 김홍집내각 총리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는 설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정말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미국, 러시아, 청, 일본이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는데, 조정은 조정대로 대원군과 민비 등의 쇄국파, 개혁파, 친청파, 친러파, 친일파 등으로 분열되고 있었다.

어려운 시국에 왕인 고종은 뚜렷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1882년에는 수구세력인 임오군란이, 1884년에는 개혁세력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둘 다 외세에 의해 실패했다

지도 노선이 다른 지도자들은 이런 난의 과정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이 벌어졌고 경제도, 외교도, 정치도, 극도로 혼란스러워지면서 나라는 갈수록 기울어져가고 있을 때였다. 미국이나 일본, 청나라에게 내세울 국가의 상징도 없었다.

태극기는 나라가 풍전등화의 어려움에 처해있었던 1882, 3년경에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로 만들어졌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당시의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의 독자성을 대외적으로 뚜렷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상징 국기였다.

태극기는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었다.

1920년대 독립군들의 군기였던 '진군기'는 깃발 안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고, 3.1 운동 때도 우리 국민들은 민족의 상징인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불렀다.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다.

당시 손기정 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땄지만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손기정선수의 가슴에 부착되어 있던 일장기를 지웠다. 결국 일제에 의해 동아일보는 정간되고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고 말았다.

6·25때 맥아더 장군에 의해 서울이 수복되었을 때도 미군에 앞서 태극기를 게양하기 위해 우리 국군이 목숨을 걸고 중앙청 옥상에 올라가 게양한 사진은 지금도 감동을 준다.

태극기는 바로 대한민국 그 자체였던 것이다.

태극기는 오랜 세월동안 제원이나 규격이 규정되지 않아 적절한 모양으로 나름대로 제작하여 사용하다가 해방 후 1949년 10월 15일에야 오늘날의 태극기로 확정되었다.

국기는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그 나라의 정체성과 국가이념이 그려져 있다.

유럽 국가들의 국기를 보면 비슷비슷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나라들은 색깔은 다르지만 세 가지 색깔이 있는 삼색기를 사용하고 있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같은 나라들은 국기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모나코와 인도네시아 국기는 가로 세로 비율만 다르고 이를 거꾸로 하면 폴란드 국기와 똑같게 된다.

루마니아와 차드의 국기는 색깔의 채도만 약간 다를 뿐 구분이 안 된다. 일본의 일장기도 방글라데시, 팔라우와 색깔만 다를 뿐 동일한 도안이다.

비슷하거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똑같은 국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많은 것이다.

그렇지만 태극기는 그 자체로 독창적이다.

어느 나라 국기도 태극기와 비슷한 국기는 없다.

'태극기'(太極旗)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陰 : 파랑)과 양(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네 모서리의 4괘는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한다.

자연의 조화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 평화를 추구하는 한민족(韓民族)의 이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독창적이면서도 철학이 담긴 국기이다.

국기가 국민의 상징, 국가의 상징으로 일반화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였다.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근대 시민국가가 출발하게 된다. 그러면서 시민이 주권자인 국가의 상징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때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3색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유럽에 3색기가 많은 것은 그것을 모방하였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기는 덴마크 국기라고 한다.

십자군 전쟁 때 패배하고 있던 덴마크 병사들의 머리 위로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붉은 천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덴마크 군대는 그 천을 깃발처럼 치켜들고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1625년이었다. 덴마크 국기는 지금까지도 같은 모양이다.

프랑스 국기에서 파랑은 자유, 흰색은 평등, 빨강은 우애를 상징한다.

독일은 흑색, 적색, 금색의 세 가지 색깔을 사용하는데 이 삼색은 민주주의, 중도주의, 공화주의를 표방한다고 한다.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국기는 기독교 국가를 의미한다.

별과 초승달이 그려진 국기를 월성기라 하는데, 오스만 제국, 터키를 상징하는 깃발로 이슬람권의 여러 나라에서 모방하고 있다.

별과 초승달은 1389년에 벌어진 코소보 전투의 전장에서 무라트 1세가 피로 인해 들판이 붉은 빛으로 흥건한 가운데 유유히 떠있는 초승달을 보고 그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별은 금성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한 번도 타민족에게 지배당한 적이 없는 터키 국민들은 국가적 자부심이 대단한데 이 자부심이 국기사랑으로 나타난다.

터키 사람들은 자기나라 국기를 무시하는 것을 가장 치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망치와 낫이 그려져 있는 국기는 공산주의 국기이다. 망치는 노동자, 낫은 농민을 의미한다. 중국의 오성기와 구소련의 국기가 그것이다.

유명한 유니온 잭, 영국 국기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4개의 국기를 합쳐 만들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국기에 녹색을 사용하는데 밀림을 상징하고 있고,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국기는 미국 국기와 아주 흡사한데 그것은 미국에서 해방된 흑인 노예 2만2000명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돌아와 세운 나라가 라이베리아이기 때문이다.

국기는 이렇게 나라마다 역사적인 사연이 다 담겨 있고 그 의미는 나름대로 숭고하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국기법'이 있어서 국기에 대한 존엄성을 수호하고 있다.

형법에는 국기·국장모독죄(國旗國章冒瀆罪)라 하여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모독하는 행위는 최고 5년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다.

태극기는 절대로 찢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 소각이 어려우면 읍면동 주민센터, 시청에 국기 수거함이 비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폐기시켜야 한다.

국기를 영구(靈柩)즉, 시신을 덮을 때에는 국기가 땅에 닿지 않도록 하고 시신과 함께 매장하여서는 아니된다. 관을 감쌌던 국기는 수거하고 관만 매장한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때 무심코 태극기를 관 위에 올려놓고 매장을 진행하다가 행정안전부의 지적에 따라 다시 꺼낸 일도 있었다.

국기는 정면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 위치하도록 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표한다. 국가의 정상간 좌석은 바꿀 수 있어도 국기는 왼쪽에 배치하여 우선순위를 양보하지 않는 것이 국가간 관행이다.

자동차에는 오른쪽에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

군대나 단체에서 '받들어 총'을 할 때에도 다른 기는 비스듬히 굽혀 경례를 하지만, 태극기는 어느 경우에도 굽히지 않는다. 태극기가 어딘가에 굽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 동포의 상징이다.

금번 8·15 광복절에는 모두 태극기를 게양하여 어려울수록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더욱 새롭게 해야겠다.

최민호/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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