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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이종찬 |
중년의 나이에 최근 트롯 붐을 타고 가수 이종찬이 다시 한 번 재도약에 나섰다. 그는 신인가수가 아니다. '여자의 마음', '딱 걸렸어' 등으로 이미 인기 반열에 들어선 가수다. 그가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경늘푸른협동조합의 홍보가수로서 우리 농산물살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국각지에서 들어오는 농산물을 인터넷쇼핑몰로 홍보를 하고 최근에는 영천의 명물인 '별난커피쟁이'에 재료를 배달하는 사업성도 발휘를 하고 있다.
가수 이종찬은 충남 서천 마산면에서 세상에 나왔다. 삶에 있어서 역경은 누구나 있지만 가수 이종찬은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가 최근에 역점을 두는 것은 '봉사와 소통'이다. 역경에서 얻은 교훈으로 이웃을 섬기고 지역농산물로서 국민들의 건강한 삶도 함께 챙기는 일을 이제는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최근 바람이다.
브랜드는 경쟁력과 기업의 가치를 담고 있다. 가수 이종찬이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대경늘푸른협동조합 장희원 대표는 부동산에서 성공을 이룬 기업가다. 가수 이종찬을 만나 "농산물로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사업을 해보자"는 말 한마디에 대경늘푸른협동조합과 프랜차이즈 별난커피전문점을 바로 오픈했다.
장희원 대표는 "기업과 사업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품질과 신뢰에 바탕을 두는 것이 현실이다. 저는 농산물의 품질을 담당하고 고객들의 믿음과 신뢰는 가수 이종찬에 넘겨서 저는 농산물의 품질과 조달에만 신경 쓰기로 했다. 기업 브랜드의 홍보는 가수 이종찬에 넘겼다"며 "회사 홍보 방법에는 유튜브, 영상광고, 온라인광고, SNS 등 여러 광고마케팅이 있지만 가수 이종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모든 마케팅을 맡기고 저는 오로지 신선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일에만 집중키로 했다"고 말했다.
가수 이종찬의 성장기를 조금 들여다보면 그는 지난 1981년부터 밤무대 가수를 시작했다. 당시의 밤무대는 그냥 밤무대가 아니었다. 히트곡 하나만 있으면 중소기업 사장 못지않은 수입과 부를 누릴 수 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실력이 없으면 얼굴을 내밀 수 없는 시기였다. 이종찬은 타고난 실력과 미성(美聲)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히트곡이 없는 가수의 설움이란 말할 수 없는 고뇌를 안고 있었다. 고정출연 업소도 있었지만 영구적이지 못했다.
당시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자는 생각에 사랑 하나로 노래를 포기했다. 그리고 입문을 하게 된 직업이 권투. 1970년대와 1980년도 초반까지 한국권투는 황금기였다. 이종찬은 가수를 접고 당시 유제두 체육관에 입문했다. 유제두 선수는 지난 1975년 6월 7일 일본 기타큐슈 고코라에서 열린 WBA주니어미들급 세계타이틀 매치에서 당시 일본의 최고 인기복서였던 와지마고이치를 7회 KO로 누르고 김기수, 홍수환 다음으로 우리나라에 세 번째 세계챔피언을 안긴 스타복서였다.
이종찬의 생각은 단지 하나. 사랑도 지키고 챔피언으로 이름 석자를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유제두 체육관을 다니며 운동을 하고 생업을 위해 인쇄소를 다녔다.
챔피언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바빴다. 전문적인 인쇄 기술을 배우고 인쇄사업을 하면서 이종찬은 다시 밤업소 생활을 시작했다.
행복도 잠시. 인쇄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중에 IMF라는 파도가 밀려왔다. 누구나 힘든 시기였지만 이종찬에게는 파도가 아닌 거대한 폭풍이었다. 실패는 당연지사고 앞이 보이지를 않았다. 막노동, 엑스트라 배우, 그날 일이 없으면 다시 막노동 일을 하는 등 말 그대로 '길 잃은 철새'였다. 그러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에 이종찬은 작사가 김연표 선생을 만났다.
김연표 작사가는 이종찬 가수의 '내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취입해 주고 메들리 1집도 선물을 했다. 이종찬은 또 한사람을 꼽았다. 작사가 김종규다. 이종찬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딱 걸렸어', '여자의 마음' 음반비용 지원을 했다.
음반을 내자마자 '딱 걸렸어', '내 마음에 쏙 드는 여자', '여자의 마음'의 대중들의 호응은 좋았다. 여기저기서 주문이 밀려왔다. 몸도 바빴다. 음반 주문과 더불어 행사에 부르는 햇수도 늘어났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싶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이종찬은 당시를 회고했다.
이종찬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일이 바로 봉사활동이다. 양로원, 교도소, 치매병원 등 장애인, 그리고 독거노인들을 찾아 안부를 전하며 사랑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형제회'라는 자신의 모임에서 만난 어려운 분들을 위해 지금도 그의 발길은 잠시도 쉬지를 않는다. 형제회 회원이었던 파주 소재 박모씨(86)는 지금도 이종찬 가수의 손길이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다.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시간만 나면 안부를 전하고 달려가 형님처럼 보살펴 오고 있다. 햇수로도 20여 년째다.
이번에 가수 이종찬이 농산물 홍보대사로 나선 것은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겠다는 취지다. 불우이웃 돕기에서 범위를 넓혀 '전 국민의 건강'을 홍보하고 알리기 위해 '대경늘푸른협동조합'의 홍보대사로 나선 것이다.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고 흥을 돋우기 위해 대경늘푸른협동조합 쇼핑몰 하단에 이종찬 가수의 유튜브도 넣었다. "딱걸렸어, 내 마음에 쏙 드는 여자, 여자의 마음" 등 흥겹고 신나는 노래 가락이 메들리와 함께 이어진다.
얼마 전 방송가에서 30여 년 동안 가요 쇼프로를 제작하고 기획사를 운영했던 방송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다. 가수 이종찬을 두고 이런 평가를 했다. "백년에 한번 볼 수 있는 타고난 미성(美聲)을 지난 가수다. 타고난 미성(美聲)을 지닌 가수는 6.25전쟁 전후로 활동했던 '가거라 삼팔선''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의 히트곡을 남긴 고 남인수 선생 이후 처음인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타고난 미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유튜브 동영상에서 '여자의 마음'을 들으면 가녀린 듯 하면서 끈적거림이 진하게 묻어나는 이종찬의 미성(美聲)을 들을 수가 있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이 상심하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지금도 '길 잃은 철새'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노래로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삶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지속적인 소통과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농산물 홍보대사 역할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 하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임택 기자 it8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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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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