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올 봄은 사춘기가 빨리 찾아온 것 같습니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올 봄은 사춘기가 빨리 찾아온 것 같습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승인 2021-04-19 08:19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초강 송백헌 교수(1935.9.1.~2021.1.9.)의 '별을 담은 서재' 회고전이 열리는 대전문학관을 다녀왔습니다. 선생은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관동별곡을 줄줄이 외우는가 하면 기호 유림의 문중 이야기와 우리 지역 유래에 막힘이 없는 인간 백과사전이었지요.

또한,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아우르는 연구자, 문학평론가로 많은 저술을 남기셨지만, 무엇보다도 평생 수집하고 소장했던 자료 7000여 점을 대전문학관에 기증한 것은 대전문단사에 길이 남을 숭고한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영랑 형(永郞 兄)이라고 적은 백석 시인의 친필 사인이 있는 『사슴, 1936』은 100부 한정판으로 현재 5~6부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은 희귀본이며, 우리나라 최초 번역 시집인 김억의 『오뇌의 무도, 1923』 1920년대 상징주의 시인인 황석우의 첫 시집 『자연송, 1930』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가 된 이인직의 첫 장편 소설 『혈의 누, 1955』 한국모더니즘의 대표 시인인 김광균의 『와사등, 1946』 심훈의 『상록수, 1948』 등은 가치를 한정할 수 없는 보물들입니다.

선생은 평소 '사람 냄새가 나는 끈끈한 정이 필요하고 언제든지 끈끈한 정으로 만나고 또 헤어질 때 아쉬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며 제자 문인들에게 이런 인간성을 심어주고자 노력해왔으며, 문학은 바로 이런 인간들의 이야기로 인간을 벗어난 문학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지난 여름 원로 문인 몇 분을 모시는 자리에서 선생을 마지막 뵈었습니다. 늘 소탈하시고 구수한 언변으로 대전 문단을 이야기하시던 다정한 모습이 눈에 밟혀 숙연한 마음에 오랫동안 전시실을 떠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대전문학관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선생의 생애가 아름다운 별을 담은 서재가 되고 있었습니다.

선생을 흠모하는 라일락과 영산홍이 문학관 뜰에 곱게 핀 것을 보면서 사람도 저 꽃과 같아 아름다워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고 보니 올해는 기상관측 이래 꽃이 피는 봄의 사춘기가 유난히도 일찍 찾아온 것 같습니다. 봄꽃들이 앞다투어 화르르 피어나더니만 눈 깜짝하는 사이 꽃 무더기로 떨어지고 그 자리에는 연두맹아(萌芽)가 초록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식물의 생식기인 꽃이 마치 사계절 성조숙증 증후군(Precocious Puberty Syndrome)에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듭니다.

하긴 어찌 올봄뿐이겠어요.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재해와 기상이변을 두고 사람들은 날씨가 미쳤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기온상승으로 인한 생태계의 정주 환경 교란은 오래전부터 진행돼왔습니다. 인간들의 풍요로운 소비를 미덕으로 우리나라는 1930년대보다 연평균 기온이 1.6℃ 상승하였으며 세계 평균 0.6℃를 2배 이상 상회해 이미 기후변화 펜데믹 중심에 있으며 '곶됴코 여름하니' 지는 꽃들이 하염없는 봄날입니다.

빌게이츠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라고 하였지요. 백신이 개발되면 코로나19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기후변화의 재앙은 지구의 운명과 인류의 숙명을 꼼짝달싹 못 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올해 초 핀란드의 헬싱긴 사노마트에는 '나는 커서 엄마가 되고 싶어요(WHEN I GROW UP I WANT TO BE A MOM)'라는 소녀를 배경으로 기후변화의 글꼴이 녹아내리는 북극 빙산의 획으로 디자인하여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였습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미래의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기후변화가 초래할 위험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자발적 출산을 거부하는 저출산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환경문제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실천의 명제인 것처럼 지금 우리는 코로나 4차 유행의 기로에서 '연장, 연장, 연장'의 거리두기 반복으로 지쳐가고 있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 아닐는지요.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불당중 폭탄 설치 신고에 '화들짝'
  2. 대전방산기업 7개사, '2025 방산혁신기업 100'선정
  3.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4. 의정부시 특별교통수단 기본요금, 2026년부터 1700원으로 조정
  5. "신규 직원 적응 돕는다" 대덕구, MBTI 활용 소통·민원 교육
  1. 중도일보, 목요언론인상 대상 특별상 2년연속 수상
  2. 대전시, 통합건강증진사업 성과공유회 개최
  3. [오늘과내일] 대전의 RISE, 우리 지역의 브랜드를 어떻게 바꿀까?
  4. 대전 대덕구, 와동25통경로당 신축 개소
  5. [월요논단] 대전.세종.충남, 문체부 지원사업 수주율 조사해야

헤드라인 뉴스


`벌써 50% 돌파`…대전 둔산지구 통합 재건축 추진준비위, 동의율 확보 작업 분주

'벌써 50% 돌파'…대전 둔산지구 통합 재건축 추진준비위, 동의율 확보 작업 분주

대전시의 노후계획도시정비 기본계획안이 최근 공개되면서, 사업대상지 내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선도지구 선정을 위한 동의율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8일 지역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대전 둔산지구 통합14구역 공작한양·한가람아파트 단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최근 다른 아파트 단지 대비 이례적인 속도로 소유자 동의율 50%를 넘겼다. 한가람은 1380세대, 공작한양은 1074세대에 이른다. 두 단지 모두 준공 30년을 넘긴 단지로, 통합 시 총 2454세대 규모에 달한다. 공작한양·한가람아파트 단지 추진준비위는 올해..

[충남 소상공인 재기지원] 위기의 소상공인 다시 일어서다… 경영·디지털·저탄소 전환까지 `맞춤형 종합지원`
[충남 소상공인 재기지원] 위기의 소상공인 다시 일어서다… 경영·디지털·저탄소 전환까지 '맞춤형 종합지원'

충남경제진흥원이 올해 추진한 소상공인 지원사업은 경영개선부터 저탄소 전환, 디지털 판로 확대, 폐업 지원까지 영역을 넓히며 위기 대응체계를 강화했다. 매출 감소와 경기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도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경영지원금을 지급하고 친환경 설비 교체와 온라인 마케팅 지원 등 시장 변화에 맞춘 프로그램을 병행해 현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진흥원의 다양한 지원사업의 내용과 성과를 점검하며 충남 소상공인 재기지원 우수사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충남경제진흥원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구제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시스템..

유성복합터미널 1월부터 운영한다
유성복합터미널 1월부터 운영한다

15여년 간 표류하던 대전 유성복합터미널이 1월부터 운영 개시에 들어간다. 8일 대전시에 따르면 유성복합터미널의 준공식을 29일 개최한다. 유성광역복합환승센터 내에 조성되는 유성복합터미널은 총사업비 449억 원을 투입해, 대지면적 1만5000㎡, 연면적 3858㎡로 하루 최대 65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로 건립된다. 내년 1월부터 서울, 청주, 공주 등 32개 노선의 시외 직행·고속버스가 운행되며, 이와 동시에 현재 사용 중인 유성시외버스정류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4월까지 정비를 완료할 예정이다. 터미널은 도시철도 1호선과 BR..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