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마음을 기록해주세요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마음을 기록해주세요

/김선미 해밀고 교사

  • 승인 2021-05-20 16:24
  • 수정 2021-06-24 13:58
  • 신문게재 2021-05-21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해밀고 김선미 선생님
/김선미 해밀고 교사
'한 권을 책을 읽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세계를 아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곱씹으며 사람의 삶을 책에 비유한다면, 나의 삶은 어떤 장르일지 고민한 일이 있다. 아이들과의 삶을 닮은 우당탕탕 시트콤일지, 나의 책 편식이 반영된 잔잔한 에세이일지. 그러다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 책을 제대로 펼치지 않으면서 어찌 그것을 알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수행평가로, 논술 수업으로 글은 끊임없이 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글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도 거의 없다.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국어 수업을 하며 글쓰기 활동 및 수행평가를 진행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그저 선생님이 제시한 평가 기준에 맞춰 작성하고 수업 내용처럼 암기하여 외우듯이 써 내려갔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물론 그 속에서 채점을 하는 나조차도 글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이 온전히 들여 다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쓴 글이 그저 숫자로 읽히는 점수로, 또는 생활기록부의 한 줄로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애달프게 슬픈 마음이 들었다.

2019년 1학년 학생들과 국어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글을 읽으며 혼자 감탄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과 같이 학년을 올라가 문학과 화법과 작문 수업을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결심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글을 쓰게 해서 책으로 만들자. 역시나 채점도 해야 하고 바쁜 학교 일정에 친구들과 공유할 수는 없어도 책으로 남겨 자신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글을 오래오래 간직하게 해야겠다고. 1학기 문학 시간 동안 학생들과 시를 배우고 감상하고, 1학기 시험이 끝난 이후 80권의 시집 중 한 권을 골라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을 고르게 하였다. 갑갑한 현실에서 한 줄의 시로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 다 볼 수 있게. 그 후 2학기 화법과 작문 시간에 생활글쓰기를 진행하여 자신의 경험과 성찰을 담은 글을 작성하도록 했다. 역시나 학생들의 글에는 자신의 숨기고 싶은 비밀, 아픔, 고통이 담겨 있었고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하고 눈물 나게 하는 마음이 넘실거렸다. (물론 달달한 연애사도 많았다.)

300여명의 학생들이 글을 쓴 다음, 책 출판을 희망하는 친구들의 글을 모으고 '알음사'라는 학년 출판 소모임을 조직하였다. 참여 희망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 및 관심사에 따라 기획부, 편집부, 디자인부, 판매 홍보부 중 희망하는 부서에 지원하였으며, 학생들이 직접 편집하고, 책 표지 및 내지를 디자인하며 '마음기록부'라는 제목의 책을 완성했다. '생활기록부'가 아닌 18살의 현재 지금의 '마음'을 기록한 '마음기록부'. 책이 완성된 후 판매 홍보부 학생들과 함께 교내 학생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출판 기념회 및 판매 부스를 기획 및 운영하였다. 130 여권의 책을 출판하여 감사하게도 약 110,000원의 판매금을 모았다. 학생들은 최근 아동 학대 사건을 떠올리며 직접 지역 내 아동 학대 기관에 기부하기로 희망하였고, 이를 세종특별자치시 아동 학대 전문 기관에 전액 기부하였다. 학생들은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자신의 재능 기부로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이 기쁨을 얻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의 가슴도 뜨거워졌다.



지금 내 옆에도 '마음기록부'가 있다. 교직 생활을 하며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꺼내 읽으며 지금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곤 한다. 아이들이 삶의 전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발생한 마음을 꺼내 썼던 책을 읽으며, 그 책이 자신의 마음속에 내재한 고통에 대한 치료제로, 또래 친구들의 글을 공감하며 치유하는 해독제로 함께 했으면 한다. 올해도 생활글쓰기가 시작된다. 또 다른 아이들의 마음 책을 읽을 순간이 기대된다.

/김선미 해밀고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천 연수구, 지역 대표 얼굴 ‘홍보대사 6인’ 위촉
  2. 시흥시, 별빛 축제 ‘거북섬’ 점등식
  3. 행정수도와 거리 먼 '세종경찰' 현주소...산적한 과제 확인
  4. "아산으로 힐링 가을여행 오세요"
  5. 대전 방공호와 금수탈 현장 일제전쟁유적 첫 보고…"반전평화에 기여할 장소"
  1. 호수돈총동문회, 김종태 호수돈 이사장에게 명예동문 위촉패 수여
  2. [경찰의날] 대전 뇌파분석 1호 수사관 김성욱 경장 "과학수사 발전 밑거름될 것"
  3. 초등생 살해 교사 명재완 무기징역 "비인간적 범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4. "일본에서 전쟁 기억은 사람에서 유적으로, 한국은 어떤가요?"
  5. KAIST 대학원생 2명중 1명 "수입 부족 경험" 노동환경 실태조사

헤드라인 뉴스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대전과 세종, 충북을 급행철도로 연결하는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가 민자적격성조사 문턱을 넘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비례)이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위한 CTX의 조기 개통 로드맵 마련을 주문했다. 황 의원은 21일 대전 동구 한국철도공사 본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국가철도공단·에스알(SR)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50번에는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 있고,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전국 접근성 개선에서 서울에서 1시간 전국 주요 도시에서 2시간 접근 가능한 교..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과학과 예술의 도시, 대전시가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에 우뚝 섰다. 21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2025 아시아·태평양 공연예술센터연합회(AAPPAC) 대전총회'가 3일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지역적 영감에서 세계적 영향으로(From Local Inspirations to Global Influences)'를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에는 세계 20개국 80여 개 공연예술 기관 관계자가 참석해, 지역이 품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세계로 확산되는 길을 함께 모색했다. 첫 번째 세션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K-컬처'에서는 한국 문화예술이..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유성구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원자력안전 교부세 신설이 수년째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입법이 좌절된 이후 올해 초 또다시 관련법이 제출됐지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 나아가 144만 대전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인데 행정당국의 이슈파이팅 부족으로 현안 관철은 멀기만 해 보인다. 21일 취재에 따르면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대전유성을)이 대표발의 한 이른바 '원자력안전교부세법'(지방교부세법 일부개정안) 7월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현재 위원회 차원에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