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도시의 주인-다수와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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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도시의 주인-다수와 소수

한밭대 건설환경조형대학장

  • 승인 2021-10-27 10:05
  • 신문게재 2021-10-27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임윤택 교수
임윤택 한밭대 교수
최근 도시계획 과정에 주민참여가 중요해지면서 다양한 리빙랩이 운영되고 있다. 미국 MIT 대학에서 처음 시도된 리빙랩은 새로 개발된 IT 기기들을 직접 생활공간에 설치하고 사용하면서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개선방안을 찾아가는 '살아있는 실험실'로서 시작되었다. 최근 도시재생과 스마트시티 계획을 수립할 때, 주민들이 스스로 요구사항들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도출하여 계획에 반영하는 리빙랩을 운영하고 있다. 의사결정자나 전문가들이 아닌 실제 사용자들이 계획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과정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동안 몇몇 리빙랩에 참여하거나 운영하였던 과정에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대부분 리빙랩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기관이나 회사가 주민들을 모아서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내는 과정을 도와주고, 여기서 도출된 사업내용을 사업주체(지자체 또는 사업시행자)에게 전달하는 단계에서 끝나곤 하였다. 이마저도 예산이나 공간적 여건 등에 가로막혀 주민들이 선정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경우에는 사업이 종료된 이후까지 주민들이 사업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예산이 끊기면 함께 중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일찍 모여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대덕연구단지와 대전의 미래를 자유롭게 토론하던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에서는 보다 뜻있는 일을 하고자 사회적협동조합을 구성하였고, 그 첫 사업으로 유성구 ㅇㅇ동의 교통문제를 해결하는 리빙랩을 운영하기로 하였다. 이 사업은 구청에서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고 구성원 중 과학기술인들이 많아 자신있게 시작하였다. 대상지는 인접한 아파트단지들과 함께 대덕연구단지 개발 초기에 주거지로 조성되어 상가와 다세대/다가구주택들이 밀집한 곳이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자동차는 급격하게 증가하였지만 도로와 주차장은 확장되지 못하였다. 지난 겨울 현장조사때에는 반경 250 미터 내외의 넓지 않은 지역에 불법주차 차량이 500여 대에 달하였다. 왕복 2차로 도로의 양측에는 주차된 차량들이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등하교하는 어린이들은 주차한 차량들에 가려 다가오는 차량들을 보지 못하고 불안하게 도로를 건넜다. 한 차로만 간신히 통행이 가능한 도로의 양측에서 진입한 차들이 서로 상대방이 후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과 자운대 군인들의 안식처였던 이 마을은 '불이 나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고,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구급차가 접근할 수 없는' 마을이 되었다.

리빙랩의 시작 단계에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주민들과의 접점을 찾지 못하였고, 의욕에 찬 활동은 외면받거나 거부당하였다. 몇 차례의 토론 끝에 주민들이 주도하여햐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자발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주민들을 모집하였다. 일방통행이 편리할지에 대한 실험, 숨어있는 주차장을 찾아내어 주차공유 앱을 활용하는 실험, 그리고 어떠한 통학로가 안전할지에 대한 실험의 세 가지 주제로 팀을 나누었다. 당초부터 리빙랩을 주도하였지만 지역 주민이 아닌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원만 참여하여 전문적인 기술지원을 하기로 하였다. 초기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뿌리내린 주민들은 빠르게 세 가지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설문과 면담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세 팀의 협의를 통해 일방통행 실험구간을 정하고, 구청과 관계 기관의 협조를 받아 실험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원활할 수는 없었다. 일부 상점 주인의 강한 거부로 인하여 일방통행 실험은 반나절 만에 중단되었다. 공영주차장 입체화와 같은 과거의 논쟁이 다시 거론되었고, 새로운 도로 개설사업과 같이 실험의 범위를 벗어나는 주장이 등장하여 리빙랩의 방향을 희석하였다. 코로나로 인하여 학부모들의 모임이 열리지 못하여 통학로에 대한 중요한 집단의 의견을 모으지 못하였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리빙랩은 계속되고 있다. 상점을 운영하는 주민들에 대해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토론하였고 학부모 대상 온라인 설문을 시작하였다. 주민들은 리빙랩 초기 멤버들을 독촉하며 사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 리빙랩을 보면서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도시의 다양한 활동에는 '적극적인 소수'와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 이 중 강력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소수는 본인들의 이권을 위하여 또는 잘못된 지식에 근거하여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 반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차없는 거리를 만들려는 시도에 매출이 저하되고 지가가 하락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서울 신촌이나 대구 동성로는 차없는 거리를 시행한 이후 상권이 활성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지가도 상승하였다. '침묵했던 다수'는 '시끄러운 소수'에 서운한 감정을 가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서로 상반된 의견이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소수는 다수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다수는 소수를 설득할 의무가 있다. 소수가 다양한 방법으로 다수를 저지할 수 있고, 소수를 억누르는 다수는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도시라는 생활기반을 함께 나누는 이웃들일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리빙랩조차도 도시 내에서 일어나는 활동이기에 이미 실험이 아닌 우리 삶의 일부이다. 시민 모두가 도시공간의 주인이지만 서로 조화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주인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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