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세계 민주 시민을 기르는 '불편한 역사교육'을 지향하며

  • 사회/교육
  • 교육/시험

[교단만필] 세계 민주 시민을 기르는 '불편한 역사교육'을 지향하며

김준기 세종고 역사교사

  • 승인 2021-11-04 20:29
  • 신문게재 2021-11-05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세종고 김준기 선생님
김준기 세종고 역사교사
2014년 처음 교단에 발을 디딘 후 8년째 역사 교사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보통 역사 교사라면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 생각하는 게 대부분의 인식입니다. 하지만 역사 교사는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 동아시아사 과목도 담당합니다. 즉 역사 교사는 한국사와 세계사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역사 교사는 한국사만 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사정으로 중학교 역사 과목의 시수가 적어 부득이하게 한국사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었고, 고등학교에서는 세계사, 동아시아사 과목이 다른 사회탐구 과목과 비교해 인기가 적어 학교에서 개설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저는 다행히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매년 세계사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세계화가 상식을 넘어 현실 그 자체인 21세기에서, 학생들에게 세계사 교육은 삶을 이해하고 개척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교현장에서 외면받고 관심이 적더라도 소명 의식을 가지고 수업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일국사인 한국사에 비해 세계사는 교육 목적과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는데 어려움이 큽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세계사 과목에서 '각 지역이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하는 과정을 다루고, 이들 지역이 하나의 지구촌으로 통합되는 과정과 변화를 탐구'한다고 설정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근대사 부분에서 각 지역의 역사를 병렬적으로 학습하고, 근현대사 부분에서 제국주의-세계대전-냉전으로 이어지는 대서사를 사건 중심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즉 세계사 과목에서 역사적 사실이나 개념을 나열하여 배우기 바빠 '세계화 교육'을 다룰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몇 해 동안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세계화 교육'을 수업에서 녹여낼 방법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세계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세계 민주 시민'으로 길러내는 활동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근현대 세계사는 전쟁과 갈등, 분열의 연속이었기에 통합과 상호 이해의 관점에서 세계 역사를 교육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고민의 결과 탄생한 방안이 바로 '불편한 역사교육'이었습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 세계사 수업에서 편견을 깨고 인지적 갈등 상황을 제공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사실로 생각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만 하지 않고, 역사적 판단력을 바탕으로 비판적 인식을 기르는 모둠활동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신항로 개척이 유럽에 가격혁명을 불러왔다는 교과서의 일반화를 비판하며 파리와 바르샤바의 밀 가격을 비교하였고, 소설 '마지막 수업'을 통해 알자스-로렌 지역의 역사를 배우고 '민족'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배우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신간회 결성과 해소 배경을 제1차 국·공 합작과 코민테른, 프로핀테른의 국제 전략으로 검토했으며, 난징대학살과 도쿄대공습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 문제를 다루며 총력전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존재하는지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광복 후 조선 내 일본인의 귀환 문제를 다룬 '요코 이야기'를 비판해보고, 상반된 인식을 보이는 '흐르는 별은 살아있다' 소설을 학습하며 역사 왜곡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촉구하는 토의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은 기존의 인식과 다른 결론을 낼 때 많은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인식의 폭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세계 민주 시민으로서 비판적 안목과 상호 이해의 관점을 조금씩 길러 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저 또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미얀마,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세계는 오늘도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 문제를 일국의 시민이 아닌 세계 시민으로서 바라보고, 보편 윤리에 기초한 문제 해결 방안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학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사교육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김준기 세종고 역사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맥도날드 부재' 논란...행복도시 현주소 재조명
  2. [취재 뒷담화] 세종시 2025년 부동산 시장 변수는
  3. 세이브코리아(Save Korea) 국가비상기도회
  4. [중도초대석] "응급의학이 뭐죠" 이 질문에서 시작된 응급실 삶 36년 '유인술'
  5. [사설] '대한민국 과학축제' 통합 의미 크다
  1. [대전 학교 체육시설, 굳게 닫힌 문] 시민들에 개방 때 학교관리자 책임 과중 분산해야
  2. 세종시 신중년 모여라! 2025년 1학기 정규 교육생 모집
  3. '선문대글로컬다문화교육센터 운영' 신창초 다문화 돌봄교실 '2025년 힘쎈 충남마을 돌봄터' 선정
  4. 초등생 살해 교사 대면조사 '차일피일'… 압수물 분석은 진척
  5. 세종 꿈마루 찾아가는 학교 설명회 스타트

헤드라인 뉴스


‘맥도날드 부재 논란’으로 짚어본 세종시 현주소 재조명

‘맥도날드 부재 논란’으로 짚어본 세종시 현주소 재조명

맥도날드의 세종시 진출을 둘러싼 '김재형(고운동·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의 5분 발언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중도일보 2월 14일 자 보도) 본사도 아닌 하나의 지점 설치에 목소리를 높인 것을 두고 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으로서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가 하면, 맥도날드 프랜차이즈란 상징성을 토대로 행복도시의 현주소를 개선하고 새로운 발전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교차하고 있다. 실제 2월 14일 김재형 의원 발언과 중도일보 등의 언론매체 보도가 이어지고, 지역 커뮤니티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타났다. 김 의원은 202..

“노무현의 꿈 ‘행정수도’, 대통령실 세종 이전 통해 완성”
“노무현의 꿈 ‘행정수도’, 대통령실 세종 이전 통해 완성”

대권 주자로 꼽히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의 꿈”이라며 대통령실 이전을 통한 행정수도 완성을 강조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 여정을 함께해온 최측근들로,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대통령실과 국회의 조속한 이전을 승부수로 띄우고 있다. 김경수 전 지사와 이광재 전 지사는 1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준현(세종을)·김영배(서울 성북갑) 의원실 주최로 열린 ‘행정수도 세종 이전의 추진방안과 과제’ 토론회에 나란히 참석했다. 같은 당 장철민(대전 동구)·이재관(충남 천..

서천군이 자체 제작한 청렴 드라마… 유튜브 공개 후 관심 폭증
서천군이 자체 제작한 청렴 드라마… 유튜브 공개 후 관심 폭증

서천군이 공직사회 청렴문화 확산을 위해 자체 제작한 청렴 드라마가 공식 유튜브 체널인 '요즘서천'에 공개되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영상은 청탁금지법 준수와 음주운전 예방을 주제로 공직자가 업무 수행 중 마주할 수 있는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특히 홍보감사담당관 직원들이 나서 직접 대본을 작성하고 출연부터 촬영까지 참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주연을 맡은 주무관의 수준 높은 연기가 몰입도를 높여 청렴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에 재미와 현실감을 더했다. 이번 청렴 드라마는 공직자가 직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윤리적 문제를 세 가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인도 점령한 이륜차와 가게 홍보판 인도 점령한 이륜차와 가게 홍보판

  • 봄마중 나온 나들이객 봄마중 나온 나들이객

  • ‘우리 동아리로 오세요’ ‘우리 동아리로 오세요’

  • 하늘로 떠난 하늘이…‘오열 속 발인’ 하늘로 떠난 하늘이…‘오열 속 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