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랑올랑 새책] 중독의 시대, 황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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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올랑 새책] 중독의 시대, 황혼의 시대

'한편' 7호 '중독'
시집 '해변의 묘지'

  • 승인 2022-02-02 13:49
  • 수정 2022-02-02 13:50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해변
▲게티이미지뱅크
쇼핑중독, 스마트폰 중독, 워커 홀릭 등 치열한 삶은 현대인의 미덕이자 덕목이다.

미쳐야 미친다, 1만 시간의 법칙 등 꾸준하고 치열한 삶을 위한 자기계발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의무다.

지금 우리의 사회적 위치와 성공 여부는 나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채찍 하는 사회 안에서 중독은 어찌 보면 치열한 인생 속에서 유일한 탈출구이면서도 삶을 소비하는 마약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쓰는 인문잡지 '한편' 7호(민음사 펴냄, 220쪽) 가 출간됐다. 이번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중독'이다.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등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를 인문, 사회,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담론을 담는 '한편'은 중독을 통해 미디어 중독부터, 알코올중독, 스마트폰 중독, 쇼핑 중독 등 다양한 대상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짚는다.

하지만 책에서 다루는 '중독'을 단순히 좋은 것, 나쁜 것의 범주가 아니다.

중독의 시대에 행복해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등 보다 유연한 시각과 접근이 흥미롭다.

반면 삶과 죽음에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는 급변하는 세계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은 젊은 지성인의 고민과 사유 과정을 엿볼 수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시인인 폴 발레리는 '시'를 통해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심연에 극도의 경멸을' 표하면서도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위로는 냉혹하고 씁쓸한 위로를 건넨다.

1세기 전 작가가 겪던 치열한 고민이 쾌락과 방황 속의 '중독'과 맥이 닿아 있다.



▲지나친 의존일까, 심각한 비정상일까 '중독'='한편' 중독은 '스마트폰'에서 시작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인의 주 평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11. 9시간으로 집계됐다. 처음 스마트폰을 받아들였을 때의 경외감 비슷한 느낌은 이제는 헤어날 수 없는 마력 안에서 삶의 대부분을 의존한다. 스마트폰의 중독 설계를 파헤치고 중독의 메커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한편'은 여기에 여성학과 퀴어, 임상심리학, 장애학, 문헌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중독' 에 대한 담론 열 편을 심었다.

책 에서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는 '인생샷'이 혼자 자아 도취한 젊은 여자라는 이미지를 부정하고, 동료와 협업을 이뤄지는 또래문화이자, 관심 경제의 일부라고 규정한다.

'담배, 참 맛있죠'를 통해 중독자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품었을 법한 여러 의문도 담고 있다.

문헌학자 노경희의 '불멸에 이르는 중독'은 다른 사상을 억압하는 경직된 조선을 변화를 끌어낸 사람들을 통해 통찰을 공유한다.

따옴표3
미디어 중독자 덕후는 넓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싸(인사이더 insider의 약자로 오프라인의 여러 조직 속에 적극적으로 사회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의 반대항에 있다. 오프라인에서 겪는 여러 불화와 폭력, 고통은 미디어 중독을 이끄는 강한 동인이고, 나 역시 그렇게 중독자가 되었다. 이때 덕질은 불행에 빠진 이들이 그저 머무르기만 하는 곳일 뿐 오프라인 세계의 불행을 없애지는 못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러나 중독자로 살아오며 상상 밖의 방식으로 행복해져 보니, 인생은 그렇게 함부로 속단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 '미디어중독자의 행복한 삶' 중에서







▲희귀하지만 고결한 삶의 찬미' 해변의 무덤'= 민음사 세계시인선 56번으로 출간된 폴 발레리의 시집 '해변의 묘지'는 시를 사유 방법의 하나로 여겼던 발레리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과 사유를 통해 점차 또렷해지는 의식을 보여 준다. "내 바다의 시선에 온통 둘러싸여 익숙해진다. 또한 신에게 바치는 내 지고의 제물인 양, 잔잔한 반짝임은 심연 위에 극도의 경멸을 뿌린다"며 삶을 비관하고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며 살려고 애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 비평가인 폴 발레리는 '해변의 묘지', '나르시스는 말한다' 등을 통해 프랑스 상징시의 대가로 평가받는 작가다.

윤동주를 비롯한 많은 시인의 원동력이 됐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인 '바람이 분다'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옴표2
잘 있거라, 나르시스여…… 죽어라! 이제 황혼이다.

내 가슴의 숨결에 내 형태는 물결치고,

덮어 가려진 창공을 가로질러, 울며 가는

가축들의 아쉬움을 목동의 피리가 조율한다.

하지만 별이 불 밝히는 독한 추위의 수면에서,

완만한 안개 무덤이 생기기 전에,

숙명적인 물의 정적을 깨뜨리는 이 입맞춤을 받아라!

희망만으로 이 수정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하다.

잔물살이 몰아내는 숨결로 나를 호리니,

내 입김이여 가냘픈 피리를 생동케 하라

가벼이 피리 부는 이도 내겐 너그러울 것이니!……

-'해변의 묘지' 중에서






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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