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톨레랑스의 꽃다발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톨레랑스의 꽃다발

만 권의 책을 읽으니

  • 승인 2022-05-1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중략)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란 시다. 이 시를 읽노라면 차마 간장게장을 먹을 수조차 없어진다. 그런데 꽃게 엄마는 왜 알들에게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며 거짓말을 했을까.

이는 자신으로선 당면한 죽음과 최후를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알들에겐 차마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음에 그리했지 싶다. 이러한 꽃게 엄마의 어떤 톨레랑스(tolerance), 즉 용인과 관용은 비록 작위적이긴 하되 만인의 심금을 울리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간장게장의 슬픈 운명과 톨레랑스 얘기를 꺼낸 건, 지난 시절 소년가장 시절의 고생담을 잠시 되돌아보기 위함에서다. 어머니를 생후 첫돌 즈음 잃고 빈곤하여 초등학교조차 겨우 마쳤다.

당시로서는 사치였던 중학교 진학 대신 소년가장이 되어 고향 역전에서 구두닦이를 했다. 이어 시외버스에 올라가선 껌도 팔았다.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너무 좋아서 아무런 노력과 고생을 하지 않음에도 풍족함을 즐길 수 있는 자녀들을 지칭하는 '금수저' 출신은 먹고 살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반면 나와 같은 '완전 흙수저'는 만날 뭐 빠지게 일해 봤자 늘 그렇게 쪼들리기 일쑤였다. 언젠가 나처럼 초등학교 졸업 후 껌팔이 등을 전전했던 사람이 이를 악물고 공부하여 입지전적 인물로 환골탈태했다는 기사를 봤다.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만 권의 책을 읽으니 비로소 꽉 막혔던 지혜의 곳간 자물쇠가 풀렸다. 당나라 때 시인이었던 두보(杜甫)는 "만 권의 책을 독파하면 귀신처럼 붓을 놀릴 수 있다(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 독서파만권 하필여유신)"라고 했던가.

그 말은 진실이었다. 박봉의 경비원 일을 하면서는 한 푼이라도 더 벌 욕심에 투잡으론 시민기자를 병행했다. 재작년에 정년퇴직하고 올 3월부터는 공공근로를 시작했다. 처음엔 적응을 못해 무척 힘들었다. 삽질을 못해 꾸중을 듣기도 다반사였다.

잡초 따위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다가 중심을 못 잡아 같이 뒹굴기도 했다. 퇴근하면 전신이 아파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근육이완제 약은 밥처럼 매일 먹어야 했다. 그러다가'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3개월이 되자 비로소 적응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공공근로 사업장은 양묘장(養苗場)이다. 눈도 뜨지 못한 새싹을 심어 가꾼 뒤 꽃으로 만들어내는 곳이다. 튤립을 시작으로 카네이션 등 많은 꽃을 재배하여 관내에 무상으로 보급한다.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러므로 개화하여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고작 열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공공근로를 하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획득이다.

아침마다 양묘장으로 출근하노라면 먼저 새들이 반긴다. 참새와 까치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한껏 지저귀는 모습은 목가적 풍경까지 자랑하는 양묘장만의 특권이다. 밤새 성큼 자란 비닐하우스 안의 꽃과 묘목(苗木) 따위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머지않아 그동안 집필한 글이 다섯 번째 저서의 출간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출간이 성사된다면 일체유심조가 가미된 톨레랑스의 힘이 지인들에게서 축하 꽃다발의 찬사로 이어질 것이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2022050701000432400014911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국립한밭대 연구자 11명, 세계 상위 2% 과학자 선정
  2. 이번엔 대동교… 트램 공사로 15일부터 왕복 2차로 축소
  3. 대전 배추값은 낮아졌지만 속재료는 인상... 김장철 앞 부담 늘어날까
  4. 천안지역 택시 운수종사자 조합, 택시통합·행복콜 폐지 성토...'사회적 합의 우선'
  5. 청주 원도심 다시 잇는다… 공간·상권·생활에 새 활력 대혁신
  1. 대전 태평동5구역 재건축 사업 난항… 시공사 선정 문제에 조합 내부 갈등까지
  2. "부지 매입비 아끼고 주차난 푼다"…인천시, 공원 지하에 주차장 800면 조성
  3. 허태정號 기조실장 '믿을 맨' 오나 친정체제 강화
  4. 멈춰 선 충남교육공무직 순환전보… 법적 판단이 분수령
  5. 서산 온가족축제, 추억의 교복부터 맷돌커피까지, 10월 31일 '레트로 여행' 떠난다

헤드라인 뉴스


이재명 대통령 두 번째 비서실장에 홍성 출신 임광현 국세청장

이재명 대통령 두 번째 비서실장에 홍성 출신 임광현 국세청장

충남 홍성 출신인 임광현(57) 국세청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두 번째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풍부한 행정 경험과 정무 감각을 겸비한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이라며 "국회와 정부를 두루 경험한 만큼 국민 목소리를 국정에 더 크게 반영하고 당정청 협력으로 국정 성과에 속도를 낼 적임자"라고 밝혔다. 이어 "민생 회복과 사회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주문을 실천하며 국민이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브리핑에 동석한 임광현 신임 비서실장은 "1995년 공..

이혼 후 분할연금 안주려고 국민연금 반환일시금 제도 악용
이혼 후 분할연금 안주려고 국민연금 반환일시금 제도 악용

이혼한 배우자에게 국민연금을 나눠주지 않으려고 국민연금 반환일시금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해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대전 중구)이 국민연금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2년 이후 이혼한 시점에 상대 배우자로부터 분할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신청했음에도 상대 배우자가 연금 대신 반환일시금을 선택해 분할연금을 받지 못한 배우자가 22명으로 집계됐다. 이혼 당시 '분할연금 신청' 여부와 무관하게 상대 배우자가 4억 8783만원의 분할일시금을 받아가면서 22명의 국민연금 수급권이..

충남경찰,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운영한 34명 검거… 주요 가담자 13명 구속
충남경찰,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운영한 34명 검거… 주요 가담자 13명 구속

충남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가 해외 서버에서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한 34명을 검거하고 주요 가담자 13명에 대해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 수사결과, 총책 A씨(40대)는 2023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3개의 도박사이트를 개설 후 프로그램 관리, 범죄수익 관리, 콜센터 등을 운영해 회원들로부터 약 568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자금세탁책 2명과 공모해 103억 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상품권 거래로 가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회피하기 위해 핵심 조직원을 IT 전문가로 구성하고 서버 유지 관리를 직접..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

  • 기온 뚝…‘겉옷 챙기세요’ 기온 뚝…‘겉옷 챙기세요’

  • 구직자들로 북적이는 대전 일자리박람회 구직자들로 북적이는 대전 일자리박람회

  • 대덕구의회 파행에 뿔난 주민과 단식 돌입한 김찬술 구청장 대덕구의회 파행에 뿔난 주민과 단식 돌입한 김찬술 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