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짝퉁과 과이불개(過而不改)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짝퉁과 과이불개(過而不改)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2-12-09 09:5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예술의 모방설을 주장한다. 모방 본능에서 예술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술은 모방의 모방으로 본질과 거리가 있어, 진리를 대변할 수 없다. 때문에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것이 플라톤의 견해다. 미는 참되고 선한 것이지만, 예술은 참이 아니라 본 것이다. 그 경계가 있는 것인가? 있다면 어디쯤인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화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신의영역이고, 사람이 만드는 것은 창작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의미가 조금 다르지만, 과거 우리의 학습방법 중 하나에 모방이 있다. 임서(臨書), 임화(臨?) 등 보고 쓰거나 보고 그리는 것으로 수련한다. 물론 겉모습만 흉내 내는 것은 아니다. 내용의 이해, 내면 또는 감성 모방을 목표로 한다. 겉으로 들어난 것만 흉내 내기도 쉽지 않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붓을 사용하는 필법, 먹을 사용하는 묵법 등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어찌어찌하여 터득했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학습 과정이니 오히려 장한 일이다. 모작이 진품보다 예술성이 더 뛰어난 경우도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아닌가? 그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방이 짝퉁이 될 때 문제가 된다. 가짜가 진품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진품이 가짜로 푸대접 받기도 한다.

짝퉁이 왜 생길까? 거짓이 왜 만들어질까? 우리 마음에 숨어있는 허영, 과시욕 때문이다. 작가는 창작으로 보지만, 수요자는 상품으로 본다. 미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품 가치로 견준다. 작품에서 얻는 쾌감이 아니라, 소유에서 오는 쾌감을 중시한다.



자본주의 사회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부족한 우리 속성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러했던 것이 그 증거이다. 예술을 천시했던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 초기, 예술 활동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간주, 낙관도 하지 않았다. 판단이 유보된 작품을 포함, 전 아무개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그러한 것이다. 서명은 물론, 그린 장소, 제작일자, 화제 등 아무것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후세에 낙관한 후낙관도 많다. 괜스레 손을 대 위작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대놓고 위작을 만들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 현종개수실록 18권 현종8년(1667) 10월 16일 4번째 기사에 나오는 얘기다. "요즈음 작상(爵賞)이 참람되어 조정의 상전(常典)에 어긋나는 점이 있습니다. 민간에 흩어져 있는 열성(列聖)들의 어필(御筆)을 아래에서 올리면 문득 상을 내려 직을 제수하라고 명하거나 자급을 더 주라고 명합니다. 이 때문에 은상을 바라는 자들이 몹시 교활하게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완평 부수(完平副守) 홍(洪)은 고 금양위(錦陽尉) 박미(朴?)의 집에 소장되어 있던 선조(宣祖)께서 그린 대나무 병풍을 어떤 선비 집에서 빌려다 놓았다고 듣고는 속임수를 써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다음 화가를 시켜서 모사하게 하였는데, 화본(畵本)에 오래된 것처럼 색을 물들여서 비슷하게 하여 병풍에 있는 것을 바꾸어 붙여 본주인에게 돌려주고, 진적(眞跡)은 위에 올렸습니다. 감히 도둑질을 하여 작상(爵賞)의 은혜를 바랐는 바, 군부를 속인 정상이 몹시 놀랍습니다. 완평 부수 홍에게 새로 내린 가자를 도로 거두고, 잡아다가 신문하여 죄를 정하소서."

심유(沈攸) 등의 주청에 따라 왕이 홍에게 벌을 내렸다는 기사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조금만 더 깊게 음미해 보라. 위작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위조 기술도 상당 수준에 올라있었다는 대변이다. 손영옥의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에 의하면 어필이나 어화 위작이 가장 많았다고 전한다. 당시로서는 허영심 충족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리라.

이중섭, 천경자, 이우환 화백의 작품에 대한 진위 논란이 지속되고 있고, 예술계 전반에 걸쳐 짝퉁, 표절, 위작, 왜곡 등이 시비 거리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시장이 과열되다 보니 짝퉁이 판치고, 버젓이 짝퉁시장까지 형성되어있는 실정이다.

그 누가 짝퉁사회를 원하랴? 가짜를 몰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사물의 가치나 진위 판정할 수 있는 감식안이다. 감정가의 문을 연 오세창(吳世昌, 1864.7.15. ~ 1953.4.16. 서화가, 독립운동가)은 작품의 외형뿐만 아니라 작가의 창작의도, 작품 및 작가에 대한 배경 지식 등 인문학적 이해가 감식의 토대라 일러준다. 안목을 갖기 위해 엄청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둘째는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는 것이다. 얼마 전에 안초근 시인의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나는 명품이 필요 없다. 내가 명품이기 때문이다." 소유, 경제적 가치, 어쩌면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거짓이 만연하고 있다. 너나없이 중대한 과실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 위령공편 글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실뱀장어 4만2천마리 방류
  2. '병아리들의 시장 나들이'
  3. 아산시, 교통약자 '맞춤형 교통서비스' 확대
  4. '2025 아산시행복키움페스타' 성료
  5. 서울 아파트값 6년 9개월만 최대치… 지방에선 전북·세종·충북만 상승세
  1.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거점국립대 첫 여성총장… 미래인재 육성·교육 균형발전 기대
  2. 취임한달 영호남 챙긴 李대통령 충청만 박탈감
  3. 우리는 문화가족, 골든벨을 울려라
  4. 도로교통공단 TBN 대전교통방송 2025년 2분기 시청자위원회
  5. [사건사고]물놀이 50대 다이빙 후 하반신 마비호소…교통사고 70대 운전자 사망

헤드라인 뉴스


취임한달 영호남 챙긴 李대통령 충청만 박탈감

취임한달 영호남 챙긴 李대통령 충청만 박탈감

이재명 대통령 취임 한 달을 앞에 둔 가운데 집권 초 영호남을 직접 찾아 현안을 챙긴 반면, 충청권은 이같은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지역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속도전을 고리로 충청 홀대론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지역을 찾아 행정수도 완성 등 의지를 확인해 주길 바라는 여론이 크다. 이 대통령은 4일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취임 이후 지역 일정을 두 차례 소화했다. 첫 일정은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험지인 영남이었다. 지난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

장마철 시작되며 채소류 가격 꿈틀... 배추·열무·상추 인상 조짐
장마철 시작되며 채소류 가격 꿈틀... 배추·열무·상추 인상 조짐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채소류 가격이 꿈틀대고 있다. 여름 배추와 열무, 상추 등의 가격 인상 조짐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른 장마와 휴가철이 겹치며 오름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나온다. 2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수산유통정보에 따르면 26일 기준 대전 배추 한 포기 평균 소매가격은 3783원으로, 한 달 전(3148원)보다 20.17% 인상됐다. 1년 전(3599원)보다는 5.11% 오른 수준이다. 제철 채소인 대전 열무 가격은 이미 급격하게 치솟은 상황이다. 대전 열무(1kg) 소매 가격은 27일 기준 3213원으로, 한 달 전(21..

`다시 집, 다시 학교로` 학업중단 위기 청소년 품는 대전교육청 남학생가정형Wee센터
'다시 집, 다시 학교로' 학업중단 위기 청소년 품는 대전교육청 남학생가정형Wee센터

대전교육청 남학생가정형Wee센터(이하 센터·센터장 마재경)는 학업 중단 위기에 놓인 중·고등학생을 위한 기숙형 대안교육기관이다. 2010년 10월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당시 대전의 중·고등학생 학업 중단율은 1.2%로 전국 평균인 1.1%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교육 다양성 제고와 가정에서의 갈등과 폭력, 해체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고 학습권을 제공하기 위한 센터가 필요했다. 센터는 올해로 16년째 정규 학교 울타리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또 다른 학교가 돼 주고 있다. '경청과 환대'라는 운영 이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무더위 날리는 물줄기 무더위 날리는 물줄기

  • ‘장마철 타이어 점검은 필수입니다’ ‘장마철 타이어 점검은 필수입니다’

  • 국민의힘 대전시당, 해수부 부산 이전 반대 궐기대회 개최 국민의힘 대전시당, 해수부 부산 이전 반대 궐기대회 개최

  • 도심 속 접시꽃 ‘눈길’ 도심 속 접시꽃 ‘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