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62강 의비위국(義比爲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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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62강 의비위국(義比爲國)

장상현/인문학 교수

  • 승인 2023-04-25 00:00
  • 수정 2023-05-02 11:1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162강: 義比爲國(의비위국) : 개인적인 의리보다는 나라를 위해야 한다.

글 자 : 義(옳을 의), 比(견줄 비), 爲(위할 위), 國(나라 국).



출 처 : 고려사 절요(高麗史 節要) 한국의 인간상(韓國의 人間象)

비 유 :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작은 일은 버려야 함을 비유함



우리들 흔히 쓰는 말로 '왕(王/ 국가의 지도자)은 하늘이 낸다'라고 한다.

역사를 통해본 한 나라의 창업자들의 경우를 보면 가장 우선적인 과제를 '민심(民心)'에 두고 있다. 곧 민심을 얻어야 새로운 국가의 창업이 가능한 것이다.

옛 왕이 절대권이 있는 시대에도 그랬는데 민주주의가 정치의 기준이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떠하겠는가?

고려(高麗)를 창건한 왕건(王建)이 궁예(弓裔)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있을 때였다.

왕건이 궁예의 명(命)을 받아 군사를 거느리고 정주(貞州/ 현재 경기도 개풍)를 지나다가 길가 버드나무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그곳의 아름다운 부잣집 유천궁(柳天弓)의 딸을 보게 되었다. 첫눈에 반한 왕건은 빨래터로 내려가 말을 걸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예, 이 고을의 장자 유천궁의 딸이옵니다."

"나는 왕건이라는 사람이오. 지나다가 그대가 하도 어여쁘기에 인사를 청한 것이오. 이제 해도 저물었는데 그대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갈 수 없겠소?"

"그러시면 저희 집으로 가시어 아버님께 여쭈어 보시옵소서."

왕건은 처녀를 따라 유천궁의 집으로 갔다. 유천궁은 왕건을 보더니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직감하고 그날 밤으로 딸과 짝을 지어 사위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 왕건은 유씨 처녀와 하룻밤을 같이 했으나, 당시에는 궁예의 명령을 받아 후백제와 전쟁을 하는 처지라서 좀처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유씨 처녀는 왕건의 행운도 빌고, 정절(貞節)도 지킬 겸해서 중이 되었다.

몇 해가 지나 왕건이 도성(都城)으로 돌아와서 아내 유씨를 찾았으나 그녀가 정절을 지키려 중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그녀를 데려다가 혼례를 치렀다. 유씨는 남편 왕건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왕건은 시중(侍中)으로 나라의 중책을 맡고 있었음으로 언제나 우울해했다. 이유는 궁예의 성질이 날로 난폭해져 충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가친척마저도 자기 기분에 거슬리면 사정없이 죽이는 등, 그 횡포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왕후 강(康)씨가 이성을 찾으라고 충고를 했다. 궁예는 강씨가 남편인 자기를 반대하고 다른 사람을 두둔하는 것은 다른 놈과 간통했기 때문이라고 죄를 뒤집어 씌워 모진 고문 끝에 죽였다. 이에 신하들은 임금이 미쳐서 아내와 아들까지 마구 죽이는 판이니 우리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끝내는 이처럼 포악한 임금을 그대로 섬겨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일게 되니 왕건은 몹시 괴로웠다.

왕건의 나이 42세, 6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왕건이 거느리고 있던 무사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등이 왕건의 집으로 찾아왔다. 왕건은 이들이 나라의 중대사를 의논하려는 것임을 알고 아내에게는 그 비밀을 감추고자 집안 식구들에게 참외를 따오라고 내보냈다.

그러나 눈치를 챈 유씨 부인은 참외를 따러 가는 척하고 아무도 모르게 북쪽 문으로 들어가 장막 뒤에 숨어서 이야기를 엿들었다. 과연 놀라운 이야기였다.

"지금 임금께서는 정신착란으로 날이 갈수록 포악해지니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소이다. 하루 빨리 그를 쳐서 바로잡도록 합시다."

"그렇소! 그런데 우리가 나라를 구하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임금을 내세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왕 장군밖에 없습니다. 하여 이렇게 찾아왔으니 우리들의 뜻을 져버리지 마시고 왕위를 이어받아 주십시오."

여러 장군들도 그렇게 하는 것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니 될 말이오, 나는 어디까지나 궁예 임금의 신하요. 신하가 어찌 임금을 배반할 수 있겠소. 나는 그것만은 못하겠소."

그러자 신숭겸이 나서며 힘주어 말했다. "장군은 개인적인 의리만 중하고 나라는 쓸어져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오? 우리가 어질고 훌륭한 임금을 배신한다면 나쁘지만 지금의 임금이 어디 사람이라 할 수 있소이까? 장군은 아무 말 하지 마시고 우리들의 뜻을 받아 주시오. 그것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것이오."

그러나 왕건은 거듭 거절하였다. 그러자 장막 뒤에 숨어 있던 유씨 부인이 왕건 앞으로 나아가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나라를 위하여 불의를 치는 일은 예로부터 있었던 일이옵니다. 소녀가 듣자하오니 여러 장군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자인 저로서도 마땅한 일이라 생각되옵는데 하물며 장군께서는 장부의 몸으로 어찌 반대만 하십니까?"

그리고 왕건에게 갑옷을 입혀 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병(病)은 제때에 고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일도 적절한 시기에 이르렀을 때 손을 써야 합니다. 때를 놓친 다음에는 후회해도 회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리께서는 부디 여러 장군들의 뜻을 저버리지 마시옵소서."

부인의 말에 용기를 얻은 왕건은 여러 장군들과 뜻을 모아 혁명의 깃발을 들고 궁예를 몰아낸 다음 새로운 나라, 고려(高麗)를 세우고 태조가 되었다. 유씨 부인은 작위를 신혜왕후(神惠王后)로 받고, 왕건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지도자는 지도자다운 자질(資質)이 있어야 하고, 그를 보좌하는 신하는 신하의 도리(道理)가 있어야 한다. 또한 절대권력(絶對權力)의 횡포(橫暴)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도자에게 간언(諫言)하는 참다운 충신(忠臣)도 필요하고, 권력의 독주(獨走)를 막기 위한 반대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국민을 위한 바탕이 우선되어야 함은 두 말의 여지가 없다. 즉 민심을 파악하고 따르는 것이다.

이를 두고 맹자는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고 했다.

맹자 당시[戰國時代]의 상황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왕권시대에 민심이라는 대 원칙을 강조했던 것이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대단하지 않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라고 했다. 맹자의 설명은 이어진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天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諸侯)가 되며,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大夫)가 된다고 하여 역시 백성을 우선했다.

궁예(弓裔)는 민심에 역행(逆行)했고, 왕건(王建)은 민심을 읽고 따랐다. 명군(明君)과 암군(暗君)의 차이인 것이다. 지도자만이 아니고 위정자들이 꼭 알아야할 덕목이다.

선거 때만 민심(民心)을 찾는 사이비(似而非) 위정자를 민심은 반드시 구분할 것이다.

장상현/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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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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