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한국인의 근대적 욕망과 슬픈 자화상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한국인의 근대적 욕망과 슬픈 자화상

'콘크리트 유토피아'

  • 승인 2023-08-24 08:50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콘크리트
영화는 한국에 아파트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의 역사를 실제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픽션이 돼 현실로부터 온 것이고, 역사적 기원을 지닌 것임을 적시합니다. 아파트는 도시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근대화의 상황에서 거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물리적 장치일뿐 아니라 생활의 편의, 삶의 질의 향상, 나아가 거기 사는 사람의 수준까지 내포하는 기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높고, 넓고, 살기 좋고, 비싸게 팔기도 좋은 아파트에 대한 열망은 탐욕과 성공, 소외와 불평등의 상징으로 작용했습니다.

이 작품은 황궁 아파트와 관련해 세 남자의 실패를 보게 합니다. 어머니 모시기에 실패했을뿐더러 전세 사기로 남의 가정을 파탄 냈거나, 사기를 당해 처자식을 위한 행복한 집을 마련하지 못한 나머지 살인자가 되고, 남의 이름으로 남의 아들 노릇을 하며 숨어 지냈고, 우연히 얻어걸린 권력에 취해 일그러진 탐욕에 허덕였거나, 이게 다 너랑 우리(처자식, 가족)를 위한 거라고 변명하며 이기적으로 타락해 간 사내. 영탁과 세범, 민성은 결국 다 실패자이고, 영화는 그들로 하여금 비극적 죽음을 맞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실패를 통해 한국적 근대화의 이면을 보게 됩니다. 전통적 농업 사회를 지탱해 온 공동체성과 연대 의식을 잃고, 처자식을 위한다거나 가족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타자에 대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경직된 우리들의 비열한 얼굴을 봅니다.

영화는 줄곧 카메라가 높은 곳에 있어 황궁 아파트와 거기 사는 사람들을 내려다봅니다. 이는 수직적 부감숏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갇힌 왜소한 인간들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그 닫힌 공간이 열리고 다른 장소에 사는 또 다른 사람들을 보여줄 때 화면은 대단히 수평적입니다. 명화가 남편 민성을 잃고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거처로 들어서자 옆으로 완전히 넘어져 천장이 벽이 되고, 벽이 바닥이 된 집이 보입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집착과 강박, 차별과 혐오를 벗어난 환대와 우의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수직적 완고함이 무너지고, 수평적 공존과 연대의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130분여 긴 시간이지만 엄청난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의 절박한 처지와 갈등, 긴장감을 통해 영화는 내내 팽팽하고 강한 힘으로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그러나 명화와 혜원, 그리고 바깥사람들의 유대와 협력이 세 남자의 서사에 비해 개연성과 추동력이 약한 점은 유감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구도동 식품공장서 화재…통영대전고속도로 검은연기
  2. 유성복합터미널 공동운영사 막판 협상 단계…서남부터미널·금호고속 컨소시엄
  3. 11월 충청권 3000여 세대 아파트 분양 예정
  4. 대전권 대학 대다수 기숙사비 납부 '현금 일시불'만 가능…학부모 부담 커
  5. 김장 필수품, 배추와 무 가격 안정화... 대전 김장 담그기 비용 내려가나
  1. 대전교육청 교육부 시·도교육청 평가 '최우수'
  2.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전국 신청률 97.5%… 충청권 4개 시도 평균 웃돌아
  3. ‘여섯 개의 점으로 세상을 비추다’…내일은 점자의 날
  4. 대전대 박물관, 개교 45주년·박물관 개관 41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5. 최고 1436% 이자 받아챙긴 40대 대부업자 실형

헤드라인 뉴스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대전과 세종, 충북을 통합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 추진이 본격화 됐다. 4일 국토교통부와 대전시에 따르면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급행철도인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했다. 민자적격성 조사는 정부가 해당 사업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이번 통과는 CTX가 경제성과 정책성을 모두 충족했다는 의미로 정부가 민간 자본을 유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

11월 13일 수능 당일 8시 10분까지 입실해야… 모바일 신분증 `불가`
11월 13일 수능 당일 8시 10분까지 입실해야… 모바일 신분증 '불가'

13일 열리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 수험생은 8시 10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하며 반드시 수험표와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단 모바일 신분증은 인정되지 않으니 주의가 요구된다. 교육부는 4일 이 같은 내용의 수험생 유의사항을 안내했다. 교육부는 수험생들을 향해 수능 하루 전인 12일 예비소집에 반드시 참여해 수험표를 수령하고 시험 유의사항을 안내받을 것을 당부했다. 수험표에 기재된 본인의 선택과목을 확인해야 하며 시험 당일 시험장을 잘못 찾아가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위치를 파악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시험 당..

與野 대표 대전서 맞불…지방선거 앞 충청표심 잡기 사활
與野 대표 대전서 맞불…지방선거 앞 충청표심 잡기 사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약 7개월 앞두고 여야 지도부가 잇따라 대전을 찾아 충청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4일 한남대에서 특강을 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5일 대전시청에서 예산정책협의회를 주재하는 등 충청권에서 여야 대표가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거대 양당 대표의 이같은 행보는 내년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금강벨트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전략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5일 대전시청에서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를 열고 내년도 국비 확보 현황과 주요 현안을 점검한다. 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 전국 최고의 이용기술인은? 전국 최고의 이용기술인은?

  • 빨갛게 물들어가는 가을 빨갛게 물들어가는 가을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