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엄격한 윤리적 잣대와 문화의 빈곤에 대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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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엄격한 윤리적 잣대와 문화의 빈곤에 대한 경계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4-01-29 10:11
  • 신문게재 2024-01-30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일제 강점기의 문학, 그 가운데 시를 읽고 이해하다 보면 늘상 걸리는 문제가 있다. 시속에 쓰인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이 구절은 또한 어떠한가라고 말이다. 이는 혹시나 항일이나 친일과 같은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런 현상들은 문학이 갖고 있는 함축적 의미, 곧 숨겨져 있는 의미가 항상 존재하기에 생겨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은폐된 의미를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때 일어난다. 그리하여 어떤 시인은 하나의 단어나 구절 때문에 갑자기 친일 작가의 오명을 쓰게 되고, 또 다른 시인은 저항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전자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수'를 쓴 유치환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이상화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분류나 구분 짓는 행위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문학에서는 '~~파' 등이 많은 것이라든가, 사회에서 흔히 규정되는 '~~파' 등이 그러하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편가름이나 진영 논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구분들이 얼마나 허망한가는 숫자를 통해서 대번에 확인된다. 5000만이 넘는 국민을 어떻게 좌우로 나눌 수 있으며, 또한 이분법적인 진영 논리의 감옥에 가둘 수 있는 것인가. 이들 사이에 내재하는 사유의 미묘한 간극이나 접점들은 쉽게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가.

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은 쉽게 묻고 단정하는 것이 있다. 친일파의 문제다. 가령, "서정주는 친일작가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와 같은 질문을 수시로 받게 된다. 곤란한 것은 여기에 곧바로 답을 주기도 어렵거니와 질문자는 대개 이런 답을 원하는 듯싶다. "그 사람은 그릇된 길을 걸었으니 아주 훌륭하지 못한 작가"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또한 단순한 이분법의 논리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흔히 회자되는 진영 논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하나의 기준으로 정확히 나누는 일은 가능하지가 않은 까닭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문인들이 친일의 유혹이나 압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그 시기가 심했던 것은 1930년대 말과 40년대 초였다. 이때는 내선일체가 강요되던 시기였기에 더욱 그러했는데, 이 힘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고,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생활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환경적 요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제는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준비할 정도로 날로 강성해지고 있었다. 이런 위세 앞에 민족의 정체성이랄까 민족의 독립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노천명은 '유명하다는 것'이라는 시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문인들을 이용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적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만약 무명의 존재였다면 자신은 결코 친일의 덫에 걸리지 않았다는 항변일 것이다. 이 시기에 누구나 심훈이나 이육사와 같은 저항 시인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기준으로 해서 그 반대편에 있었던 시인들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1940년대 전후는 '조선적인 것'의 징후나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시기이다. 그와 동시에 조선의 독립도 거의 불가능하게 비춰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 조선의 언어나 풍속, 문화에 대한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붙잡아낼 수 있다면, 그는 독립운동의 큰 차원은 아니더라도 약소하나마 소소한 차원은 된다고 보아야 한다.

강요에 의한 행동과 자발적인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후자에 이루어진 친일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너무 엄격한 윤리적 잣대는 시인을, 한나라의 문화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게 된다. 일찍이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라고 자신의 조상을 거칠게 비하한 바 있다. '종'이라는 신분 계급을 만든 것은 조선이었다. '종'의 신분으로 살아온 자가 국가에 대한 부채 의식이 과연 있었을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개인에게 지나친 충성심, 곧 국가적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그저 또 다른 강요일 뿐이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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