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성큼 다가온 백세시대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성큼 다가온 백세시대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4-04-15 14:49
  • 신문게재 2024-04-16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삶이 팍팍하다고 아우성친다. 자기 욕망의 기준을 타인의 잣대에 맞추려고 하니 힘들다. 주변에서 믿고 본받을만한 어른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각자도생이다. 나이로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에 들어가도 귀가 순해지기는커녕 쓴소리에 자꾸 닫힌다. 세월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나답게 사는 길을 찾고 싶어 서점을 찾았다.

나이 듦에 좋은 책 한 권은 괜찮은 친구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를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원서로 읽어보고 싶었다. 세월의 풍상을 이기고 여전히 깊은 울림을 던지는 고전이다. 막상 책을 펼치니 글자가 작아 보기 힘들었다. 유튜브로 검색하니 'The old man and The sea'를 하루 한 장씩 해석하는 채널이 있었다. TV로 연결해 큰 활자로 날마다 보니 59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유튜브가 가진 반복 학습의 장점을 살려 공부하니 생소한 용어가 나와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외딴집에서 홀로 사는 노인은 조각배로 낚시를 나간다. 84일 동안 한 마리 물고기도 잡지 못해 재수 없다고 놀림당한다. 다음날 처음 40일 동안 함께 했던 소년이 구해준 미끼를 갖고 혼자 바다로 떠난다. 먼바다에서 태양이 뜨거울 때 그토록 바라던 물고기가 미끼를 문다. 청새치임을 직감한다. 밤낮으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마침내 물 위로 올라온 그를 작살로 잡는 데 성공한다. 배 옆에 물고기를 묶은 채 돌아오는 길에 피 냄새를 맡고 나타난 여러 상어 떼와 처절히 싸운다. 끝내 살점이 다 뜯어먹힌 채 뼈만 매달고 돌아온다는 단순한 줄거리다. 불확실한 앞날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고통과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최선을 다한 후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 고독 속에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감이 건져졌다.

노인이 됨은 무슨 의미일까. 생물학적인 노화는 인간에게 짊어진 숙명과 같아도 나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마다 달랐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나이 들어서 물러나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두고 후배들 앞길 막는다고 숙덕거렸다. 물러날 때를 모르고 자리에 연연하는 이를 노욕으로 물든 철부지라고 여기기도 했다. 지금은 나이 듦에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해도 당연하다고 여긴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서서히 무너졌다.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이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뛴다. 고희(古稀)는 두보의 시 「곡강」의 한 구절인 '인생칠십고래희'에서 나왔다. 일흔까지 산 사람이 퍽 드물었던 시대였다. 지난날 다녔던 회사를 돌이켜보면 정년퇴직하고 10년쯤 지나면 돌아가셨다는 선배들의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상갓집에 가면 70대에 돌아가셔도 호상으로 불렀다. 지금은 부고장을 봐도 여든 후반이거나 아흔이 넘는다. 호상이라는 말조차 잘 하지 않는다.

이제 일흔은 젊은 노년에 지나지 않는다. 회갑 잔치를 건너뛰더니 칠순 잔치는 옛날 말이고 팔순 잔치도 조용히 치른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잣대로 일률적으로 나이를 규정지어 개인의 능력을 한정할 수가 없다. 팔십을 산수(算壽) 구십을 졸수(卒壽)라고 부르는 호칭은 아흔이 넘어도 활기차게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아 시대의 변화와 어긋난다. 사람마다 인생경로가 다르듯 노화 과정도 제각각이다.

백세시대, 축복도 비극도 아닌 세상의 변화일 뿐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젊어질 수는 없겠지만 노화의 속도와 질은 생활 습관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많이 달려있다. 최근 의학계도 노화를 질병이라는 관점에서 항(抗)노화에 이어 역(逆)노화의 문을 여는 연구성과를 제시하고 있다. 건강한 백세인이 먼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노인과 바다의 한 구절이 가슴에 쏙 안겼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사람은 시간에 의해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고 나대로 해석을 해본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백세시대다. 끈기, 용기, 초연함, 연대감으로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김태열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한기대 'AI 활용 고용서비스 업무 효율화 경연대회' 성료
  2. 나사렛대, '찾아가는 건강검진' 봉사 실시
  3. 한기대-베트남 FPT 대학교, 국제교류 업무협약 체결
  4. 한기대 온라인평생교육원 STEP '가상훈련의 날' 성황
  5. "아이들 많은 주거권에 345㎸ 고압선 납득 안돼" 대전 노은동 주민들 반발
  1. 신협연구소, '2026년 신협연구소 특별세미나' 개최
  2. 백석대 강기정 교수, 천안YWCA 제14대 회장 취임
  3. 목원대, 24시간 단편 만화 제작 해커톤 ‘툰-나잇’ 행사 개최
  4. 국민의힘 대전시당 "민주당 공천 뇌물 쌍특검 수용하라"
  5. 건양대 물리치료학과, 재학생 ‘임상 실무’ 집중 교육

헤드라인 뉴스


통합 명칭·청사는 어떻게?… ‘주도권 갈등’ 막을 해법 시급

통합 명칭·청사는 어떻게?… ‘주도권 갈등’ 막을 해법 시급

광주·전남이 행정통합 추진 과정에서 청사 위치와 명칭 등 예민한 주도권 갈등을 벌이는 것을 반면교사 삼아 대전과 충남도 관련 해법 모색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과거 광주와 전남, 대구와 경북 등이 행정통합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고개를 숙인 건 통합 청사 위치와 명칭으로 시작되는 주도권 갈등 때문이었다.광주와 전남은 1995년부터 세 차례나 통합을 추진했지만, 통합 청사 위치와 명칭 등의 갈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된다. 22일 더불어민주당 광주·전남 행정통합 추진 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열린 시도 조..

충남대 중부권 초광역 협력 시동… 2026 라이즈 정책포럼 개최
충남대 중부권 초광역 협력 시동… 2026 라이즈 정책포럼 개최

정부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에 발맞춰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의 중부권 초광역 협력과 지역대 발전 논의를 위한 지·산·학·연 정책포럼이 충남대에서 열린다. 충남대는 1월 26일 오후 2시 학내 융합교육혁신센터 컨벤션홀에서 '2026년 중부권 초광역 RISE 포럼-중부권 초광역 협력과 대한민국의 미래'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포럼은 충남대 주최, 충남대 RISE사업단이 주관하고 대전RISE센터와 중도일보 후원으로 진행된다. 김정겸 충남대 총장을 비롯해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성아 대전시 정무경제과학부시..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6·3 지방선거 앞두고 합당할까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6·3 지방선거 앞두고 합당할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합당할지 주목된다. 정청래 대표가 전격적으로 합당을 제안했지만, 조국 대표는 혁신당의 역할과 과제를 이유로 국민과 당원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여 실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정청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조국혁신당에 제안한다. 우리와 합치자. 합당을 위해 조속히 실무 테이블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혁신당 창당 당시 '따로 또 같이'를 말했다. 22대 총선은 따로 치렀고 21대 대선을 같이 치렀다"며 "우리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

  • 강추위 녹이는 모닥불 강추위 녹이는 모닥불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자 입후보설명회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자 입후보설명회

  • ‘동파를 막아라’ ‘동파를 막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