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대전 찬가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대전 찬가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4-04-22 11:02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대전의 역사는 멀리 삼국 시대부터 시작된다. 백제의 우술군에 속했거니와 신라와의 경계를 만들기 위해서 계족산성이 축성되었다. 이후 역사는 오래 흘러갔지만 근대 이후까지 대전이 특별히 주목받은 적은 없었다.

이렇게 미미한 존재로 남아있던 대전이 역사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근대 이후의 일일 것이다. 특히 경부철도가 개통되고 그 역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비로소 대전은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경부 철도는 일제에 의해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위한 교두보로 설계되었다. 1901년 기공식을 한 경부철도는 순차적으로 노선과 역사(驛舍) 등이 건설되면서 1905년 정식 개통되기에 이르른다. 경부선의 출발은 서울역이었지만 실질적인 출발역할을 한 것은 부산역이었다. 한반도와 대륙침략을 수단으로, 곧 제국주의 일본의 필요성에 의한 수단으로 부설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경부선이 개통되었을 때 대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개통 직후의 사진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때의 상황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는 남아 있다. 바로 육당 최남선이 쓴 '경부철도노래'가 그러하다. 이 창가집(唱歌集)이 출간된 것은 1908년(신문관)이다. 그러니까 철도가 개통된 이후 5년 뒤의 일이다. '경부철도노래'는 일본인 오오와다 타케끼(大和田建樹)의 '만한철도가(滿韓鐵道歌)'를 모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칭은 비슷했지만, 그 동기나 결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만한철도가'는 조선과 중국 동북부 지역의 지리를 알리고자 한, 세계지리의 차원으로 기획되었는데, 이는 곧 일본의 대륙침략을 돕기 위한 방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경부철도노래'는 우리 국토에 대한 이해와 이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서울을 가려면 많은 시일이 걸리던 것이 하루면 가능했으니 그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숨겨진 국토의 곳곳을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에서 창작되었다..



'경부철도노래'는 7.5조로 된 시가로 철도가 지나가는 곳이나 인근의 명승고적(名勝古蹟)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전의 모습도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마미 신탄 지나서/태전(太田)에 이르니/목포 가는 곧은 길 예가 시초라/오십오 척 돌미륵 은진에 있어/지나가는 행인의 눈을 놀래요"(29장). 대전과 인근 논산이 소개된 것이 이채롭거니와 마땅히 소개할 역사 지리가 부족했던 탓인지 대전은 단 2줄로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였던 최남선의 눈에 비친 대전의 모습은 비교적 정확한 것이었다. "목포 가는 곧은 길 예가 시초", 곧 교통의 중심점으로 대전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철도가 완공된 것이 1914년이다. 그리고 그 기점과 종착역은 대전과 목포이다. 서울과 목포가 아닌 것이다. 최남선은 "목포 가는 곧은 길"이라 했으니 철길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이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철길과 육로길 모두 대전은 목포로 가는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대전은 목포와 부산으로 가는 길의 분기점에 놓여 있었고, 그 상징성을 갖는 도시였다. 그리고 이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대전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는 대륙으로 가는 국제열차가 일주일에 두 번 정차하기도 했다. 국내 지리와 세계 지리의 한 축을 대전은 온전히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통의 결절점으로 출발한 대전은 인구대비 가장 많은 대학이 있는 도시이고, 또 과학 두뇌가 많이 운집한 연구 단지를 두고 있다. 정부 3청사의 고급 공무원이 다른 어떤 도시보다 많거니와 깨어있는 시민 또한 넘쳐난다. 이는 대전이 비판적 지성의 요람이 된다는 뜻이 된다. "어디 사느냐"고 할 때, "대전에 산다"고 하면 "엘리트 도시에서 사는군요"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에 미묘한 흥분이 느껴지거니와 대전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교통은 흐름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엘리트 집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대전은 지리공간이 개방되어 있고, 지식공간 또한 열려있게 된다. 분열이나 갈등은 흐름이나 소통에 의해 초월될 수 있다. 따라서 시대를 이끄는 힘의 중심점이 대전이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국제열차가 다시 출발해야 할 곳, 강산(江山)을 이끌어 갈 빛이 어리는 곳, 이곳이 바로 대전이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온기 페스티벌" 양산시, 동부 이어 서부 양산서 13일 축제 개최
  2. 천안 불당중 폭탄 설치 신고에 '화들짝'
  3. 의정부시 특별교통수단 기본요금, 2026년부터 1700원으로 조정
  4. 대전방산기업 7개사, '2025 방산혁신기업 100'선정
  5.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1. "신규 직원 적응 돕는다" 대덕구, MBTI 활용 소통·민원 교육
  2. 중도일보, 목요언론인상 대상 특별상 2년연속 수상
  3. 대전시, 통합건강증진사업 성과공유회 개최
  4. [오늘과내일] 대전의 RISE, 우리 지역의 브랜드를 어떻게 바꿀까?
  5. 대전 대덕구, 와동25통경로당 신축 개소

헤드라인 뉴스


중앙통제에 가동시간 제한까지… 학교 냉난방 가동체계 제각각

중앙통제에 가동시간 제한까지… 학교 냉난방 가동체계 제각각

대전 학교 절반 이상이 냉난방기 가동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에 따라 학생과 교사의 수업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면서 충분한 냉난방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대전교사노조가 8일 발표한 학교 냉난방기 운영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대전 109개 학교(병설유치원 포함 초등학교 74개 학교·특수학교 포함 중고등학교 35개 학교) 중 여름과 겨울 냉난방기 운영을 완전 자율로 가동하는 학교는 각각 43·31개 학교에 그쳐 절반 이상이 자유로운 냉난방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의 냉난방 가동 시스템은 학교장이 학..

이장우 "충청, 3대 광역축으로…" 대전충남 통합 청사진 제시
이장우 "충청, 3대 광역축으로…" 대전충남 통합 청사진 제시

이장우 대전시장은 8일 '3대 광역축 기반 충청권 통합 발전 구상'과 '도시 인프라 기반시설 통합 시너지', '연구·의료 산업 확대'등 대전·충남 통합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시장은 이날 주재한 주간업무회의에서 "수도권 1극 체제는 지방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며"대전·충남 통합 등의 광역권 단위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국가 전체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천안에서 충남도민들과 타운홀 미팅을 갖고 "저는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남·대전을 모범적으로..

KTX와 SRT 내년말까지 통합된다
KTX와 SRT 내년말까지 통합된다

고속철도인 KTX와 SRT가 단계적으로 내년 말까지 통합된다. 이와함께 KTX와 SRT 운영사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에스알(SR)도 통합이 추진된다. 먼저 내년 3월부터는 서울역에 SRT를, 수서역에 KTX를 투입하는 KTX·SRT 교차 운행을 시작한다. 하반기부터는 KTX와 SRT를 구분하지 않고 열차를 연결해 운행하며 통합 편성·운영에 나선다. 계획대로 통합이 되면 코레일과 SR은 2013년 12월 분리된 이후 약 13년 만이다. 국토교통부는 한국철도공사과 SR 노사,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한 간담회와 각계 전문가 의견을 폭넓..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알록달록 뜨개옷 입은 가로수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