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묘령(妙齡)의 여인이 펼치는 아름다운 묘기

  • 오피니언
  • 여론광장

[문화 톡] 묘령(妙齡)의 여인이 펼치는 아름다운 묘기

김용복/평론가

  • 승인 2024-05-29 13:4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묘령(妙齡)의 여인'이라는 표현이 제격일 것 같았다. '수수께끼 같은 여인'이나 '묘한 여인'이라는 말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이 아리따운 지적인 여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운동하는 뒷모습을 보면 18세 남짓의 청소년 같았다. 그런데 말소리는 소녀였다. 마스크를 벗은 모습에서는 여고생의 청순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묘령'이라는 단어는 스무 살 안팎의 여자 나이를 일컫는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청순한 이 여인에게 잘 어울리는 단어가 '묘령'이었던 것이다.

만약 총각네들이 이 여인의 지고지순한 모습을 보았더라면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 여인은 말없이 웃는 모습으로 그 고백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조용했고 말 대신 웃음으로 대해 주었다.

잔소리가 길면 글을 읽지 않는 법. 잔소리 때려치우고 본론으로 돌아가자.



필자가 사는 갈마아파트는 1단지, 2단지, 3단지로 나뉘어 있는데 단지마다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으며, 주민들의 운동기구가 갖춰져 있다.

필자는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3단지에 갖춰진 '우마장 어린이 놀이터'를 경유해 갈마도서관엘 간다. 이곳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나서 모닝커피를 나누며 어제 있었던 일이나, 정국 돌아가는 걱정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말이다.

우마장 놀이터에 새벽 일찍 와서 운동을 하는 여인이 있는데 바로 이 여인이 오늘 관심의 주인공인 것이다. 추운 겨울에는 모자 달린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했기에 性구별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빠른 몸동작으로 볼 때 소년인지 싶었다. 손잡이를 잡고 발을 놀리기도 하고 때론 손잡이를 놓고 발만으로 빠른 걷기 동작을 하기도 하였다. 마치 기능 경진 대회나 묘기 대행진에 나온 선수들처럼.

불안했다. 저러다 넘어지면 상처를 크게 입을 것만 같았다.

다가가 말을 건네였다. 그런데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만 했다. 말없는 여인.

대부분의 총각들은 이런 여인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려고 하며 이런 여인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치려 드는 것이다.

보자, 청마 유치환의 생명을 잃은 뒤에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게 된 것을.

청마 유치환은 그가 사랑하는 이영도 시인을 얻기 위해 '행복'이라는 시를 써서 고백했다.

행복-청마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렇게 간절히 고백을 했는데도 정운 이영도 여사는 유교적 관습을 탈피할 수 없어 받아들이지 않다가 3년이 넘어서 1967년 청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그가 보냈던 연서 중 200여통을 추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시집을 내며 청마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한다. 그리고 청마의 사망에 대한 추모의 정을 '탑3'이라는 짧은 시로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탑 3-정운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나는 여기 섰는데…/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돌아선 하늘과 땅/애모는 사리에 맺혀/푸른 돌로 굳어라'

갈마아파트 주민들이여!

매일 새벽마다 307동 옆에 있는 이곳 갈마어린이 공원인 우마장에 와 보시라.

묘령의 여인이 모자달린 점퍼를 입고 말없이 재능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운동이기에 앞서 묘기인 것이다. 아름다운 묘기.

김용복/평론가

김용복
김용복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내방] 구연희 세종시교육청 부교육감
  2.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6년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 공모 접수 시작
  3.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4. 재난위기가정 새출발… 희망브리지 전남 고흥에 첫 '세이프티하우스' 완공
  5. 수능 앞 간절한 기도
  1. [한 장, 두 장 그리고 성장] 책을 읽으며 사람을 잇고 미래를 열다
  2. 고물가에 대전권 대학 학식 가격도 인상 움직임…학생 식비부담 커질라
  3. 대전 2026학년도 수능 응시자 1만 6131명… 교육청 "수험생 유의사항 필독해야"
  4.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5. 충남 청년농 전용 '임대형 스마트팜' 첫 오픈… "돈 되는 농업·농촌으로 구조 바꿀 것"

헤드라인 뉴스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에서도 태평양전쟁을 겪은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80년이 지났고, 전쟁의 참상과 평화를 교육할 수 있는 수단은 이제 전쟁유적뿐이죠. 그래서 보문산 지하호가 일본군 총사령부의 것이었는지 규명하는 게 중요합니다."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후쿠오카 시즈야(48) 서울지국장은 5일 대전 중구 보문산에 있는 동굴형 수족관 대전아쿠아리움을 찾아왔다. 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로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앞두고 용산에 있던 일본군 총사령부를 대전에 있는 공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하호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올해 고1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시행 첫 학기를 경험한 응답자 중 10명 중 8명 이상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학생들은 진로 탐색보다 대학입시 유불리를 기준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종로학원은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고1 학생과 학부모 47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5%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6일 밝혔다. 반면 '만족한다'는 응답은 4.3%, '매우 만족한다'는..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이 개장 한 달여 만에 누적 방문객 22만 명을 돌파하며 지역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갑천생태호수공원은 9월 말 임시 개장 이후 하루 평균 7000명, 주말에는 최대 2만 명까지 방문하는 추세다. 전체 방문객 중 약 70%가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으로, 주말 나들이, 산책과 사진 촬영, 야간경관 감상의 목적으로 공원을 찾았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에는 10일간 12만 명이 방문해 주차장 만차와 진입로 혼잡이 이어졌으며, 연휴 마지막 날에는 1km 이상 차량 정체가 발생할 정도로 시민들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 ‘야생동물 주의해 주세요’ ‘야생동물 주의해 주세요’

  • 모습 드러낸 대전 ‘힐링쉼터 시민애뜰’ 모습 드러낸 대전 ‘힐링쉼터 시민애뜰’

  •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돌아온 산불조심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