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콩깍지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콩깍지

천안신방중학교 이병식 교사

  • 승인 2024-06-07 12:54
  • 신문게재 2024-06-07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천안신방중 교사 이병식
이병식 교사
학생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아침 출근길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아마도 이웃 학교 학생들인 것 같다. 어떤 학생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데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멋지고 신나 보여서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어떤 학생은 친구들과 등교하면서 깔깔깔 웃는데 웃는 모습이 얼마나 즐거워 보이던지 지켜보는 내가 다 웃음이 나온다. 또 어떤 학생은 간식을 먹으며 등교하는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배부르다.

내가 근무하는 신방중학교에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호 대기 중인 차에 앉아서 횡단보도에 서 있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오늘 파란색 옷을 입고 왔구나! 참 잘 어울리네', '오늘 기운이 넘치네!',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나? 표정이 조금 어둡네?', '오늘도 함께 등교 하는구나. 참 보기 좋다'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온통 가득 찬다.

차를 주차하고 학교 건물로 들어서면 학생들이 인사를 건넨다. 방긋 웃으면서 인사하는 학생, 들릴 듯 말 듯 수줍게 인사하는 학생, 친근하고 유쾌하게 인사하는 학생, 고개를 꾸벅 숙이며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학생. 학생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이 긍정적인 에너지와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찬다. 쑥스러워서 먼저 인사하지 않거나, 나를 못 보고 지나쳤거나, 그냥 인사를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내가 먼저 인사한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 수줍게 인사를 받아주고, 선생님을 미처 보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듯 인사하기도 하고 아니면 선생님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먼저 인사하니 머쓱한 듯 인사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모든 학생들의 인사하는 모습 또한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이 외에도 점심을 먹으러 뛰어가는 학생들의 모습도 예쁘고, 선생님에게 사탕을 달라며 조르는 모습도 예쁘고, 잘못을 해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는 모습 또한 예쁘다.

그런데 학생들이 마냥 예쁘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 학교에서 맡은 업무가 학생부장인지라 비행으로 지도가 필요한 학생이거나 학교폭력과 관련돼 조사를 받으러 온 학생을 만나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학생부 교무실에 와서 내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마냥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 내 앞에 앉아서 자신이 한 행동과 잘못에 대해서 얘기하는 학생들을 보면 어쩔 때는 한숨이 나오고 무척 속상하다. 아주 가끔은 학생이 한 행동과 잘못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이 상기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적도 있다. 이런 학생과 마주할 일이 생기면 높은 확률로 보호자님과 전화 통화를 하거나 학교로 모셔서 얘기를 나눠야 하는데 보호자님이 나에게 모질고 거친 말을 할 때에는 정말 너무 마음이 힘들고 학생이 한 말이 아닌데도 그 학생마저 얼굴을 마주보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런 학생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조금 다르게 예뻐 보인다. '잘못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조금만 내가 더 도와주고 신경 써주면 훌륭한 학생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그럴 것 같단 말이지', '학교와 가정에서 사랑을 충분히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학생이야', '반성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마음 자체가 나쁜 학생은 아니라니까'.

언제부터 왜 내가 학생들을 이렇게 예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나도 잘 모르겠다. 처음에 신방중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할 때부터 학교폭력업무를 맡고 몇 년 동안은 괴롭고 힘들고 화도 많이 나고 학교에 출근하기가 싫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학생들이 너무 밉고 싫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학생들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가득 찼다. 나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은 너무 힘드니까 이 업무를 그만하라고 조언해 주신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 조언을 새겨듣지만 나의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 선생님으로서 이 업무를 하며 학생들을 예쁘게 바라봐 주고 싶고 이 각도에서 예뻐 보이지 않는 학생들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다른 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학생들 스스로에게도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인지 알려주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우리 학생들"이라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 붙었고 "우리 학생들"에게 콩깍지가 씌었다./천안신방중학교 이병식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천 연수구, 지역 대표 얼굴 ‘홍보대사 6인’ 위촉
  2. 행정수도와 거리 먼 '세종경찰' 현주소...산적한 과제 확인
  3. 대전 방공호와 금수탈 현장 일제전쟁유적 첫 보고…"반전평화에 기여할 장소"
  4. 호수돈총동문회, 김종태 호수돈 이사장에게 명예동문 위촉패 수여
  5. [경찰의날] 대전 뇌파분석 1호 수사관 김성욱 경장 "과학수사 발전 밑거름될 것"
  1. 초등생 살해 교사 명재완 무기징역 "비인간적 범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2.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3. "일본에서 전쟁 기억은 사람에서 유적으로, 한국은 어떤가요?"
  4. KAIST 대학원생 2명중 1명 "수입 부족 경험" 노동환경 실태조사
  5.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헤드라인 뉴스


조종사 부족으로 7년째 야간비행 못한 산불진화헬기 `논란`

조종사 부족으로 7년째 야간비행 못한 산불진화헬기 '논란'

산림청이 약 1220억 원을 투입해 도입한 대형 산불진화헬기 'S-64'가 야간 비행 자격을 갖춘 조종사 부족으로 도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야간 산불 진화에 투입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민 세금으로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마련한 '최첨단 헬기'가 7년째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사실상 낮 시간대 운항에만 머물러 있는 셈이어서 관리 부실 논란이 제기된다.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경북 고령·성주·칠곡)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진..

"편의점도 줄어든다"... 인건비 부담에 하락으로 전환
"편의점도 줄어든다"... 인건비 부담에 하락으로 전환

편리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편의점 수가 대전에서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됐다. 어려운 경기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늘던 편의점 수가 줄어든 것은, 과포화 시장 구조와 24시간 운영되는 시스템상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며 폐점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20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8월 현재 대전의 편의점 수는 1463곳으로, 1년 전(1470곳)보다 7곳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1년 새 7곳이 감소한 건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매년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줄곧 늘던 편의점이 감소로 돌아서며 하락 국면을 맞는..

`세종시 문화관광재단 대표` 선임 논란… 국감서 3라운드
'세종시 문화관광재단 대표' 선임 논란… 국감서 3라운드

직원 3명의 징계 처분으로 이어진 세종시 '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선임 논란이 2025 국정감사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2월 임명 초기 시의회와 1라운드 논쟁을 겪은 뒤, 올해 2월 감사원의 징계 처분 상황으로 2라운드를 맞이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서울 구로 을) 국회의원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세종시청 대회의실에서 시작된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공교롭게도 첫 질의의 화살이 박영국 대표이사 선임과 최민호 시장의 책임론으로 불거졌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2월 12일 이에 대한 감사 결과 보고서를 공..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