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핸드폰, 호모 픽토르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핸드폰, 호모 픽토르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승인 2024-09-10 17:26
  • 신문게재 2024-09-11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백향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요즘에는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 놓기 어려울 정도로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외출할 때에는 핸드폰을 놓고 나가지 않는지 꼭 확인하고, 가까운 곳에 잠깐 나가는 경우에도 핸드폰을 꼭 쥐고 나가게 된다. 점점 핸드폰에 매어 살게 되는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하다. 아마도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기능들을 하나로 모아 놓아서 혹시 잃어버리면 난감함이 너무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휴대용 전화기 정도였는데 여러 가지 기능을 하나 하나 모아 들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 물건 하나로 수십 가지가 넘는 일을 하는 것같다. 전화번호나 일정을 메모하던 수첩은 물론이고, 따로 사용하던 계산기, 녹음기, MP3 플레이어를 대신하더니 컴퓨터, TV, 캠코더, 사진기가 그 속으로 들어갔고, 급기야 은행 통장도 그 속으로 들어가서 돈을 주고 받는 일도 작은 기계로 다 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앱이 나오면서 만보계, 나침반, 내비게이션, 지도, 전화번호부, 다양한 언어사전도 다 들어가 있고, 택시도 부르고 심지어 대리운전도 이 물건으로 호출한다. 아이들 어린 시절 추억을 담아 두려고 캠코더를 사서 테입을 넣고 영상을 찍던 시절이 불과 이십 여년 전 일이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도록을 출판하려면 DSRL 카메라에 슬라이드 필름을 넣고 조명을 조절하면서 그림을 하나 하나 찍던 시절도 불과 이십여년 전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이 이전의 DSRL 카메라 만큼이나 선명하고 찍히는 화각도 넓고 화질도 좋다. 더구나 필름도 필요없어서 많은 사진을 찍어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되니 부담도 없다. 그리고 싶은 풍경을 보면 과거에는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다 간단한 스케치를 해두곤 했는데 이제는 손쉽게 핸드폰으로 여러 장을 찍어 두고 그림 그릴 때 참고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핸드폰이 이제는 일종의 파트너가 된 셈이다.



그런데 카메라가 처음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리지 않아도 똑같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니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이제는 필요없게 된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실질적인 타격도 있었다고 한다. 사진을 의미하는 영어의 photograph는 빛을 의미하는 phos와 그리다는 뜻의 graphos의 합성어로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붓으로 그리든 빛으로 그리든 대상을 똑같이 그려 내는 능력이 출중하면 그것이 더 선호받을 것이므로 똑같이 재현해 내는 능력이 출중한 사진을 그림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진기가 발명된 1831년 이후 프랑스의 역사화가인 '폴 들라로슈 (Paul Delaroche)'는 지금 이 순간부터 회화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라고 비관했다. 실제로 초상화를 전문으로 하는 세밀 화가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어서 사진이 등장한 이후 약 10년 사이에 수백 명의 화가가 직업을 바꿔야 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화가들은 역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유용한 수단으로 사진을 이용해서 모델이 오랜 시간을 앉아 있지 않아도 되도록 했고, 무희들을 주로 그린 드가같은 화가는 순간의 동작을 포착한 사진을 활용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활용했다고 한다.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공생의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길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러한 기술적 활용보다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속성이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앝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면 인간은 자신이 본 것을 그려 내려는 본능이 있는 것같다. 한스 요나스는 '그림 그리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호모 픽토르(Homo Pictor)' 라는 말로 인간의 특성을 정의했다. 인간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단순한 기술적 행위나 예술의 한 형태로만 보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속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치 호모 루덴스나 호모 사피엔스 등과 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특성으로서 그리는 행위가 인간의 고유한 본능의 하나라고 본 것이다. 오늘날 사진은 사진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고유의 영역에서 훌륭한 예술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같기도 하다. 사진기가 출현하면서 어느 화가들은 직업을 잃고, 어느 화가들은 파트너로 삼아 활용했던 것처럼 핸드폰도 매여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파트너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래는 적극적인 사람들의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명이 벗고 달린 새해 첫 날! 2026선양 맨몸마라톤
  2. [세상보기]가슴 수술 후 수술 부위 통증이 지속된다면
  3. 대전 동구, 겨울철 가족 나들이 명소 '어린이 눈썰매장' 개장
  4. 코레일, 동해선 KTX-이음 개통 첫 날 이용객 2000명 넘어
  5. [독자칼럼]대전·충남 통합, 중부권 미래를 다시 설계할 시간
  1. 이장우 대전시장 "불퇴전진으로 대한민국 신 중심도시 충청 완성하겠다"
  2. 충청 출신 與野대표 지방선거 운명의 맞대결
  3. 2026 병오년, 제9회 지방선거의 해… 금강벨트 대격전
  4. 충남교육청, 2026 충남 온돌봄 운영 길라잡이 발간
  5.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6년 1월 2일 금요일

헤드라인 뉴스


아동인구 감소 현실의 벽… 세종 국공립 어린이집 취소 `파장`

아동인구 감소 현실의 벽… 세종 국공립 어린이집 취소 '파장'

아동 인구 감소로 보육시설 운영난 가중과 폐업이 속출하는 가운데, 세종시 국공립 어린이집 개원이 취소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정원 수용률이 지역 최하위 수준인 산울동 복합커뮤니티센터 내 2027년 개원 예정이었으나, 시가 지난 6월 주민 의견 수렴 과정 없이 개원 최소 결정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종시는 "인근 지역 보육수요까지 감안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산울동 주민들은 "현실을 외면한 행정"이라며 원안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는 이달 보육정책위원회에 안건을 재상정..

[현장] 응급실 시계에 새해는 없다네…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뿐
[현장] 응급실 시계에 새해는 없다네…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뿐

"응급실 시계에 새해가 어디 있겠습니까.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 뿐이죠." 묵은해를 넘기고 새해맞이의 경계에선 2025년 12월 31일 오후 11시 대전권역 응급의료센터가 운영되는 충남대병원 응급실. 8살 아이의 기도에 호흡 유지를 위한 삽관 처치가 분주하게 이뤄졌다. 몸을 바르르 떠는 경련이 멈추지 않아 산소포화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호흡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처치에 분주히 움직이는 류현식 응급의학 전문의가 커튼 너머 보이고 소아전담 전문의가 아이의 상태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여러 간호사가 협력해 필요한..

"할아버지는 무죄에요" 대전 골령골에 울린 외침…학암 이관술 고유제 열려
"할아버지는 무죄에요" 대전 골령골에 울린 외침…학암 이관술 고유제 열려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6·25전쟁 발발 직후 불법적인 처형으로 목숨을 잃은 학암 이관술(1902-1950) 선생이 1946년 선고받은 무기징역형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의 외손녀 손옥희(65)씨와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2025년 12월 31일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터에서 고유제를 열고 선고문을 읊은 뒤 고인의 혼과 넋을 달랬다. 이날 고유제에서 외손녀 손옥희 씨는 "과거의 역사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역사를 근간으로 하는 단체와 개개인의 노력 덕분에 사건 발생 79년 만에 '이관술은 무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새해 몸만들기 관심 급증 새해 몸만들기 관심 급증

  • 병오년 이색 도전…선양 맨몸마라톤 이색 참가자 병오년 이색 도전…선양 맨몸마라톤 이색 참가자

  • 맨몸으로 2026년 첫 날을 힘차게 ‘출발’ 맨몸으로 2026년 첫 날을 힘차게 ‘출발’

  • ‘붉은 말의 기운 받아 2026년도 힘차게 나아갑시다’ ‘붉은 말의 기운 받아 2026년도 힘차게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