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건축설계는 인문학, 건축시공은 과학적 신뢰, 유지관리는 경제학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건축설계는 인문학, 건축시공은 과학적 신뢰, 유지관리는 경제학

김규용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교수

  • 승인 2025-07-28 09:38
  • 신문게재 2025-07-28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김규용
김규용 교수
나의 건축학개론-건축설계는 인문학, 건축시공은 과학적 신뢰, 유지관리는 경제학이다.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마치 삶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성찰처럼 다가온다. 오랜 시간 건축 교육과 실무, 연구를 거쳐오며 내린 결론은 이 한 문장에 담긴다. "건축설계는 인문학, 건축시공법은 과학적 신뢰, 유지관리는 경제학이다." 건축을 건축으로 만 알아 왔던 필자의 한계에서 이제 좀 철이 들어 뒤늦게 깨달은 나의 건축학개론이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이는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사람이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작업이며, 인간의 감각, 심리, 문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의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 건축의 전 생애주기를 관통하는 본질적 원리이자, 가장 중요한 철학적 요소는 "인간 중심성"이며, 건축은 기술 이전에 "인간학"이다.

풍수지리는 고대의 인문학적 공간 해석 도구였고, 현대 건축기술은 과학과 데이터로 새로운 공간 생성 도구가 되었다. 두 접근 모두 "인간이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공통된 인문학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풍수와 현대 건축기술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대화의 장이며, 기술과 철학이 함께 발전해야 할 통합적 건축문화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건축은 인간 존재와 환경 사이의 관계를 공간으로 해석하고 구현하는 행위이다." 단순한 공간 구성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맥락을 해석하여 공간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좋은 건축설계는 그 시대의 정신을 담고, 그 지역의 풍토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반영한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이해의 태도'이며, 인문학적 사유의 결과다. 건축설계는 필연적으로 인문학적 기반이 되어야 하며, 삶의 공간은 기능을 넘어 삶의 이야기와 기억을 품는다.

다음으로, 건축시공법은 과학적 신뢰다. 설계가 이상이라면, 시공은 그것을 실현하는 생산과정이다. 수많은 재료, 구조, 공법이 정밀한 과학적 검토를 바탕으로 조합되며, 수치와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 모든 과학의 기반에는 '신뢰'가 있다. 도면의 해석, 공정의 순서, 품질의 확인은 사람과 기술 사이의 신뢰가 없으면 무너진다. 과학은 정확성을, 신뢰는 지속성을 보장한다.

건축은 공공의 삶에 대한 '윤리적 약속'이다. 이미 기원전 18세기경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법전(Hammurabi Code)에서 건축적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건축가가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무너져 주인이 죽었다면, 그 건축가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와 같이 인명피해에 대한 엄정한 조항이외에도 물적 손해에 대한 금전적 배상의무 등의 조항으로 규정하였다. "건축은 공공성과 생명을 지키는 일"로서 건축가의 기술력뿐 아니라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제도화한 인류 최초의 '건축윤리적 선언'이다. 오늘날에도 건축가와 기술자가 지녀야 할 '전문성과 윤리성의 균형'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끝으로, "건축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흐르는 자산으로서 유지관리의 경제학적 의미를 지닌다." 건축물의 완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건축물은 단지 소비재가 아닌, '시간이 축적되는 자본재'이며 건축의 '유지관리'는 경제학적 관리 대상으로서 자산가치의 생명연장 전략이 필요하다.

유지관리의 효율성, 에너지 성능, 수선주기와 비용 최적화는 건축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특히 고령화, 탄소중립, 재정 위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마주한 오늘날, 건축유지관리는 단순한 기술행위가 아닌 경제학적 전략이다. 건물을 오래도록 가치 있게 사용하는 일은 자산관리의 영역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다. 즉, 건축의 자산가치는 "삶과 경제가 흐르는 그릇"인 것이다.

건축은 예술과 과학, 인간과 기술, 감성과 논리를 아우르는 총체적 행위이다. 이 세 가지 관점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자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나의 건축학개론은 건축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자, 우리가 건축을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되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도시와 건축의 공간에서 삶의 가치와 인문학적 품격, 사회적 신뢰, 풍요로운 자산가치를 영위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김규용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중도초대석] 임정주 충남경찰청장 "상호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으로 작은 변화부터 이끌 것"
  2. "내년 대전 부동산 시장 지역 양극화 심화될 듯"
  3. [풍경소리] 토의를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는 아름다운 사회
  4. 대전·세종·충남 11월 수출 두 자릿수 증가세… 국내수출 7000억불 달성 견인할까
  5. SM F&C 김윤선 대표, 초록우산 산타원정대 후원 참여
  1. 코레일, 철도노조 파업 대비 비상수송체계 돌입
  2. 대전 신세계, 누적 매출 1조원 돌파... 중부권 백화점 역사 새로 쓴다
  3. 대전 학교급식 공동구매 친환경 기준 후퇴 논란
  4. LH, 미분양 주택 매입 실적…대전·울산·강원 '0건'
  5. 대전 한우리·산호·개나리, 수정타운아파트 등 통합 재건축 준비 본격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18개 기업과 투자협약… 6개 시군에 공장 신·증설

충남도, 18개 기업과 투자협약… 6개 시군에 공장 신·증설

국내외 기업 투자 유치를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인 충남도가 이번엔 18개 기업으로부터 4355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끌어냈다. 김태흠 지사는 23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김석필 천안시장권한대행 등 6개 시군 단체장 또는 부단체장, 박윤수 제이디테크 대표이사 등 18개 기업 대표 등과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18개 기업은 2030년까지 6개 시군 산업단지 등 28만 9360㎡의 부지에 총 4355억 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신증설하거나 이전한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기계부품 업체인 이화다이케스팅은 350억 원을 투자해 평택에서..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백마강을 휘감아 도는 물길 위로 백제대교가 놓여 있다. 그 아래, 수북정과 자온대가 강변을 내려다본다. 자온대는 머리만 살짝 내민 바위 형상이 마치 엿보는 듯하다 하여 '규암(窺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 바위 아래 자리 잡은 규암나루는 조선 후기부터 전라도와 서울을 잇는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강경장, 홍산장, 은산장 등 인근 장터의 물자들이 규암 나루를 통해 서울까지 올라갔고, 나루터 주변에는 수많은 상점과 상인들이 오고 가는 번화가였다. 그러나 1968년 백제대교가 개통하며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생활권이 부여읍으로 바..

이춘희 전 세종시장,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시사
이춘희 전 세종시장,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시사

이춘희 전 세종시장이 23일 시청 기자실을 찾아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경 보람동 시청 2층 기자실을 방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공식화했다. 당 안팎에선 출마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이 전 시장 스스로도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 내 시장 경선 구도는 이 전 시장을 비롯한 '고준일 전 시의회의장 vs 김수현 더민주혁신회의 세종 대표 vs 조상호 전 경제부시장 vs 홍순식 충남대 국제학부 겸임부교수'까지 다각화되고 있다. 그는 이날 "출마 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