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1992년 설날, ‘홍명’과 ‘중앙’으로 쏟아져 나온 대전의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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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1992년 설날, ‘홍명’과 ‘중앙’으로 쏟아져 나온 대전의 청춘들

홍콩 액션과 할리우드 대작, 극장가를 장악하다
한국 영화, 외화 속에서도 빛난 자존심
명절 극장가, 고교생들에게 특별한 설렘 선사
대전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 해소의 중심지

  • 승인 2026-02-16 08:08
  • 수정 2026-02-16 08:57
  • 금상진 기자금상진 기자
92년 영화포스터
1992년 설날 연휴를 맞아 중도일보에 실린 대전시내 극장 포스터 광고(중도일보DB)
1992년 2월 4일 설날, 대전 원도심의 극장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OTT도, 멀티플렉스도 없던 시절, 명절 연휴 극장은 시민들에게 최고의 오락이자 문화를 향유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당시 본보(중도일보)에 실린 빼곡한 극장 광고는 그때의 열기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 홍콩 액션과 할리우드 대작의 격돌

광고의 중심에는 당시 극장가의 '흥행 보증수표'였던 홍콩 영화와 할리우드 액션물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홍콩연자(香港燕子)'는 당시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대변하며 중장년층과 청년층을 동시에 공략했다.

할리우드 액션물의 위세도 대단했다. 돌프 룬드그렌 주연의 다크 엔젤과 전쟁 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햄버거 힐은 스릴과 긴장감을 원하는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당시 햄버거 힐은 단순한 전쟁 액션을 넘어 전쟁의 허무함을 밀도 있게 그려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 한국 영화의 자존심과 대전 극장가의 상징들

외화의 공세 속에서도 한국 영화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우리들의 사랑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와 같은 멜로 영화는 명절 분위기에 맞춰 연인 관객들을 불러모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광고 하단에 명시된 극장들의 이름이다. 홍명, 중앙, 동양, 제일, 명보, 대전, 아카데미 등 이름만 들어도 대전 시민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상징적 장소들이다. 당시 대전의 '명동'이었던 은행동과 대흥동 일대를 지키던 이 극장들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관객을 유혹했다. 지금은 사라진 '홍명상가' 내의 극장들과 대전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던 극장들의 모습은 대전 현대사의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 명절 극장가, '고교생 관람가'의 설렘

광고 곳곳에 붙은 '설날 특선 프로', '고교생 이상 관람가'라는 문구는 당시 학생들에게 설날이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였음을 보여준다. 세뱃돈을 주머니에 넣고 친구들과 함께 극장 앞에 줄을 서던 풍경은 그 시절 대전의 가장 활기찬 모습이었다.

당시 극장 요금은 조조와 대학생 할인을 적용해 2500원~3000원 선. 지금의 영화표 가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신문지에 인쇄된 거친 포스터 한 장에 가슴 설레며 영화를 기다리던 마음만은 지금보다 훨씬 뜨거웠을 것이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종이 신문 속 흑백 광고는 이제 빛바랜 추억이 되었지만, 그 속에 담긴 대전 시민들의 환희와 낭만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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