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7장-용말강변의 아기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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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7장-용말강변의 아기 장수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3-2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흑석동의 지명에 얽힌 아기장수 설화는 비범한 능력을 타고난 아이가 가문의 화를 두려워한 부모에게 죽임을 당하고, 뒤늦게 나타난 용마마저 슬피 울다 죽었다는 비극적인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지리산 우투리 전설과 맥을 같이하며, 승리나 부활로 끝나는 외국 신화와 달리 비범함을 수용하지 못하는 척박한 현실과 힘없는 민중의 한을 처참한 좌절로 그려낸 것이 특징입니다. 결국 이 설화는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면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영웅을 지켜내지 못한 시대적 비애와 민중의 안타까운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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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서구 흑석동 갑천 줄기에는 '용말강변'과 '말구렁'이라는 독특한 지명이 있습니다. 그 이름 아래에는 서글프고도 잔혹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지요.

옛날 흑석동 마을에 한 농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냥도 하고 약초도 캐면서 어렵지 않게 지냈지만, 자식이 없는 것이 한이었지요. 아내가 지성으로 기도를 드린 덕에 마침내 귀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삼 년 만에 장정 못지않은 기운을 내보일 만큼 비범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재워놓고 밭에 다녀 온 아내가 방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세 살배기가 시렁 위에 올라앉아 파리 떼를 천장으로 몰아넣으며 군사 훈련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지요. 남편 역시 시루의 콩나물들을 일렬로 세워 행진시키고 다시 제 발로 시루 속에 들어가게 하는 아이의 신통력을 목격하고는 경악하게 됩니다. 평범한 부모에게 비범한 자식은 축복이 아닌 공포였습니다. 신통력을 발휘하는 아이가 자라 역적이 되면 온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부모는 그만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잠든 아이를 무거운 다듬잇돌로 눌러 숨을 거두게 한 것이지요. 아이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 순간, 갑천 물속에서 주인 잃은 흰 용마(龍馬) 한 마리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용마는 주인을 찾아 울부짖다 바위언덕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용마가 솟아난 강변을 '용말강변', 용마가 죽어 넘어진 바위언덕을 '말구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날개 돋친 아기장수가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뒤늦게 나타난 용마가 슬피 울다 죽는다는 아기장수 설화의 전형적인 서사를 보여줍니다. 전국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지는데, 지리산의 우투리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예이지요.

대전시 서구 흑석동-용말강변-서구 블로그
대전시 서구 흑석동 용말강변 모습/출처=대전시 서구 블로그
지리산의 가난한 부부에게 태어난 우투리 역시 날개를 지닌 비범한 영웅이었습니다. 임금의 박해를 피해 산 속 깊숙이 숨어 콩 갑옷을 만들며 때를 기다렸으나, 어머니가 몰래 먹은 콩 한 알의 빈자리 때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게 되지요. 그는 죽으면서 3년 동안 무덤의 비밀을 지켜달라고 유언했지만, 임금의 고문에 못 이긴 어머니의 실토로 부활까지 딱 하루가 모자란 날 무덤이 열리고 맙니다. 바위 속에서 부활을 꿈꾸던 병사들과 우투리는 바람을 맞고 녹아 없어졌고, 주인을 태울 용마 또한 용소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아기장수 설화가 내포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대한 공포는 세계 다른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는 자식이 자신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태어나는 아이들을 차례로 삼켜버립니다. 하지만 막내 제우스만은 살아남아 새로운 올림포스의 시대를 열었지요. 중국 신화의 나타 역시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 부모와 갈등을 겪다가 스스로 뼈와 살을 깎아 죽음을 택하는데, 이후 연꽃의 형상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제우스나 나타가 결국 승리하거나 부활하여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과 달리, 한국의 아기장수는 대부분 처참한 좌절로 끝을 맺습니다. 비범함을 품어낼 수 없었던 척박한 현실의 한계, 그리고 힘 없는 민중들의 한이 이야기에 담겨진 것이겠죠. 공동체는 대개 평범함 속에서 안정을 유지하려 하기에 기존체제를 뒤흔드는 비범함은 때로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아기장수를 제 손으로 죽인 부모의 선택은, 비범함을 키워낼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의 비애를 보여줍니다. 또한 영웅이 죽은 뒤에 나타난 용마는, 민중의 열망이 아직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함을 상징하며 비극을 더욱 안타깝게 하지요.

아기장수 설화가 전국 곳곳에서 전해진다는 것은, 이 땅에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영웅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겠지요. 비범함을 품은 아이와 이를 지켜줄 힘이 없는 부모의 서글픈 비애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낯선 비범함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질서를 바라는 희망 사이의 딜레마. 사회와 가족, 어쩌면 매 순간 자신의 가능성을 마주하는 우리 내면에게도 일어나고 있을 이 갈등을 우리는 어떻게 마무리 지어가야 할까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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