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말하기를 “노인께서 천리를 멀리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利] 할 바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왕은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찌하면 내 나라[吾國]를 이롭게 할까 말씀하시면, 대부는 어찌하면 내 집[吾家]을 이롭게 할까 말하며, 사(士)와 서민(庶民)들은 어찌하면 내 몸[吾身]을 이롭게 할까 해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利를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萬乘)의 나라[천자]에 그 인군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승(千乘)의 집[제후]일 것이요 천승의 나라에 그 인군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승(百乘)의 집일 것이니, 만승이 천승을 취하며 천승이 백승을 취함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義를 뒤로 하고 利를 먼저 내세운다면 그 인군을 시해하고 다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자한데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 있지 않으며, 의로운데 그 인군을 뒤로 하는 자 있지 않습니다. 왕은 역시 인의를 말씀하실 따름이니 하필 利를 말씀하십니까?” 맹자는 양혜왕의 말 중에 利라는 한 글자를 끄집어서, 윗사람은 그저 인의를 말해야지 절대로 利를 말해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놓은 것이다.
맹자의 이 한마디 말은 후세의 학자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다. 대개 맹자가 말한 인의(仁義)는 천리(天理)로서 공(公)을 말하고, 이(利)는 인욕(人慾)으로써 사(私)를 말한다. 義를 따르면 너와 나 모두가 利롭지만, 利만 집착하면 결국 자신을 해치고 세상을 해치는 꼴이 된다. 의와 이를 상반적으로 본 것이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도 이 구절에 이를 때마다 잠시 책을 덮지 않을 수 없었다 할 만큼, 진실로 利는 난()의 시초가 된다 할 것이다.
그런데 利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그런 것이지 본래는 좋은 뜻이다. 하늘이 만물을 생함도 결국 利다. 사람 사는 사회도 利를 추구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 주역은 건괘(乾卦)를 원(元)형(亨)이(利)정(貞)이라 했는데, 모두가 利를 표현한 것이다. 봄에 만물이 소생하니 즉 利를 시작하는 것이요, 여름에 만물이 형통하니 利를 기르는 것이요, 가을에 성숙하고 수확하니 利를 이루는 것이요, 겨울에 만물이 땅속으로 들어가니 利를 지키는 것이다.
인간의 생활 역시 모두 利를 추구하는 데에서 비롯되므로 주역에서 利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 묘하다. 利 때문에 사람은 生하고 利 때문에 사람은 망하게 되는데, 자신만을 위해서 이를 추구하면 결국 불리하게 되고, 세상과 함께 利를 추구하면 결국 이롭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세상이 모두 이로울 수 있는 길을 공자는 의(義)를 제시했다.
공자는 건괘(乾卦)의 利자를 義로써 설명하였는데, 義를 기초삼아서 利를 좇아야 만이 모두가 이로울 수 있다는 은근한 가르침을 편 것이다. 그렇다면 義는 무슨 뜻인가? '마땅할 의(宜)'자와 같다.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義의 단서라 했다. 내가 잘못했으면 부끄러워[羞]할 줄 알고 남이 잘못했으면 미워[惡]할 줄 아는 마음, 자신만이 아니라 남도 마땅하게 대할 줄 아는 마음이 의로운 마음이라는 것이다. 각각 분수에 맞게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상대를 대할 때 그런 사람을 의로운 사람이라 하고 사회가 의로움으로 충만할 때 그런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 하니, 진실로 義는 아름다운 사회를 이룰 수 있는 덕목이요 관문(關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글을 쓰다 보면 간간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온통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 속에서,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도 義는 아예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이해에 얽매어 좌지우지하는 세태 속에서, 이 같은 글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세인들은 냉소하지 않을는지…. 가끔은 의심이 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이응국 주역학자·원광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