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부모를 섬기는 도리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있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冬溫夏 ]' '저녁에 이부자리를 깔아 드리고 새벽이 되면 안부를 살피는 것[昏定晨省]'은 기본이었다. 부모 봉양엔 반드시 온화한 기색을 두고 몸가짐을 단정히 했고, 마치 옥을 잡은 듯 가득 담긴 물그릇을 받들 듯 조심조심 살피며 부모를 섬겼다. 부모님이 부르시면 대답을 지체하지 않았고, 일을 하다가도 중단하고 대답했으며, 밥이 입에 있어도 즉시 토하고 달려갔다. 음식은 아깝지만 효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늙으신 부모님이 계시면 '출필곡(出必告) 반필면(反必面)'은 물론이고, 외출해도 방소를 바꾸지 않았다. 혹시나 걱정하실까봐서이다. 부모님이 병중에 계시면 자식된 도리로 근심스런 얼굴빛을 하고 다녔으니 이것이 효자의 부모에 대한 소략적인 예절이다.
효도에 관해서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일화가 가장 많다. 증자가 언젠가 한 마을을 들어가려는데 마을 이름이 마침 승모리(勝母里)였다. '어미를 이기는 뜻'이라 하니 효자인 증자가 그 마을에 들어갔겠는가? 이름을 미워해서 들어가지 않았음은 당연하다.『공자가어』에 '증자가 참외밭을 매다가 실수해서 뿌리를 캐어 버렸다. 아버지가 노해서 큰 막대기로 마구 때리니 증자가 잠시 졸도했다가 깨어났다. 그러나 증자는 흔연히 일어나서 “아까 제가 죄를 지었는데 아버님께서 너무 힘들여 가르침을 주셨으니 혹 병이 나지 않으실는지요?” 하면서 방에 들어가 거문고를 탔다.
아버지를 생각해서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증자가 임종시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내 발과 손을 펴보라! 전전긍긍(戰戰兢兢)해서 깊은 못가에 이르듯[如臨深淵] 얇은 얼음 위를 걷듯[如履薄氷] 몸조심했는데 이제야 내 걱정을 면하게 되었구나!”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해서는 안됨을 죽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에게 훈계한 것이다. 천지신명과 부모의 은덕으로 이 몸이 태어났으니 은덕을 잊는 것도 불효요 주색잡기로 내 몸을 병들게 하는 것도 불효다. 내 몸을 천하게 해서 남에게 욕을 당하는 것도 불효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옛 사람들은 효도를 항상 가슴 속에 지니고 살아갔건만, 지금 사람들은 과거 사람들의 행실에 반이라도 따라갈까? 지난 8일에는 필자도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고 선물도 받았다. 집 사람도 친정집에 가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표하려 애쓰는 눈치였다. 그날따라 거리에는 차량도 붐볐다. 아마도 부모를 모시고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하려는 차량들이겠지 싶었다. 교통 혼잡 속에서도 조금은 흐뭇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의심이 갔다.
혹 식사 한 끼 대접으로 일 년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함은 아닐는지…. 자하가 효를 물었을 때 공자가 “부모의 안색을 잘 살피는 것이 어려우니[色難], 그저 술이나 밥으로 부형에게 드리는 것만을 효라 할 수 있겠느냐?” 하시고, 자유가 묻는 효에도 “개나 말도 제 부모를 봉양[能養]할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犬馬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하셨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나 저 사람들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대하고 있을는지…. /주역학자·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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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국 주역학자·원광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