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눈] 나의 왼손과 그 누구의 동성애

  • 오피니언
  • 미디어의 눈

[미디어의 눈] 나의 왼손과 그 누구의 동성애

  • 승인 2015-08-19 16:15
  • 신문게재 2015-08-21 19면
  • 우난순 지방·교열부장우난순 지방·교열부장
▲ 우난순 지방·교열부장
▲ 우난순 지방·교열부장
“어? 쟤 째비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공기놀이 할 때마다 들은 얘기였다. '째비'는 왼손잡이를 비하하는 말이다. 지금이야 왼손을 쓰는 게 전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좌·우뇌 골고루 발달시킨다해서 권장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왼손을 사용하는 건 올바르지 못한 행위였다. 남들과 다른 건 불경스럽고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왼손을 쓰면 훨씬 수월한데도 친구들의 놀림에 오른손으로 공깃돌을 집어보지만 영 서툴러서 매번 지곤 했다. 어린 나이에 나는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상처였다.

왼손잡이는 동성에 논란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다. 동성애에 대한 억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뿌리가 깊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와 양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제우스, 헤라클레스와 같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은 동성애자였다. 허나 교회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행위는 죄악으로 간주됐다. 종교적 믿음에서 기원된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자세는 오랫동안 서구사회의 사고를 지배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시대 세종의 며느리, 곧 문종의 부인인 세자빈 봉씨는 동성애로 물의를 일으켜 궁궐에서 쫓겨났다는 기록이 있다. 여종 소쌍을 강제로 옷을 벗기고 눕게 하여 희롱했다는 죄목이다.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은 잠재적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학창시절 기억을 더듬어보면 친구들간의 우정을 넘어선 각별한 애정은 그런 예를 증명하지 않나 싶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도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 자신의 작품에서 동성애자로서 겪는 사회적·인간적 갈등과 고립감을 내비쳤다. 이렇듯 동성애는 혐오의 대상이자 드러내선 안되는 금기의 언어였다. '정상적 결혼'이라는 제도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성소수자들.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자신의 성적 성향을 온전히 받아들였겠는가. 남과 다르다는 이유는 타인으로부터 거부의 대상이 되는게 인간 본성이다. 냉대와 조소 속에서도 성소수자의 지난한 싸움은 끈질겼다. 동성애 성향이 선천적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지만 그들에 대한 오해와 차별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6월 미 연방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은 하나의 혁명이다. 아직도 인종차별이 만연한 나라에서 이번의 진보적인 판결은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사실 동성애를 인정하는 여론이 높아진 계기는 유명인사의 '커밍 아웃'이 한몫했다.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을 비롯해 CNN 앵커 앤더슨 쿠퍼, 유명 정치인 등이 동성애자임을 선언했다. 팀 쿡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이는 신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말해 대중의 환호를 받았다. 한국사회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반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거기엔 15년전 커밍아웃한 홍석천의 공이 컸다. 그러나 2012년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표'를 의식해 동성애 문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수개신교의 반동성애 의지는 훨씬 견고하다. 서울시민인권현장 제정이 무산된 과정에서도 그들의 직접적인 로비와 항의가 작용했다.

대전시기독교대책위도 지난 11일 대전시의회로부터 동성애 관련 성평등조례 사항을 삭제하기로 약속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권선택 시장은 성평등 조례 제정과 관련해 기독교계의 반발이 커지자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도 의식의 확장으로 폐기되고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적인 혐오는 '이웃 사랑'과 배치된다. 검은 눈 검은 머리, 파란 눈 금발 머리, 검은 피부가 있듯이 다름의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성숙한 인간의 요구조건 아닐까. 기독교인들이 섬기는 신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라고 했잖나.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 동성애냐 이성애냐. 타고난 것을 억누르는 사회통념은 비과학적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제천서 실종된 40대 남성… 여전히 행방묘연
  2. 서산을 비롯한 서해안 '물폭탄'… 서산 420㎜ 기록적 폭우
  3. 이장우 "3대하천 준설 덕에…더는 물난리로 불편 없도록"
  4.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재선출'
  5. 세종시 북부권 중심으로 비 피해...광암교 붕괴
  1. 천안교육지원청, 호우 특보 관련 비상대책회의 개최
  2. "위험경고 없었다" 금산 수난사고 주장 엇갈려
  3. 19일까지 충청권에 180㎜ 더 퍼붓는다…침수 피해 '주의'
  4. 새솔유치원, '북적북적 BOOK 페스티벌'로 독서 문화 선도
  5. [문예공론] 점심 사냥

헤드라인 뉴스


폭우 오후 다시 온다…19일 새벽까지 시간당 50㎜

폭우 오후 다시 온다…19일 새벽까지 시간당 50㎜

충남권 전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발효중인 가운데, 밤사이 강수가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우려했던 추가 침수 피해는 가까스로 피해갔다. 그러나 서해상에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구름대가 점차 접근하는 중으로 오늘(18) 오후부터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비가 예상돼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태다. 18일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우려했던 강수는 밤사이 소강상태를 보이며 지역에 간헐적으로 비를 뿌렸다. 17일 오후 9시부터 18일 오전 8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서천 춘장대 30㎜, 연무 16㎜, 태안 14.5㎜, 부여 10.9㎜, 대전 정림 9..

제10회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 18일부터 나흘간 개최
제10회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 18일부터 나흘간 개최

올해로 10회를 맞은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KITS:Korea International Tourism Show)가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 7홀에서 열린다.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KITS조직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전시산업원이 주관하는 이번 박람회는 국내외 관광업계 정보 제공의 장과 관광객 유치 도모를 위한 비즈니스의 장을 마련해 상호 교류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KITS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역별 특색을 살린 여행 콘텐츠와 국제 관광도시 및 국가 홍보, 국내외 관광 콘텐츠 간 네트워..

[이슈현장] 꿀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 속 대전양봉 위태
[이슈현장] 꿀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 속 대전양봉 위태

우리에게 달콤한 꿀을 선사해주는 꿀벌은 작지만 든든한 농사꾼이기도 하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수박, 참외, 딸기 역시 꿀벌들의 노동 덕분에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공급의 약 90%를 담당하는 100대 주요 농산물 중 71종은 꿀벌의 수분 작용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꿀벌응애'라는 외래종 진드기 등장에 따른 꿀벌 집단 폐사가 잦아지면서다. 전국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들이밀듯 '꿀벌 살리자'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대전 지역 양봉..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위험한 하굣길 위험한 하굣길

  • 폭우에 대전 유등천 교량 통제 폭우에 대전 유등천 교량 통제

  • 민생회복 소비쿠폰 접수창구 준비 민생회복 소비쿠폰 접수창구 준비

  • 밤사이 내린 폭우에 충남지역 피해 속출 밤사이 내린 폭우에 충남지역 피해 속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