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산골소년서 한국패션의 꽃으로…정훈종 디자이너

금산 산골소년서 한국패션의 꽃으로…정훈종 디자이너

대전서 의상실 개업 40년 외길, 강렬한 모티브 원피스 주로 제작 꾸준히 사랑해주신 분들 많아 대전 패션 '붐업' 더욱 공 들입니다

  • 승인 2015-11-17 14:01
  • 신문게재 2015-11-18 11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중도초대석]정훈종 패션스토리 대표 디자이너

“너는 어찌 그리, 늘 조용한 각시 같으냐?”

말없이 조용하고, 예쁘장하고 내성적인 꼬마를 보며 동네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다.

금산 산골 부잣집 12남매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아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성격에 자신의 이름보다도 누구의 동생으로 더 많이 불리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작은 형님 결혼식 날 신부가 입었던 웨딩드레스! 태어나 처음으로 본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충격'그 자체였다. 순백의 아름다움에 아이는 '천사의 날개'를 떠올렸고, '어떻게 저런 하얀색 옷이 있을 수 있을까' 감탄하다 어렴풋이 옷을 만들고 싶다는 동경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 뒤 40여년 세월을 한땀 한땀 일궈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한 명으로 우뚝 섰다.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정상급 패션디자이너인 정훈종(61·사진) 패션스토리 대표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금산 산골 소년이 디자이너로 우뚝=1954년생 정 대표는 한국의 1.5세대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환갑을 지난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표현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작품 발표도 활발해서 지난달 20일에는 아시아 최대 패션문화마켓을 지향하는 '패션코드 2016 S/S(Fashion KODE 2016 S/S)의 개막식 무대에서 이상봉 디자이너와 함께 메인 패션쇼를 진행했다. 2008년 한산모시옷 패션쇼에서도 남다른 스타일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정훈종'디자이너의 옷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대전시 서구 둔산3동에 '정훈종 패션스토리' 본사를 두고 있고, 25년 전부터 전국 백화점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은 물론 전주와 부산, 광주, 대구 등에 10여개의 매장을 갖고 있으며 지난달 21일에는 유성구 도룡동 골프존 조이마루에 '패션스토리 정훈종 갤러리'의 문을 열었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패션의 원동력=정 대표는 어린 시절 집안의 막내로 자라면서 마음에 쌓인 외로움의 정서가 패션의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12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 중 6남매만 살아남았다. 큰 형님과는 23살 차이, 올해 84살의 큰 형님이 낳은 큰 조카가 정 대표보다 한 살 어리다.

감성적이었던 유년시절, 하지만 어머님이 해주시던 “되로 배웠어도 말로 풀어쓰는 사람이 있고, 말로 배웠어도 되로 풀어쓰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만은 늘 가슴에 새겼다는 정 대표는 작게 시작했지만 열심히 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으면서 디자이너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다졌다.

자식공부에 유난히 욕심이 많으셨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결혼한 그 이듬해에 돌아가셨다. 정 대표는 “막내가 성공하는 모습을 못 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안타까워 했다.

▲ 정훈종 패션스토리(fashion story JUNG HUN JONG)의 작품
▲ 정훈종 패션스토리(fashion story JUNG HUN JONG)의 작품
▲국제복장학원에서 시작한 꿈=정 대표가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곳은 한국 최초의 양재학원인 '국제복장학원'에서였다. 대전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서울로 올라간 정 대표는 국제복장학원에서 한국현대패션의 선구자인 최경자 여사를 만나 2년간 지도받았다. 그 뒤 대전시내에서 의상실을 개업, 1년반 정도 운영하다 29살의 나이에 군에 입대했다. 기성복 문화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당시 의상실은 호황을 이뤘다.

정 대표는 군 제대 후 서울 명동에서 다시 의상실을 열었다. 그 때도 '정훈종'이라는 이름을 간판으로 내걸고 시작했지만 고향과도 같은 대전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내려왔다. “대전에서 성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 뒤 결혼을 하고 마흔 되던 해에 의상실을 접고 3년간 쉬게 된다. 당시 의상실이 잘 되고 있었지만 “전문적인 디자이너로서의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탈리아를 오가며 공부를 했다”며 “요즘으로 말하면 단기유학을 다녀온 셈”이라고 했다.

당시 백화점 영업을 하려고 하니 이력서가 필요했던 점도 한 이유가 됐다. 디자이너가 옷만 잘 만들면 되지 왜 이력서가 필요하나 싶었지만 이력서에 한줄을 더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력서에는 어느 학교에서 어떤 공부를 했느냐, 어디로 유학을 다녀왔느냐가 중요하다고 하기에, 솔직히 스펙을 쌓으려 했다는 정 대표는 당시에 대해 “해외 나가서 공부한들 별다른 것은 없다. 아이디어는 내 머릿속에, 내 마음 속에 있다”는 말로 스펙 위주의 사회에 일침을 놓았다.

▲남다른 개성으로 자신만의 색깔 찾아=정 대표의 작품에는 겉옷으로 많이 입는 '재킷'이 없다. 남과 차별화된 옷을 만들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남들 다 만드는 재킷은 만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원피스를 위주로, 꽃과 같은 강렬한 모티브를 활용해서 틈새를 공략했다. 천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고급소재를 사용했다.

검정 색상을 주로 하는 가운데 원색의 꽃무늬를 곁들인 강렬한 작품들은 '정훈종' 마니아 층을 만들어냈고,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도 공격경영을 통해 판로를 넓혀왔다. 계절마다 변화를 주는 가운데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면서도 시대의 흐름 역시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꽃을 모티브로 하는 공통점은 유지하면서도 철마다 꽃의 형태와 색상, 모양이 바뀐다.

“40년 가까이 패션 외길을 걸었지만 지금도 패션에는 답이 없다”는 정 대표를 보며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의 치열함을 엿볼 수 있었다.

▲ 정훈종 대표
▲ 정훈종 대표

▲대전이라는 핸디캡을 넘어=정 대표의 패션세계를 아끼는 이들은 정 대표가 본사를 두고 있는 '대전'이라는 지역성의 한계를 많이 아쉬워한다. 서울에서 활약했더라면 더욱 인정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위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정 대표는 “지역에서 디자이너로서 살기가 힘들긴 하다”는 말과 함께 농담반 진담반의 웃음을 보였다. “젊은 시절, 서울 명동에서 대전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대전에서 성공하고 싶었다”는 정 대표는 “아무래도 서울에 비해 모든 정보나 소식이 느릴 수밖에 없었지만 고향을 지키며 일하다보니 정훈종 패션을 꾸준히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과 함께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큼 지역 주민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역민과 함께 하고 싶은 정 대표의 마음은, 지난달 열린 자선음악회에서도 빛났다. '패션스토리 정훈종 갤러리' 개관을 기념해 미혼모자 후원 모임인 나무새(회장 정소연)와 함께 자선음악회를 진행한 자리에서 정 대표는 자신이 디자인한 고가의 수십여장 스카프를 나무새에 기증하고, 판매 수익금을 미혼모자 돕기 성금으로 후원했다.

▲2015 DFC 대전패션컬렉션 대표 디자이너로 참가='이제 패션은 대전이다.' 정훈종 대표는 지난 5일 대전ICC호텔에서 열린 2015 DFC 대전패션컬렉션에 대표디자이너로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대전시가 주관하고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주최한 이번 행사의 디자이너로서 충남대, 한남대, 대전대, 배재대, 대전보건대 의류학과, 의상학과 학생들과 함께 패션쇼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정 대표는 “올해로 네번째인 이번 대전패션컬렉션은 '이제 패션은 대전이다'라는 주제로 우리 지역 대학들이 함께 손을 잡고, 대전패션 붐업(Boom-up)을 위한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고, 시민들이 패션 문화를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죽는 날까지 옷 만들고 싶어=정 대표는 작업 중에 점심을 먹어본 일이 흔치 않다고 한다. 늘 바쁘다보니 마음 속에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일만 하며 달려온 시간, 다른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는 정 대표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에너지가 있는 한, 죽는 날까지 옷을 만들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 대표는 “백화점 매장에서 자기 이름을 내걸고 판매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마트가 대형화되듯이 패션도 대형화되는 추세여서 앞으로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없어질 것”이라며 “우리나라에도 부티크 문화가 자리잡길 바란다. 기성품이 아닌, 자기만의 옷을 즐기고 찾을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대담=한성일 취재3부 부국장

정리=김의화·사진=이성희 기자

▲ 정훈종 대표
▲ 정훈종 대표


패션과 대중성을 동시에… 개성 넘치는 우아함 ‘매력’

▲정훈종 패션스토리 대표 디자이너는=1954년 말띠생으로 금산군 금성면 마수리에서 태어났다. 대전시 서구 둔산3동에 '정훈종 패션스토리' 본사를 두고 있고, 전국에서 1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 대표는 패션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아낸, 성공한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전패션협회 회장(2002~2004년)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패션협회 이사,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부회장, 배재대 의류패션학과 겸임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 중 1인으로 매년 서울패션위크 컬렉션 참가를 비롯해 뉴욕 Fashion Market Day, 프랑스 Pret-a porte 컬렉션, 한산모시옷 패션쇼 등 국내·외 유수의 패션페어와 컬렉션에 참가하고 있다.

‘정훈종 패션’은 중ㆍ상류층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한 고감도 캐릭터 디자이너 ‘부띠크(butik:여성을 위한 최신 유행 옷 상점)’이다. 단순하면서도 전위적인 화려함을 현대적 감각으로 잘 살려낸다는 평이다.

여성스러우면서도 캐릭터가 강한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미지는 우아함(엘레강스)으로, 도회적 세련미와 로맨틱한 분위기를 현대적 감성으로 연출한다.

특히 원피스가 주력 아이템으로 단순함과 화려함을 적절히 조화시켜 여성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무릎이 드러나지 않는 길이의 롱 스타일이 많고, 미니스타일보다는 미디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검정을 주요 색상으로 하는 가운데 빨강과 파랑, 갈색, 회색, 흰색을 혼합해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소재에 있어서는 울, 실크, 한산모시, 면 등의 천연소재를 주로 사용하고, 고급스러운 실루엣을 강조한다. 여기에 레이스, 스판소재, 메탈 소재, 패딩 소재, 클링클 소재, 광택 소재 등 독특한 소재를 다양하게 조화시켜 독특한 실루엣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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