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모든 성은 정복되었다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모든 성은 정복되었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1-03-22 08:22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종학 교수
오래전 영국의 여러 유적지를 여행해 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무너진 성벽들이 어김없이 나타났기에 마음 한편 쓸쓸함이 스며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어디 영국만이랴. 그렇게 찬란했던 로마와 그리스의 유적지는 또한 어떻던가?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백제와 신라의 무너져내린 이름조차 모를 수많은 성벽만 보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모든 성은 정복되기 마련이고, 모든 요새는 반드시 무너진다는 사실을…

성과 요새는 무슨 이유로 만들까? 당연히 그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것이 재산이든, 생명이든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온갖 힘을 들여 성을 쌓고 요새를 구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킬 무엇이 있을 때 성과 요새를 만든다. 그러나 요새란 의미 자체가 전략상 중요한 지점에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조성한 영구적 방어시설이지만, 슬프게도 제아무리 견고하게 구축했다 할지라도 모든 성과 요새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함락되고 파괴되게 되어 있다. 역사가 말해준다.

가장 극명한 사례가 고대 이스라엘의 마사다(Masada) 요새이리라. 히브리어로 요새란 뜻의 마사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요새는 깎아지른 듯한 언덕에 둘러싸여 있는 관계로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이었다. 그렇기에 세계 최강의 로마군조차 한동안 어쩌지 못하다가 겨우 요새 높이만큼의 인공 산을 쌓은 후 바윗돌을 쏴서 성벽을 무너트리는 방식으로 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 난공불락의 마사다 요새도 결국 함락된 것이다.

지키려고 해선 결코 지킬 수 없다. 오히려 문을 활짝 열을 때 번성한다. 1점 지키는 야구나 축구를 하다가 당하는 역전패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성을 쌓으려 하지 말고 길을 내어야 한다. 더욱이 지킬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대전으로 돌아와 보자. 아쉽게도 대전은 그 무엇으로 보더라도 지킬 것이 별로 없는 도시다. 역대 어느 정권하에서도 혜택받은 것 별로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 발전은 정체되고 있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길을 내는 것이다. 성을 쌓을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보잘것없는 그 무엇 하나 지키려는지 성, 그것도 내성만 꽁꽁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몇 년 전 호남선 KTX의 서대전역 통과 여부가 지역사회의 가장 큰 쟁점이었을 때 당시 시장을 비롯한 정치권은 무엇을 했던가? 형식적인 데모와 항의 시위 몇 번, 별 의미 없는 보여주기식 관계자 면담 말고 그 무엇을 했던가? 전혀 없지 않은가? 그 결과는 서대전역 주변의 발전 정체와 호남으로 이동 시의 불편함과 교통 도시라는 명성 상실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최근 대전에 있던 중소벤처기업부가 뜬금없이 세종으로 이전해간다고 했을 때 대전시장은 무엇을 했나? 국무총리를 만나 영양가 없는 선처 요청하는 것 말고 그 무엇을 했던가? 오죽하면 다른 지역 같으면 삭발과 단식투쟁이라도 하였을 터인데, 대전에서는 그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왔겠는가? 겨우 한 일이 중기부의 이전은 중앙정부 차원의 결정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고백 말고는 들은 이야기가 없다. 진솔한 사죄도, 책임 통감도 없다.

더구나 이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치하겠다고 한 기상청과 몇몇 기관은 규모로 보나 지역사회에의 파급력으로 보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기관에 불과하지 않던가? 중기부의 급작스러운 이전에 따른 주변 상권의 공동화와 인구 감소 등의 부작용을 어떻게 회복시키겠다는 것인지, 흔한 비전 하나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지킬 것도 별로 없는 대전이 새로운 길을 내지는 못할망정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이 그저 시간만 흘러가면 된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골목대장 노릇하면서 자신만의 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대전시에는 더 이상 시장이 살지 않는 것 같다는 시민의 냉소와 좌절감을 시장과 고위 공무원들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