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발바리의 추억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발바리의 추억

대전경찰청 유동하 총경

  • 승인 2021-09-08 08:43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유동하
대전경찰청 유동하 총경
강철수의 <발바리의 추억>은 88년부터 90년까지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던 만화다. 원래 한두 달만 연재할 예정이었으나 이 만화 덕분에 신문의 판매고가 늘어나자 계속 연재했다. 당시 집권세력은 3S(sex, sport, screen)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때였다.

이 만화 덕분이었을까? 이후 유사한 제목으로 연극과 영화 그리고 일일 드라마까지 만들어진다. 그런데 위 만화는 '음란성' 지적으로 연재가 중단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상품화하고,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데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은 음란성만 지적하기에 바빴다.

그 만화의 영향이었을까? 이 무렵 대전과 충청을 무대로 악행을 일삼는 속칭, ‘발바리’들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중 대표주자가 대전의 '원조' 발바리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류' 발바리들인데 그 이유는 그가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횟수의 범행을 자행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발바리는 1992년부터 대전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범행을 시작했다.

1998년 초에는 피해자들이 발바리라 주장해 무고(無故)한 사람이 체포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구금된 중에 발바리 사건이 나고서야 무구(無垢)한 그는 석방된다. 이때가 처음으로 유전자가 분석된 사건이다.



그런 와중에 필자는 2004년 11월 동부서 형사계장으로 부임한다. 당시 대전에는 3대 미제사건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발바리 사건'이었다. 이미 그놈만 잡으면 형사 1개 반을 모두 특진시켜 주겠다는 지휘관도 여럿 있었다. 광수대 1개팀은 기이 전종 수사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2005년 1월 초 근무하는 기간에 '나의' 관할을 공식적으로 다녀간 것이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잡기 위해 자료를 대조하며 밤을 새우던 날도 여러 날이었다. 힘들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정확히 1년만인 이듬해 정초, 우리는 그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형사팀이 용의점을 확인하러 그의 집에 간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얼굴을 비추고 양말을 신고 나온다던 발바리는 창문을 타고 도망갔다. 이때부터 추격극이 시작된다.

도주 3일째 되는날, 지역의 한 신문사 기자가 먼저 냄새를 맡았다. 1면에 '발바리 꼬리 밟혔다'고 기사화했고, 사회면에는 2꼭지나 더 실었다. 그 다음 날부터는 각 언론에 도배됐다. 그는 도주 10일 만에 서울의 한 피시방에서 검거된다. 검거된 날 밤, 우리 경찰서의 앞마당은 낮보다 환하게 불빛이 켜졌다.

이외에도 우리팀은 전국 무대 3인조 납치강도단(27건)과 2인조 생활정보지 이용 강도단(27건)을 검거하기도 했다. 둔산서로 전근 가서는 7년간 검거 안 됐던 경상도 발바리(15건)를 검거했고, 천안으로 가서는 수년 간 검거가 안 된 윗층에 물이 샌다는 사건도 해결했다. 필자 생각이지만 발바리보다 백배 천배 더 나쁜 아류 발바리도 있었다.

그렇게 대전과 충청권에서 대략 40여 명의 발바리는 우리 형사들이 열정과 헌신으로 모두 소탕했다. 광주와 대전을 오가는 광주발바리도 몇 해 전 수감 중에 검거됐다. 발바리가 사라지고 나니 세상이 조용해졌을까? 일부 발바리는 범행을 중단하기도 했으니 그런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에는 형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사건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바로 '바바리맨'이나 '슴만튀' 사건이다. 하지만 그것도 최근에는 거의 평정된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성희롱이나 성매매가 강력사건으로 분류될 날도 올지 모르겠다.

사실 발바리 소탕은 과학수사의 발전 덕분이었다. 영국에서 80년대 초 유전자를 과학수사에 접목했고, 우리는 97년경 도입했다. 이제는 발바리들이 출소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다수의 범행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산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커피 한 잔에 음악이 흐른다. 채은옥의 '빗물'.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 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네.

옷깃을 세워 주면서 우산을 받쳐 준 사람 오늘도 잊지 못하고 빗속을 혼자서 가네. 경찰관들이여 자기만의 추억 만들기 어떠한가?
대전경찰청 유동하 총경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