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길과 길의 만남과 화해 '기적'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길과 길의 만남과 화해 '기적'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1-09-23 15:53
  • 신문게재 2021-09-24 8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기적
'기적'은 추석에 즈음해 볼 만한 영화입니다. 달이 밝고 아버지와 아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십수 년을 데면데면하게 살아온 사이입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지냈는지 이야기합니다. 걸어온 길들을 되짚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던 결정적 순간을 회상합니다. 속 깊은 화해의 장면입니다. 날이 밝으면 아들은 먼길을 떠납니다. 유독 길 장면이 많은 가운데 영화는 이 지점에 이르러 아버지의 길과 아들의 길이 만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철도 기관사인 아버지의 길은 분명합니다. 강철 레일 위에서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고 일합니다. 가족도 일보다 앞서지 않습니다. 아들은 별을 사랑합니다. 아마도 별이 된 엄마와 누나가 그리워서일 겁니다. 그가 작은 간이역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인 공도 따지고 보면 그 그리움 때문입니다. 지역적 배경이 경상도 북부 산골인 것은 참으로 적절합니다. 경상도 사내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의 극적인 소통을 위해서도, 별을 보기에 좋은 자연인 것도 그렇습니다. 점점 줄어가는 시골 사람 숫자와 그만큼 멀어지는 간이역 설치의 꿈도 봉화군 원곡 마을이라딱 어울립니다.

아버지가 반평생을 살아온 철길은 원곡 마을 사람들이 외부 세계로 오가는 생활의 통로입니다. 아들은 그 길을 다니며 꿈을 키우고, 마침내 먼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영화 속 철길은 삶이면서 시간이고,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삶 바로 곁에 죽음이 존재하듯 그들에게 철길이 또한 그렇습니다. 살기 위해 다니는 그 길이 사랑하는 이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아파하고 마음 닫고, 제각기 갈 길 가며 외로워하다가 잠깐 멈춰 지나온 시간을 이야기하며 화해하는 것은 숙원 사업이었던 간이역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기적입니다.

3년 전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경북 의성을 배경으로 딸이 엄마와 소통하고 화해한 것과 이 영화는 닮았습니다. 현실에 깊이 개입하는 환상의 요소를 강하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와도 유사합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묵은 철길 한켠의 오래된 터널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환상의 이야기를 펼쳤듯 이 작품도 우리를 30년 80년대 후반으로 데려갑니다. 그 기적 같은 소통의 간이역으로 말입니다. 여러 배우들의 열연 속에서 누나 보경 역을 맡은 이수경의 연기가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