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놀고 싶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놀고 싶다

박찬영 대전괴정중학교 교사

  • 승인 2022-04-14 10:30
  • 신문게재 2022-04-15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박찬영 사진
하필 왜 공인가. 교양 체육에서 끝날 줄 알았다. 대학을 졸업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체육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몸. 운동이면 운동, 춤이면 춤, 도무지 주인 말을 듣지 않는 몸치의 표본이다. 한데, 친목 피구라니! 마스크에 갇히기 전까지 체육은 직장에서도 피구, 배구, 족구, 때로는 듣도 보도 못한 공으로 둔갑해서 지긋지긋한 관절염처럼 나를 쫓아다닌다. 아! 정말 피!하고 싶다구!

공과 함께 한 기억 속의 나는 바보스럽기만 하다. 피구, 농구, 배구, 발야구, 테니스…. 무슨 노무 구기 종목은 이리 많은지. 그 중 공 던지기는 공에 대한 흑역사의 정점을 찍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체력장 시험 종목. 구멍 뽕뽕 뚫린 시퍼런 공을 있는 힘껏 던지기만 하면 되었건만. 이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멀리 뻗어나가는 45°의 포물선이 왜 실전에서는 적용이 안 된단 말인가. 마음만은 투포환 선수인 나를 가까이서 목격한 친구는 살며시 다가와 말한다. "공을 왜 땅으로 내리꽂냐?" 5m 간격으로 그려진 거리 라인의 두 번째 칸을 넘어보는 게 원이었던 나는 끝내 평균 5m, 최고 8m의 저질스런 기록으로 학창시절을 마무리한다.

동화 『소리 질러, 운동장』 (진형민, 창비, 2015.5.)에서는 막야구부 아이들이 등장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아! 놀고 싶다! 빈곤의 악순환처럼 반복되던, 트라우마에 가깝던 공에 대한 거부감이 살살 부는 바람에 걷히는 아침 안개처럼 사라진다. 공을 두려워하기 훨씬 이전의 나를 불러온다. 친구들을 따라 원피스를 입고 철봉에서 거꾸로오르기를 해도 전혀 민망하지 않던 그 때로. 어느새 나는 정글짐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린다. 힘껏 달리던 시절,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선을 긋고 사방치기를 하던, 비석치기를 하던 모습이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두루루 풀린다.

진형민 동화 속의 아이들은 탱탱볼을 연상시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함과 투명함이 공존한다. 유리처럼 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쉽게 깨어지지는 않는다. 차돌 같은 단단함과 맹랑함이 있다. 천방지축해도 짐짓 당당하고 슬기롭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수학 50점을 맞는 게 평생 소원인 아이들에, 자신이 속한 팀에 불리해도 아웃!을 외치는 솔직함에, 어디서든 당찬 모습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푸하! 웃음소리를 따라 찡한 감동이 배어든다. '원래 노는 데에는 큰 땅이 필요 없었다.(p143)' 운동장을 넘어서는 자유가 있는 그들은 노는 것이 뭔지 뭘 좀 아는 놈들이다.



나른한 오후,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인조 잔디 운동장에서 공을 쫓는다. 교무실 창문을 열고 공을 쫓는 아이들을 좇는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완벽한 운동장은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천연 잔디에서는 잔디의 마모와 배수 지연 및 미끄러움이, 인조 잔디에서는 유해 물질이, 친환경적으로 여겨지는 흙에서조차 석면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는 걸 보면 말이다. 아이들의 운동장이 아무 걱정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의 티 없는 마음을 하루 빨리 닮아가기를 바란다.

체육을 못했던 아이. 못했기에 안했고 안했기에 못했던 순환 고리를 맴돌았다. 어쩌면 나는 너무 복잡한 편견으로 체육을 어렵게만 바라봤던 건 아닐까.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놀면 되는 거였는데, 좀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운동장에서 놀아본 지가 언제였더라. 어느덧 운동장에서 마음껏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지나간 시간은 늘 아쉽다. 마음 한 켠 남아있는, 마음껏 뛰어놀지 못한 미련이 공처럼 운동장을 구른다. 추억을 더듬듯 운동장이라도 천천히 밟아보고 싶다.
박찬영 대전괴정중학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