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어느 선생님의 하소연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어느 선생님의 하소연

한기온 수필가/전 대전봉명중학교 교장

  • 승인 2022-05-05 10:52
  • 신문게재 2022-05-06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증명사진(한기온) (1)
어느 날 나는 수업 시간에 복도를 순회하고 있었다. 교실 안을 보니 수업하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여느 때와 달랐다. 평소에 책임감이 철저했던 선생님이라 더욱 이상하게 보였다. 창 너머 어렴풋이 먼 산을 보고 있는 모습이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물어보니, 지금 집에는 아무도 없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만 있다고 했다. 그날따라 남편은 멀리 출장을 가고 가사도우미는 아침에 교통사고가 나서 집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우선 안방에 끈으로 손목을 묶어 문고리에 매고 문을 닫고 출근했다고 하면서,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이코, 선생님! 집에 빨리 가셔서 아이를 돌보세요. 나머지 수업은 제가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보세요."라고 말하고 재촉하였다. 선생님은 고마운 모습으로 재빠르게 집으로 향하였다. 나는 그 교실에 들어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 대하여 특강을 하니 마음 뿌듯했다.

다음 날부터 그 선생님은 긍정적이고 더욱 적극적인 교육열이 돋보이는 학교생활을 했다. 나에게 대하는 인간적 분위기와 학교에 근무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묻는 것은 불필요한 물음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선생님의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젊은 여선생님께서 교장실에 노크하며 어렵게 들어오는 모습이 그대로 엿보였다. 선생님의 상담 내용은 이러했다. 제가 몇 년간 계속 유산하고 아이를 갖기가 어려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휴가뿐만 아니라 제도가 있지만, 당시에는 학교 사정상 휴가 내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아마도 내심 휴가 조치를 해달라는 눈치였다.

여러모로 상담한 결과 내가 비전문가이지만 이 선생님은 허약한 몸으로 휴식과 영양, 체력적인 충전의 기간을 가져야 할 것으로 직감되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선생님, 우선 한 달간만 휴가를 내시고 휴양해 보세요. 학교 수업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선생님은 의외의 결과로 좋아하는 모습을 감출 줄을 몰랐다. 물론 그때 수업은 시간강사로 대치하여 운영했다.

그 결과 한 달 후에 아이를 갖게 되었으며, 1년 후 아기를 출산했다. 그리고 출산한 사실이 얼마나 기뻤으면 몸을 추스르자마자 제일 먼저 문자로 그 소식을 전해왔다. "교장 선생님께서 많이 배려해 주신 덕분에 아들 잘 출산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눈물 섞인 감사의 전화가 왔다. 저도 출산 휴가 끝나고 남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학생들에게 빨리 가르치고 싶어 벌써 복직하는 날을 기다려진다고도 했다.

보라. 위와 같은 사례에서 선생님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잠시 생각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려를 받은 마음으로의 감성적 변화이다. 남에게 조그만 배려는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어도 눈물에 담긴 슬픔의 무게는 누가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 측정 가능한 수치와 계산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전함을 제공할 뿐, 성숙함을 주진 못한다.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측정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전한 '감성'(배려, 사랑 등)이다. 감성은 그 크기와 무게가 아니라, 단 한 방울의 존재감만으로 우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우리는 그 흔들림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조금씩 발견해 갈 수 있으며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고양이를 이동시키려면 목덜미를 잡고, 토끼를 옮기려면 귀를 잡으며, 소를 이끌려면 코뚜레를 잡고, 사람을 지도하려면 마음을 잡으라는 말이 다시 한번 생각난다. 나는 오늘도 행복감을 가지고 열심히 학생을 배려하고 지도하는 멋진 선생님들을 바라본다.
한기온 수필가/전 대전봉명중학교 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박용갑, 택시운송법·조세특례 개정안 발의… 택시 상생 3법 완성
  2.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3.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 입학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4. 천안시, 물총새공원 주차장 조성안 주민설명회 개최
  5. 황운하 “6월 개헌 위해 여야 국회 개헌특위 구성에 나서달라”
  1. 첼리스트 이나영, '보헤미안' 공연으로 음악적 깊이 선보인다
  2. 박범계, 6·3 지방선거 불출마… "통합 논의 멈춰, 책임 통감"
  3. 윤기식 "동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동구청장 예비후보 등록
  4.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5. 대전농협, '백설기데이' 홍보 캠페인 진행

헤드라인 뉴스


[르포] 방파제 테트라포드, 이런 원리로? KIOST 연구현장 가보니

[르포] 방파제 테트라포드, 이런 원리로? KIOST 연구현장 가보니

방파제 테트라포드(tetrapod)는 어떤 기준으로 설치될까? 지난 12일 오후에 찾은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수리실험동에선 해양구조물과 장비 등을 설치·운영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일상 속 당연시 여겨온 해양 구조물들의 설치 배경엔 수백번, 수천번 끈질긴 연구 끝 최적의 장비 규격을 찾아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들의 끈질긴 노력이 숨어 있다.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내 4005㎡ 규모의 수리실험동은 파도나 흐름을 인공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실험시설을 갖추고 있..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충남·북, 대전까지 통합해서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 행정체계를 만들어볼 거냐는 한번 고민해보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충북 청주 오스코에서 ‘첨단·바이오 산업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이라는 주제로 열린 ‘충북의 마음을 듣다’에서 충남과 대전의 행정통합이 “급정거를 한 상태”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도시들이 경쟁력을 올리려면 광역화가 시대적 추세가 됐다”며 “충청도 지금 대전, 세종, 충남·북으로 많이 나누어져 있는데, 지역 중심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지역연합..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2027학년도 충청권 의대정원 118명 증가…지역의사제에 단계적 확대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올해 치러지는 2027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서울권을 제외한 지역 의대 모집 정원이 늘어남에 따라 충청권 7개 의과대학이 총 118명을 증원한다. 지역 거점 국립대인 충남대는 27명, 충북대는 39명이 늘어 각각 137명, 88명을 모집하고, 건양대와 순천향대 등 5개 사립 의대 역시 52명을 증원해 314명을 선발한다. 13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7학년도~2031학년도 의과대학 학생 정원 배정안'에 따르면, 2027학년도 지역 의대 32곳의 신입생 모집정원 증원 규모는 총 490명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 반갑다 야구야! 반갑다 야구야!

  • 내가 최강소방관 내가 최강소방관

  •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